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DJ’를 갈망하며
2020년 01월 08일(수) 00:00

최 영 태 전남대 사학과 교수

1967년 국회의원 선거 때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목포에 출마한 김대중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직접 목포에 두 번이나 내려왔고 목포 현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공화당 후보인 김병삼 씨를 당선시키면 목포에 소위 ‘돈 폭탄’을 투하하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목포시민들은 돈 대신 사람 즉 DJ를 선택했다. DJ와 호남의 운명적 결합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획득한 득표율은 광주 97.3%, 전남 94.6%, 전북 92.3% 이었다. 외부 사람들 중 일부는 호남인들의 이런 몰표 현상을 비난했다. 그러나 김대중 후보와 이회창 후보의 표 차이가 39만 표에 불과했고, 호남 유권자의 득표율이 평균 6%만 낮추어졌어도 김대중 후보의 당선이 어려웠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그런 비난은 ‘비난을 위한 비난’에 불과했다.

호남인들이 DJ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낸 것은 그가 호남인이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호남인이 영남 출신인 노무현 후보와 문재인 후보에 대해 보여준 높은 지지율이 이를 잘 말해 준다. 호남인이 DJ를 지지한 것은 DJ가 추구한 가치 즉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 지역 균형 발전 등이 호남인이 추구한 가치와 유사했기 때문이었다. DJ와 호남인들은 소위 ‘가치 동맹’을 통해 한국의 민주주의와 국격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작년 8월에 DJ 서거 10주년을 맞이했다. 당시는 한일간 외교 갈등이 큰 현안으로 부각된 시점으로서 정치권과 언론은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상기시키며 DJ의 외교적 혜안과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심지어 보수 정객과 언론까지 DJ 칭찬 행렬에 가담했다. 지금 남북 관계가 어려운데,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DJ 같은 위대한 외교관, 위대한 민족 지도자가 필요하다. DJ처럼 남북 화해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명확한 철학과 비전, 진정성, 그리고 주변 국가들에 대한 설득력을 갖춘 지도자가 필요하다.

DJ는 국민의 정부 초대 내각 구성에서 큰 관심을 모은 통일부 장관과 재경부 장관, 금융감독위원장에 모두 자민련 출신 인사를 등용했다. 주변에서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DJ는 보란 듯이 임기 동안 남북 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시켰고 IMF 위기를 조기에 극복했다. DJ가 임기 초반 주요 장관직에 자민련 출신 인사를 등용한 것은 국민 통합이 없이는 남북 관계도, IMF 위기 극복도 불가능하다는 현실적 판단에서였다. 자신이 명확한 원칙과 정책 능력을 지니고 있는 한 특정 장관의 정치적 성향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그의 자신감이 반영된 결과 이었다. ‘서생적 문제 의식과 상인적 현실 감각’이라는 DJ 철학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과거나 현재나 우리 지역 사람들은 ‘뉴 DJ’의 출현을 갈망한다. 여기서 ‘뉴 DJ’란 DJ 같은 걸출한 인물, DJ의 정치 철학을 계승할 사람, 전라도의 자긍심을 고양시켜줄 인물들을 말한다. 다행히 이 지역 출신인 이낙연 국무총리가 유력한 대선 후보 중 한 사람으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그가 DJ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한 점, 그가 내세운 ‘실용적 진보주의’가 DJ의 ‘서생적 문제 의식과 상인적 현실 감각’을 연상케 한다는 점, 다음 대통령은 외교와 남북 관계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할 것 같다는 언급 등 그의 언행들에서 그가 진정으로 DJ를 ‘롤 모델’로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어 반갑다.

금년은 선거의 해이다. 우리 지역에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과의 인연을 강조하는 사람은 많은데 반해 DJ를 내세우는 사람은 거의 없어 많이 아쉽다.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 모두 우리 지역이 키운 인물이고 훌륭한 분들이지만, 그래도 수십 년 동안 모든 희생을 감수하면서 운명을 함께 했고 세계적 인물이 된 DJ와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물론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세 대통령들과의 개별적 인연이 아니라 정신이다.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가치와 정책에 가장 충실히 임하는 정치인이 진정으로 ‘뉴 DJ’이다. 이번 총선에서 큰 비전과 꿈을 가진 인물, 정책적 유능함, 그리고 호남의 정체성에 어울릴 수 있는 ‘뉴 DJ’의 출현을 갈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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