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5월 21일 ‘순진한 협상’
2020년 01월 16일(목) 00:00 가가
전춘심이 시위대에게
‘협상대표를 뽑자’고 의견을 구하자
시위대 시민이 동의했다.
‘협상대표를 뽑자’고 의견을 구하자
시위대 시민이 동의했다.
밤 9시 통행금지시간은 시위청년 시민들에게 있으나마나 한 포고령이 돼버렸다. 시위대는 여남은 명씩 나누어져 밤새 시가지를 돌았다. 의기투합한 박래풍과 김용호, 김선민 등은 금남로 일대를 돌았고, 학운동 청년들은 배고픈다리를 거점 삼아 학원동과 노동청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그런가 하면 이관택은 예닐곱 명의 무리를 따라 유동삼거리에서 불에 탄 MBC방송국이 있는 제봉로를 배회했다.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잠깐씩 길가에 주차한 버스 안에서 쪽잠을 잤다. 그러다가도 전춘심과 차명숙이 방송하는 방송차가 지나가면 벌떡 일어나 졸린 눈을 부볐다. 전춘심의 가두방송 멘트는 전날보다 더 거칠었다.
<형제 동생들이 죽어 가는데 다리를 쭉 뻗고 잠이 옵니까. 공수들이 광주 시민을 다 죽이려고 하는데 도대체 목구멍으로 밥이 넘어갑니까. 일제 때 학생운동이 가장 먼저 일어난 광주입니다. 광주정신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광주시민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80만 광주시민 모두가 나서 대한민국 군인이기를 포기한 공수 놈들과 싸워야 합니다.>
이관택 일행은 버스 안에 있던 빵과 우유로 요기를 했다. 일행 중에 누군가가 화장실도 볼 겸 광주역으로 가자고 했다. 이관택도 자정의 총성이 궁금하여 따라나섰다. 자정 무렵에 광주역 쪽에서 갑자기 총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광주역은 도청 앞보다 먼저 공수부대원들에게 실탄을 지급한 곳이었다.
이관택 일행 말고도 여남은 명씩 밤새 어울려 다니던 시위청년 시민들이 광주역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광주역 광장에는 이미 수백 명의 시민들이 몰려와 북적거렸다. 공수부대를 몰아내고 광주역을 접수한 듯 모두가 의기양양해했다. 일부 시민들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공수덜이 죄 ?는 시민덜을 죽였어.”
“? 사람이나?”
“여그서 죽은 사람만도 넷이여. 모르제. 철수험서 더 끌고 갔는지도.”
“부상은 더 많겄그만잉.”
“함은.”
이관택은 화장실을 가려고 온 네댓 명과 함께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역사 안이 썰렁해서인지 시민들은 모두 모닥불을 피워놓은 광장으로 나가 있었다. 이관택은 방치된 시신 한 구를 보고는 깜작 놀랐다. 헝클어진 머리와 거친 손으로 보아 노동자 같았다. 나이는 오십 안팎으로 보였다. 공수부대원들이 옷을 벗겨 끌고 왔는지 시신은 팬티 차림이었다. 대검에 찔린 허벅지가 길게 찢어져 피범벅이 돼 있었다.
날이 밝자 역사 부근에서 또 한 구의 시신을 시민들이 업고 왔다. 그제야 역사 안에 있는 시신을 현관으로 옮겼다. 두 구의 시신을 가지런히 누인 다음 누군가가 대형태극기를 덮었다. 태극기를 덮고 난 사람이 외쳤다.
“공수허고 싸우다가 희생당한 분들이요. 연고자를 찾을라믄 시민덜이 많이 모이는 도청 앞에다가 모십시다!”
“쩌그 고물상에서 니아카를 끌고 오씨요.”
누군가가 리어카를 들먹였고 몇 사람이 고물상으로 달려갔다. 전춘심 가두방송 차량이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빨간 점퍼에 청바지를 입은 전춘심은 두 구의 시신을 보고는 몸서리쳤다. 가두방송을 밤새워 했으므로 기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눈앞이 노래지는 것으로 보아 곧 혼절할 것만 같았다. 핏발이 선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전춘심은 입술을 깨물었다. 차명숙도 충격을 받아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시위청년들이 두 시신을 리어카에 싣고 다시 대형태극기로 덮었다. 리어카가 움직이자 두 사람의 발이 리어카 밖으로 나와 덜렁거렸다.
“도청으로 갑시다!”
리어카 좌우로 시위청년들이 호위했다. 한 사람이 주먹을 치켜들어 선창하면 시위대가 복창했다.
“계엄군은 민주시민을 살려내라!”
“계엄군은 민주시민을 살려내라!”
전춘심이 탄 방송차는 리어카 뒤를 따르며 쉰 목으로 방송을 했다. 시신 두 구를 직접 목격한 전춘심의 방송 멘트는 한층 격렬하고 선동적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울분과 분노가 묻어 있었다.
<광주시민 여러분, 우리 모두 공수부대 놈들을 찢어 죽입시다. 살인마 전두환은 물러나라. 두환아, 내 자식 살려내라.>
리어카가 유동삼거리에서 금남로로 들어서자 시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금남로 이면도로에서 쏟아져 나왔다. 리어카가 가톨릭센타 앞에 이르자 인파는 5만여 명으로 불어났다. 태극기로 덮은 두 시신은 여전히 발을 리어카 밖으로 내민 채 흔들거렸다. 전춘심은 페퍼포그를 쏘며 도청을 사수하고 있는 전경들에게도 회유하는 방송을 했다.
<경찰 아저씨, 경찰 아저씨는 민중의 지팡이가 아닙니까. 또한 전라도 분들이지 않습니까. 경찰 아저씨, 저희와 힘을 합쳐서 저 공수부대 놈들을 모두 다 찢어 죽입시다.>
19일부터 집에 들어가지 않고 시위에 가담해 온 박병규는 방송차를 뒤따랐다. 박병규 뿐만 아니라 많은 장발의 청년 시민들이 방송차를 에워싼 채 걸었다. 머리가 짧은 청년들도 전춘심을 보기 위해 파고들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사복을 입은 그들은 계엄군 편의대 요원들이었다. 지휘관에게 전춘심을 저격하라는 명을 받고 활동 중이었다. 편의대 요원이 동료에게 나직한 소리로 말했다.
“사진이라도 찍어야 하는긴데.”
“시위대가 해산하기 전에는 저격은 불가능해.”
“실수했다간 우리가 잡혀 죽을끼다.”
이틀간 시위에 가담해온 김현채는 속이 메슥메슥해 방송차를 따르다가 뒤로 처졌다. 어젯밤 9시쯤 무등극장 앞에 세워진 승용차에서 호스로 화염병용 휘발유를 빼다가 잘못하여 몇 모금 마셔버렸던 것이다. 억지로 토해냈지만 벌써 뱃속 깊숙이 내려가 버린 듯 트림을 하면 휘발유냄새가 식도를 타고 올라왔다. 방위병이라고 신분을 밝힌 청년도 휘발유를 한 모금 삼켜버렸는지 웩웩거렸다. 그러는 동안에 공수부대원 서너 명이 김현채와 방위병을 잡으려고 쫓아왔다. 방위병은 충장로 왕자관을 향해 도망쳤고, 김현채는 양동시장 쪽으로 뛰어 붙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전춘심은 계엄군 편의대가 자신을 노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방송을 계속하며 도청이 가까운 동구청 앞으로 나아갔다. 거기에서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공수부대가 방어선을 철벽같이 치고 있었다. 시위대는 5명씩 스크럼을 짜고 앉았다. 시위대는 두 시신을 실은 리어카를 공수부대 앞에 놓았다. 공수부대원들은 금남로에 운집한 시위인파를 보고 질려버렸는지 태도가 사뭇 누그러져 있었다. 공수부대 대대장이 부하들의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지휘봉을 들고서 오가곤 했다. 전춘심이 그 중령에게 다가가 말했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아무런 원한이 없어라. 근데 당신들은 으째서 우리 광주시민들을 무참히 죽입니까?”
“음...”
“제 말을 어처게 생각하십니까?”
중령이 대답을 못하고 아주 잠깐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군인이오. 뭐라고 대답을 못하겠소.”
“군인의 본분은 대한민국 국민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소?”
전춘심은 방송차로 올라가 시위대에게 물었다.
“군인들은 명령을 따랐다고 합니다. 그러니 지금은 돌을 던지지 맙시다. 시민 여러분, 협상을 하면 어떻습니까?”
시위대 여기저기서 “옳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춘심은 다시 중령에게 다가가 계엄사령관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중령이 말했다.
“협상대표를 뽑아주시오.”
전춘심이 방송차에 올라 시위대에게 ‘협상대표를 뽑자’고 의견을 구하자, 시위대 시민이 “더 이상 사상자가 나오면 안 되니 계엄군과 협상하자”고 동의했다. 그리고 “당국이 사과하고 명예를 회복시켜 준 뒤 타협하자”는 요구도 나왔다. 전춘심은 즉석에서 협상대표를 선출했다. 대표성을 띤 시민이라기보다는 앞자리에 있던 3명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어났다. 전춘심과 조선대 법과 1학년 김범태, 전남대 상대 2학년 김상호 외 1명 등 4명은 협상대표로 나섰다. 협상대표들은 재빠르게 시위대 일부가 요구하는 4개 항을 정리했다. 시위대 대다수의 의견을 취합한 것은 아니었다.
1) 유혈사태에 대한 도지사의 사과
2) 연행된 시민, 학생을 즉시 석방하되 여의치 않으면 소재파악이라도 해줄 것
3) 공수부대는 21일 정오까지 시내에서 철수할 것
4) 전남북계엄소장과의 협상을 주선할 것
전춘심은 중령에게 다가가 다시 말했다.
“협상대표를 뽑았응께 계엄사령관을 만나게 해주세요.”
“사령관을 만나려면 도지사부터 만나야 합니다. 그러니 도청으로 갑시다.”
협상대표는 중령을 따라 도청 3층 도지사실로 올라갔다. 협상대표들은 텅 빈 도지사 집무실에서 장형태 지사를 기다렸다. 천정이 높고 가죽소파가 놓인 도지사 집무실은 협상대표들을 은근히 위축시켰다. 비서가 도지사 집무실로 들어와 협상대표들에게 말했다.
“지사님께서 모친상을 당해 늦어지고 있은께 쬐깐만 지달려주십시요.” 비서가 말한 대로 장형태 지사는 30분쯤 후에 나타났다. 협상대표들은 각자의 이름과 신분을 밝혔다. 그런 뒤 전춘심이 협상대표 자격으로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도지사님, 지금 시민들이 불안해하고 있으니까 계엄군들을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물러나게 하고, 현재 잡혀간 학생과 시민들의 소재를 밝히고 사상자수를 정식으로 보도해 줄 것을 건의합니다.”
도지사는 전춘심의 건의를 듣더니 되물었다.
“요구사항을 적어온 것이 있나요?”
전춘심은 도지사 앞에 4개 항이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도지사는 4개 항을 외우기라도 할 듯 뚫어지게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첫째 요구사항은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어요. 허나 둘째, 셋째 요구사항은 내가 결정할 소관이 아니지요. 그래도 적극 건의해보리다. 넷째 요구사항은 반드시 성사되도록 주선하겠소.”
대학생 협상대표들은 요구사항이 순조롭게 받아들여지는 듯해 안도했다. 그러나 전춘심은 둘째와 셋째 요구사항이 핵심이었으므로 계엄사령관을 만나 건의하고 싶었다.
“도지사님, 계엄사령관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잠시만 기다려보시오.”
비서가 도지사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짧게 보고했다. 그러자 도지사가 양미간을 찌푸렸다.
“계엄사령관의 소재 파악을 당장은 할 수 없는 모양이오. 조금만 기다리시오.”
도지사의 기다리는 말에 전춘심은 뭔가 어긋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래서 뒤로 물러서려고 하는 도지사에게 매달렸다.
“도지사님, 계엄사령관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몇 시까지 기다리면 되겠습니까?”
“일단 정오까지 기다려 보시지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지사님, 제가 그냥 나가게 되면 시민들이 소란해질 것입니다. 그러니 지사님께서 직접 시민들을 자중시켜 주시고 사과의 말씀을 해주십시오.”
“협상대표들이 먼저 나가 시민들에게 설명해주시오. 나는 5분 후에 나가겠소.”
그러나 장형태 도지사는 5분이 지나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전춘심이 시위대에게 묵념을 시키고 노래를 서너 곡이나 부르게 했는데도 도지사는 나타날 기색이 없었다. 도지사는 시위대 앞에 서는 것이 부담스러워 겨우 도청 현관까지만 나오고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구용상 광주시장이 시위대 앞의 간이단상에 올라 자제와 질서를 호소하는 발언을 하다가 시위대청년 시민에게 쫓겨나고 말았다.
“뻔헌 얘기는 집어치우쑈!”
잠시 차분했던 시위대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전춘심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당신이 협상헌다고 들어갔다가 나오는 바람에 아까운 시간만 지나가부렀소!”
전춘심은 시위대 시민의 질책을 달게 받았다. 장형태 도지사가 자신을 속인 것이 분할 뿐이었다. 슬그머니 한 발을 뺀 장형태 지사에 비하면 자진해서 나타나 욕을 먹은 구용상 시장이 공직자로서 품위와 용기가 있어 보였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장갑차 한 대가 도청 광장에서 난폭하게 엔진의 굉음을 내지르며 시위대 쪽으로 달려왔다. 시위대에게 ‘더 이상 도청으로 다가서지 말라’고 위협을 가하는 질주였다. 시위대 앞줄에 있던 시민들이 도로 양쪽으로 갈라졌다. 전춘심은 엉겁결에 공수부대원들이 있는 관광호텔 쪽으로 피하다가 넘어졌다. 게다가 최루탄까지 날아와 터져 정신을 잃을 뻔했다. 박병규는 전일빌딩 앞으로 물러섰다가 YWCA 뒷길로 빠져 최루탄을 직접 맞지는 않았다. 서울에서 쌓은 시위경험으로 치고 빠지는 데는 누구 못지않게 노련했다. 그런데 YWCA 건너편 상무관 앞이 수상쩍게 보였다.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공수부대원들이 줄을 서서 실탄을 지급받고 있었다. 박병규는 YWCA 건물 1층의 화장실로 들어갔다. 소변을 해결하는 동안 벽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니 영락없는 노숙자 몰골이었다. 이틀 동안 머리를 감지 못해 장발은 떡이 져 있었고, 옷은 기름때와 흙먼지가 묻어 더럽고 남루했다. 박병규는 도청 앞 시위에 더 가담하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목욕하고 다시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계속>
“공수덜이 죄 ?는 시민덜을 죽였어.”
“? 사람이나?”
“여그서 죽은 사람만도 넷이여. 모르제. 철수험서 더 끌고 갔는지도.”
“부상은 더 많겄그만잉.”
“함은.”
이관택은 화장실을 가려고 온 네댓 명과 함께 역사 안으로 들어갔다. 역사 안이 썰렁해서인지 시민들은 모두 모닥불을 피워놓은 광장으로 나가 있었다. 이관택은 방치된 시신 한 구를 보고는 깜작 놀랐다. 헝클어진 머리와 거친 손으로 보아 노동자 같았다. 나이는 오십 안팎으로 보였다. 공수부대원들이 옷을 벗겨 끌고 왔는지 시신은 팬티 차림이었다. 대검에 찔린 허벅지가 길게 찢어져 피범벅이 돼 있었다.
날이 밝자 역사 부근에서 또 한 구의 시신을 시민들이 업고 왔다. 그제야 역사 안에 있는 시신을 현관으로 옮겼다. 두 구의 시신을 가지런히 누인 다음 누군가가 대형태극기를 덮었다. 태극기를 덮고 난 사람이 외쳤다.
“공수허고 싸우다가 희생당한 분들이요. 연고자를 찾을라믄 시민덜이 많이 모이는 도청 앞에다가 모십시다!”
“쩌그 고물상에서 니아카를 끌고 오씨요.”
누군가가 리어카를 들먹였고 몇 사람이 고물상으로 달려갔다. 전춘심 가두방송 차량이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빨간 점퍼에 청바지를 입은 전춘심은 두 구의 시신을 보고는 몸서리쳤다. 가두방송을 밤새워 했으므로 기력이 바닥난 상태였다. 눈앞이 노래지는 것으로 보아 곧 혼절할 것만 같았다. 핏발이 선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전춘심은 입술을 깨물었다. 차명숙도 충격을 받아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시위청년들이 두 시신을 리어카에 싣고 다시 대형태극기로 덮었다. 리어카가 움직이자 두 사람의 발이 리어카 밖으로 나와 덜렁거렸다.
“도청으로 갑시다!”
리어카 좌우로 시위청년들이 호위했다. 한 사람이 주먹을 치켜들어 선창하면 시위대가 복창했다.
“계엄군은 민주시민을 살려내라!”
“계엄군은 민주시민을 살려내라!”
전춘심이 탄 방송차는 리어카 뒤를 따르며 쉰 목으로 방송을 했다. 시신 두 구를 직접 목격한 전춘심의 방송 멘트는 한층 격렬하고 선동적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울분과 분노가 묻어 있었다.
<광주시민 여러분, 우리 모두 공수부대 놈들을 찢어 죽입시다. 살인마 전두환은 물러나라. 두환아, 내 자식 살려내라.>
리어카가 유동삼거리에서 금남로로 들어서자 시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금남로 이면도로에서 쏟아져 나왔다. 리어카가 가톨릭센타 앞에 이르자 인파는 5만여 명으로 불어났다. 태극기로 덮은 두 시신은 여전히 발을 리어카 밖으로 내민 채 흔들거렸다. 전춘심은 페퍼포그를 쏘며 도청을 사수하고 있는 전경들에게도 회유하는 방송을 했다.
<경찰 아저씨, 경찰 아저씨는 민중의 지팡이가 아닙니까. 또한 전라도 분들이지 않습니까. 경찰 아저씨, 저희와 힘을 합쳐서 저 공수부대 놈들을 모두 다 찢어 죽입시다.>
19일부터 집에 들어가지 않고 시위에 가담해 온 박병규는 방송차를 뒤따랐다. 박병규 뿐만 아니라 많은 장발의 청년 시민들이 방송차를 에워싼 채 걸었다. 머리가 짧은 청년들도 전춘심을 보기 위해 파고들었지만 여의치 않았다. 사복을 입은 그들은 계엄군 편의대 요원들이었다. 지휘관에게 전춘심을 저격하라는 명을 받고 활동 중이었다. 편의대 요원이 동료에게 나직한 소리로 말했다.
“사진이라도 찍어야 하는긴데.”
“시위대가 해산하기 전에는 저격은 불가능해.”
“실수했다간 우리가 잡혀 죽을끼다.”
이틀간 시위에 가담해온 김현채는 속이 메슥메슥해 방송차를 따르다가 뒤로 처졌다. 어젯밤 9시쯤 무등극장 앞에 세워진 승용차에서 호스로 화염병용 휘발유를 빼다가 잘못하여 몇 모금 마셔버렸던 것이다. 억지로 토해냈지만 벌써 뱃속 깊숙이 내려가 버린 듯 트림을 하면 휘발유냄새가 식도를 타고 올라왔다. 방위병이라고 신분을 밝힌 청년도 휘발유를 한 모금 삼켜버렸는지 웩웩거렸다. 그러는 동안에 공수부대원 서너 명이 김현채와 방위병을 잡으려고 쫓아왔다. 방위병은 충장로 왕자관을 향해 도망쳤고, 김현채는 양동시장 쪽으로 뛰어 붙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전춘심은 계엄군 편의대가 자신을 노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방송을 계속하며 도청이 가까운 동구청 앞으로 나아갔다. 거기에서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공수부대가 방어선을 철벽같이 치고 있었다. 시위대는 5명씩 스크럼을 짜고 앉았다. 시위대는 두 시신을 실은 리어카를 공수부대 앞에 놓았다. 공수부대원들은 금남로에 운집한 시위인파를 보고 질려버렸는지 태도가 사뭇 누그러져 있었다. 공수부대 대대장이 부하들의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지휘봉을 들고서 오가곤 했다. 전춘심이 그 중령에게 다가가 말했다.
“우리는 당신들에게 아무런 원한이 없어라. 근데 당신들은 으째서 우리 광주시민들을 무참히 죽입니까?”
“음...”
“제 말을 어처게 생각하십니까?”
중령이 대답을 못하고 아주 잠깐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군인이오. 뭐라고 대답을 못하겠소.”
“군인의 본분은 대한민국 국민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소?”
전춘심은 방송차로 올라가 시위대에게 물었다.
“군인들은 명령을 따랐다고 합니다. 그러니 지금은 돌을 던지지 맙시다. 시민 여러분, 협상을 하면 어떻습니까?”
시위대 여기저기서 “옳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전춘심은 다시 중령에게 다가가 계엄사령관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중령이 말했다.
“협상대표를 뽑아주시오.”
전춘심이 방송차에 올라 시위대에게 ‘협상대표를 뽑자’고 의견을 구하자, 시위대 시민이 “더 이상 사상자가 나오면 안 되니 계엄군과 협상하자”고 동의했다. 그리고 “당국이 사과하고 명예를 회복시켜 준 뒤 타협하자”는 요구도 나왔다. 전춘심은 즉석에서 협상대표를 선출했다. 대표성을 띤 시민이라기보다는 앞자리에 있던 3명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어났다. 전춘심과 조선대 법과 1학년 김범태, 전남대 상대 2학년 김상호 외 1명 등 4명은 협상대표로 나섰다. 협상대표들은 재빠르게 시위대 일부가 요구하는 4개 항을 정리했다. 시위대 대다수의 의견을 취합한 것은 아니었다.
1) 유혈사태에 대한 도지사의 사과
2) 연행된 시민, 학생을 즉시 석방하되 여의치 않으면 소재파악이라도 해줄 것
3) 공수부대는 21일 정오까지 시내에서 철수할 것
4) 전남북계엄소장과의 협상을 주선할 것
전춘심은 중령에게 다가가 다시 말했다.
“협상대표를 뽑았응께 계엄사령관을 만나게 해주세요.”
“사령관을 만나려면 도지사부터 만나야 합니다. 그러니 도청으로 갑시다.”
협상대표는 중령을 따라 도청 3층 도지사실로 올라갔다. 협상대표들은 텅 빈 도지사 집무실에서 장형태 지사를 기다렸다. 천정이 높고 가죽소파가 놓인 도지사 집무실은 협상대표들을 은근히 위축시켰다. 비서가 도지사 집무실로 들어와 협상대표들에게 말했다.
“지사님께서 모친상을 당해 늦어지고 있은께 쬐깐만 지달려주십시요.” 비서가 말한 대로 장형태 지사는 30분쯤 후에 나타났다. 협상대표들은 각자의 이름과 신분을 밝혔다. 그런 뒤 전춘심이 협상대표 자격으로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도지사님, 지금 시민들이 불안해하고 있으니까 계엄군들을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물러나게 하고, 현재 잡혀간 학생과 시민들의 소재를 밝히고 사상자수를 정식으로 보도해 줄 것을 건의합니다.”
도지사는 전춘심의 건의를 듣더니 되물었다.
“요구사항을 적어온 것이 있나요?”
전춘심은 도지사 앞에 4개 항이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도지사는 4개 항을 외우기라도 할 듯 뚫어지게 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첫째 요구사항은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어요. 허나 둘째, 셋째 요구사항은 내가 결정할 소관이 아니지요. 그래도 적극 건의해보리다. 넷째 요구사항은 반드시 성사되도록 주선하겠소.”
대학생 협상대표들은 요구사항이 순조롭게 받아들여지는 듯해 안도했다. 그러나 전춘심은 둘째와 셋째 요구사항이 핵심이었으므로 계엄사령관을 만나 건의하고 싶었다.
“도지사님, 계엄사령관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잠시만 기다려보시오.”
비서가 도지사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짧게 보고했다. 그러자 도지사가 양미간을 찌푸렸다.
“계엄사령관의 소재 파악을 당장은 할 수 없는 모양이오. 조금만 기다리시오.”
도지사의 기다리는 말에 전춘심은 뭔가 어긋나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래서 뒤로 물러서려고 하는 도지사에게 매달렸다.
“도지사님, 계엄사령관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몇 시까지 기다리면 되겠습니까?”
“일단 정오까지 기다려 보시지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지사님, 제가 그냥 나가게 되면 시민들이 소란해질 것입니다. 그러니 지사님께서 직접 시민들을 자중시켜 주시고 사과의 말씀을 해주십시오.”
“협상대표들이 먼저 나가 시민들에게 설명해주시오. 나는 5분 후에 나가겠소.”
그러나 장형태 도지사는 5분이 지나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전춘심이 시위대에게 묵념을 시키고 노래를 서너 곡이나 부르게 했는데도 도지사는 나타날 기색이 없었다. 도지사는 시위대 앞에 서는 것이 부담스러워 겨우 도청 현관까지만 나오고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구용상 광주시장이 시위대 앞의 간이단상에 올라 자제와 질서를 호소하는 발언을 하다가 시위대청년 시민에게 쫓겨나고 말았다.
“뻔헌 얘기는 집어치우쑈!”
잠시 차분했던 시위대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전춘심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당신이 협상헌다고 들어갔다가 나오는 바람에 아까운 시간만 지나가부렀소!”
전춘심은 시위대 시민의 질책을 달게 받았다. 장형태 도지사가 자신을 속인 것이 분할 뿐이었다. 슬그머니 한 발을 뺀 장형태 지사에 비하면 자진해서 나타나 욕을 먹은 구용상 시장이 공직자로서 품위와 용기가 있어 보였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장갑차 한 대가 도청 광장에서 난폭하게 엔진의 굉음을 내지르며 시위대 쪽으로 달려왔다. 시위대에게 ‘더 이상 도청으로 다가서지 말라’고 위협을 가하는 질주였다. 시위대 앞줄에 있던 시민들이 도로 양쪽으로 갈라졌다. 전춘심은 엉겁결에 공수부대원들이 있는 관광호텔 쪽으로 피하다가 넘어졌다. 게다가 최루탄까지 날아와 터져 정신을 잃을 뻔했다. 박병규는 전일빌딩 앞으로 물러섰다가 YWCA 뒷길로 빠져 최루탄을 직접 맞지는 않았다. 서울에서 쌓은 시위경험으로 치고 빠지는 데는 누구 못지않게 노련했다. 그런데 YWCA 건너편 상무관 앞이 수상쩍게 보였다.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공수부대원들이 줄을 서서 실탄을 지급받고 있었다. 박병규는 YWCA 건물 1층의 화장실로 들어갔다. 소변을 해결하는 동안 벽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니 영락없는 노숙자 몰골이었다. 이틀 동안 머리를 감지 못해 장발은 떡이 져 있었고, 옷은 기름때와 흙먼지가 묻어 더럽고 남루했다. 박병규는 도청 앞 시위에 더 가담하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목욕하고 다시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