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품다
2019년 12월 31일(화) 00:00
“… 급히 눈을 들어 보니 물밑 홍운(紅雲)을 헤치고 큰 실오라기 같은 줄이 붉기가 더욱 기이하며, 기운이 진홍(眞紅)같은 것이 차차 나와 손바닥 넓이 같은 것이 그믐밤에 보는 숯불 빛 같더라. 차차 나오더니 그 위로 작은 회오리밤 같은 것이 붉기가 호박구슬 같고, 맑고 통랑(通朗·투명)하기는 호박도곤(보다) 더 곱더라.”

고교 시절 배운 ‘동명(東溟)일기’의 일부다. 조선 순조 때 여류 문인 의유당(意幽堂)이 함흥판관으로 부임한 남편과 함께 함흥에서 50리 떨어진 동해 바닷가를 찾아 해돋이를 보고 느낀 감흥을 한글로 기록한 기행문이다. 일출 전 붉은 빛깔의 변화와 솟아오르는 해의 모습을 생동감 넘치게 묘사해 고전 수필의 백미(白尾)로 손꼽힌다. 문장을 음미해 보면 현대의 어떤 에세이보다 일출 광경을 심미안(審美眼)으로 그렸음을 느낄 수 있다.

지난 8월 중순, 기자는 인상적인 일출 장면을 보았다. 중국 윈난성 5000m대의 하바설산(哈巴雪山)에서다. 한밤중에 캠프를 출발해 네 시간 30분가량 지났을 때 동녘 지평선에 붉은 띠가 형성됐다. 시나브로 동이 트면서 붉은 빛깔이 더욱 짙어지는 듯하더니 불쑥 해가 솟았다. ‘지구별’의 장엄하면서 가슴 벅찬 풍광이었다.

해넘이와 해돋이는 매일 반복되는 자연현상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일출·일몰을 바라보는 이의 감흥은 유별나다. 더욱이 연말과 연초에는 더욱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묵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열기 때문이다. 한국천문연구원은 올해를 넘기는 마지막 해는 신안 가거도에서 가장 늦게(오후 5시 40분)까지 볼 수 있고, 새 해를 맞는 첫 해는 독도에서 가장 먼저(아침 7시 26분) 볼 수 있다고 예고했다.

12월 31일과 1월 1일, 여수·고흥·완도·해남 등 전남 여러 지역에서 해넘이·해맞이 행사가 펼쳐진다. 순천 와온 선착장에서는 달집태우기 등 해넘이 행사가 열리고, 보성 율포 솔밭해수욕장에서는 ‘불꽃 축제’와 함께 해맞이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아듀! 2019. 새로운 해를 가슴에 품으면서 묵은해를 보낸다.

/송기동 문화2부장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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