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칼 앞 하나였던 ‘공동체 정신’ 생활 속 민주주의로 실천
(1) 프롤로그 : 불혹의 나이가 된 5·18
이젠 왜곡·망언에 흔들리지 말아야
40년 전 광주 숭고한 시민의식
세계 민주화운동사에 유례 없는 일
척박한 정치·경제 여건에 매몰돼
아직도 일상에 스며들지 못해
2020년 01월 02일(목) 00:00

5·18민주화운동이 40주년을 맞는 2020년이 밝았다. 1일 광주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의 5·18 추모탑 너머로 밤하늘의 별이 흐르고 있다. 경자년인 올해 5·18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가 출범했다. 그날의 진실이 밝혀지고, 불혹을 맞아 흔들리지 않는 5·18이 되기를 기대한다. (NIKON D5, ISO 50, 30sec, f2.8를 이용해 400여장의 사진을 컴퓨터 합성했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5·18 민주화운동이 40주년을 맞았다. 5·18은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원천이자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 지난해 100주년을, 올해는 6·25가 70주년을 맞는다. 대한민국의 근간을 이루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이제는 기념일로만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영욕의 세월을 거쳐 민주화로 완성된 ‘5·18’도 어느 덧 불혹의 나이가 됐다. 피 흘리지 않고 이뤄낸 항쟁과 역사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40년 전의 희생과 아픔을 떠나 보내기에, 5·18은 진상규명 등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그럼에도 이제는 5·18을 겪지 않는 세대가 5·18의 아픔을 안고 사는 이들보다 많아졌다. 5·18도 언젠가는 가야 할 우리의 푸른 역사임에는 분명하다.

이제 5·18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받고 있다. 어떠한 외부의 공격과 왜곡에도 꿈적 않는 불혹이 돼야 한다. 광주일보는 40주년을 맞는 5·18의 과거와 현재를 짚어보고, 5·18이 박제화된 역사 속 사건이 아닌 민주화정신으로 계승될 수 있도록 심층 기획 시리즈 ‘오월, 역사에서 일상으로’를 연재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후략>

1980년 5월 항쟁 당시 시위에 나선 청년들에게 주려고 노상에서 밥을 짓고 있는 대인시장 아주머니들. <광주일보 자료사진>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도종환 시인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의 일부다. 오월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5·18’이 되레 40년 동안 폭력과 왜곡에 시달리고 흔들려온 모습과 같다.

시인의 꽃처럼 5·18이 흔들리지 않은 날이 한시라도 있었던가. 역사의 세월 앞에서 독재의 칼날 앞에서 5·18은 그 무엇보다 흔들렸고 힘겨웠다. 힘든 세월의 시간은 그만큼 질기고도 질겼다.

40년을 흔들렸으니 이젠 ‘그러려니’ 견뎌낼만도 하지만 5·18은 아직도 흔들리고 있다. 마흔 개의 해가 가고, 달도 졌다. 이제 5·18은 세상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고, 유혹에 빠지지 않는 불혹의 나이가 됐다.

무수한 흔들림 속에 핀 5·18, 이제는 진실을 역사 속에 뿌리내려 굳건히 서야 한다.

고난의 십자가였던 5·18은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이 됐고, 민주화를 염원하는 아시아 국가들에겐 희망이 됐다. 하지만 5·18이 우리의 자랑인 것은 민주화 운동이라서기 보다는 죽음을 앞에 둔 절망 속에서도 서로를 아끼며 인간성을 잃지 않았던 공동체 정신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총칼을 들고 죽음에 맞서 싸우는 극한 상황에서도 약탈은 전혀 없었다. 현대에도 군중이 많이 모인 집회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면 약탈이 발생하지만 40년 전 광주에서는 총을 들고 항쟁하는 순간에도 질서를 유지했던 것이다. 이런 공동체 정신은 세계사적으로도 1980년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볼 수 없는 사례이다.

언제부터인가 5·18을 과거의 역사로, 이제는 놓아줘야 하는 역사로 이야기 하는 이들이 있다. 5·18하면 이젠 지긋지긋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더러 광주는 더 이상 5·18팔이를 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있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5·18이 싫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자랑스럽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럼에도 5월만 되면 흔들림을 이겨내지 못해 반목과 대립을 거듭한 것도 사실이다.

5·18은 이미 흔들래야 흔들 수 없는 뿌리 깊은 역사가 됐다. 민주화운동 20여 년 만에 국가폭력과 그 주범에 대한 법적 단죄가 이뤄졌고, 국가 차원의 명예회복과 진실 규명을 위한 법적 토대 등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민중항쟁의 정당성을 법적으로 국가적으로 완벽하게 인정받아 민주화운동으로 자리잡은 사례는 전세계 민주주의 역사를 찾아봐도 유일무이하다.

그러나 1980년 광주를 피로 달궜던 오월 정신은 우리 생활 속에 아직도 일상화되지 못하고 있다. 자식과 친구가 숨지는 절박한 상황 속에도 합리적 이성과 인간성을 바탕으로 광주를 지탱했던 ‘오월정신’이 그동안 가해자들의 거짓에 묻히고 척박한 정치·경제적 여건에 매몰돼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지 못했다.

현재에도 5·18은 갖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피해자들은 아직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으며, 5·18에 대한 진실은 가짜 뉴스로 왜곡돼 우리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오월 정신의 전국화와 세계화는 살아남은 자의 영원한 부채이자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숙명이다.

40주년을 맞은 5·18이 역사 속 묵념으로 굳어지기 전에 우리는 반드시 오월 정신을 일상에 녹여 내고 미래로 이어야 할 시점에 서있다.

1980년 ‘오월의 진상 규명’이 그 첫 발이 될 것이다.

‘5·18진상조사위원회’가 지난달 30일 출범했다. 이번 진상조사위의 진상조사는 5·18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자 유일한 기회이다.

가해자들이 진실의 입을 열고 사죄할 수 있는 진상 규명이 이뤄지고, 이를 바탕으로 오월 정신을 미래 세대에게 올곧게 계승해야한다. 1980년 5월 광주, 오월 정신의 중심은 ‘절대 공동체’의 구현이다. 절대 공동체의 핵심은 인간에 대한 사랑,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고결한 자기반응이다.

오월 정신이 역사를 넘어 우리의 일상에 스미고, 미래세대의 자산이 되도록 해야 한다. 광주의 목숨과 피로 이뤄낸 5·18이 역사 속 사건에 그치지 않고, 생활 속 민주주의로 거듭나도록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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