그림책 읽는 어른
2020년 01월 30일(목) 00:00
최근 ‘같은 책’을 몇 권 구입했다. 가까운 이에게 선물하고 싶어서다. 그동안 마음에 드는 책을 여러 권 사서 누군가에게 전한 경우는 많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르다. 내가 구입한 건 그림책이다.

그 ‘그림책’을 처음 만난 건 지난해 문화예술공간 ‘집’에서 열린 전시회에서였다. ‘책문화공간 봄’이 기획한 행사장에는 주민들이 직접 제작한 자수책·서각·세밀화 등이 전시됐고, 그림책과 동화책도 여러 권 놓여 있었다. 여기에서 전시를 기획한 ‘봄’의 위명화 선생으로부터 이 책을 추천받은 것이다.

펼치면 책의 가로 폭이 55㎝나 되니 우선 외관부터가 확 눈에 띄었다. ‘나는 기다립니다, 어서 키가 크기를’로 시작되는 첫 페이지를 열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책에는 사랑을 기다리거나 혹은 케이크가 구워지기를, 아이들이 자라기를, 다시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누군가의 일생이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인간의 크고 작은 ‘기다림의 무게’를 실물 형태의 ‘붉은 끈’과 펜 그림으로 표현해 낸 이 책은 매우 경이로웠다. 다비드 칼리와 세르주 블로크의 ‘나는 기다립니다’. 그 어떤 철학책보다 더 깊은 삶의 통찰이 담겨 있었다.

내친 김에 같은 작가의 다른 책 ‘완두’도 읽어 보았다. 태어날 때부터 몸집이 완두콩처럼 작아 ‘완두’라 불린 아이의 이야기였다. 인형 신발을 빌려 신고, 세면대 속에서 수영을 하는 완두에게 학교는 모든 게 커서 적응할 수 없는 곳이었다. 늘 혼자였던 완두는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완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세요? 여러분은 상상도 못할 거예요.” 완두가 어른이 된 후 갖게 된 직업은 정말 내가 생각도 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그만 울컥해졌다. 사랑스럽고, 위로가 되고, 왠지 이 세상이 살 만하다고 느껴졌다.

요즘에는 그림책 읽는 어른들이 늘고 있다. 국내 최초의 시니어 그림책 ‘백화만발’도 출간되기 시작했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곁에서 말없이 응원해 주는 ‘속 깊은 친구’처럼 그림책은, 많은 위로와 의지가 된다. 얼마 전 위 선생으로부터 그림책 추천 카톡 문자가 왔다. 라울 니에토 구리디의 ‘두 갈래 길’이었다.

/김미은 문화부장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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