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 누가 주인인가?
2020년 01월 22일(수) 00:00

송 민 석 수필가·전 여천고 교장

장관과 부총리, 국회의원을 두루 거친 한 정치인에게 기자가 어떤 자리가 가장 좋더냐고 물었다. 그는 서슴지 않고 ‘국회의원’을 꼽았다. 이유는 각종 특권과 함께 누릴 것은 다 누리는데 책임질 일이 없고 4년간 신분 보장이 확실하다는 것이었다.

4·15 총선이 불붙고 있다. 지난달 국회의원 예비 후보자 등록이 시작되자 출마 예상자들이 속속 출사표를 던지면서 지역 정가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자천 타천으로 선거철만 되면 고향을 찾아오는 인사들로 붐빈다. 정치적 노선이나 이념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 듯하다. 해방 이후 선거 때마다 나타났다가 사라진 정당이 200개가 넘는다. 정당 간 이합집산을 통해서라도 국회 입성이 장땡이다. 이런 풍토 때문에 다선(多選) 의원들은 존경받는 원로라기보다 우리 정치의 모든 병폐를 두루 섭렵한 퇴출 대상으로 꼽히기 일쑤다.

선거철만 되면 여기저기서 출신 지역, 출신 학교, 문중이나 집안을 중심으로 편을 가르려는 비합리적인 몹쓸 태도가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다. 또한 후보자 간 토론의 기회가 부족하다 보니 선거 막판으로 갈수록 상대방의 비리나 들춰내려는 폭로전이 기승을 부리게 된다. 상대방을 꺾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듯하다. ‘제 흉 많이 가진 자가 남의 흉 잘 본다’는 말은 선거판에 적용해 봄 직한 말이 아닐까 싶다.

유럽의 경우 부정한 짓을 저지르는 자는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면 공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이웃으로부터도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다. 이는 대부분이 개신교 국가인 유럽 선진국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미국의 경우 공공 기관에서 내가 한 말은 그대로 믿어 준다고 한다. 바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상대방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주는 것, 그것은 일종의 사회적 약속이다. 믿어 주었는데 그것이 거짓으로 드러날 경우 범죄가 된다. 그 거짓말에 대한 응징은 가혹하다. 이것이 한 사회가 신뢰를 쌓아가는 메커니즘이다.

그에 반해 우리는 어떤가. 지위가 높을수록 자기 잘못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 같다. 선진국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부패의 관성이 곳곳에 남아있음을 본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사회의 지도층이 저지른 이권 개입이나 부정 청탁 의혹 사건들을 수없이 보아 왔다.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들부터 염치를 모르니 사람 사는 도리가 제대로 설 리가 없다.

이뿐인가. 생활 주변 곳곳에서 공공 의식의 부족 역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누구나 KTX 열차 안에서 독서를 방해하는 전화 통화에 신경을 곤두세웠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휴대 전화를 붙들고 30분씩 통화하는 사람들은 아줌마, 아저씨, 아가씨 구분이 없다. 이제 우리도 ‘내가 먼저’라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상대방을 배려하는 국민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선진국의 기본 틀을 세우려면 정치판부터 새롭게 바꿔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젊은 층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세대교체가 이루어져야 한다. 북유럽 국가들의 국회의원처럼 비서도 없이 평범한 시민의 대표로서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솔선수범하고 봉사하는 정신이 우리에겐 요원한 이야기일 뿐인가? 민주적 상식이 통하지 않는 정당 정치를 바로 잡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시급한 민생 법안을 뒷전으로 하고 쌈박질만 하는 ‘동물 국회’가 된 것도 우리의 잘못된 선택 때문이다. 루소의 지적처럼 ‘국민은 하루 주인 노릇하고 4년 내내 종노릇’해서는 안 될 일이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우리의 심부름꾼을 뽑는 기준은 말보다 그가 살아온 길을 먼저 살펴야 한다. 자신을 위해 살았는가, 남을 위해 살았는가, 자기 의무를 다했는가, 봉사와 겸손의 자세를 지녔는가, 미래의 비전이 뚜렷한가,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고 한다. 21대 총선에서 그들만의 정치 놀음을 끝내기 위해서라도 누가 주인인가를 확실히 보여 주어야 한다.

실시간 핫뉴스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