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판
2019년 12월 25일(수) 04:50 가가
조선시대 과거 시험은 신분 상승의 유일한 방법이자, 가문의 흥망이 달린 중요한 관문이었다. 이 때문에 시험장은 수년 동안 수학해 온 전국 각지의 수많은 선비들이 몰려들면서 인산인해를 이뤘다. 특히 조선 숙종 이후 서얼(庶孼) 출신까지 시험을 칠 수 있도록 하면서부터 응시자의 신분 계층이 확대되면서, 조선 후기로 갈수록 응시생의 숫자는 더욱 늘어났다.
1678년 숙종 때는 명륜당에서 실시한 시험에 수많은 응시자들이 몰리면서 여덟 명이 압사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기록까지 있을 정도다. 연암 박지원 선생도 어느 해 과거를 보러갔다가 밟혀 죽을 뻔했다는 글이 있다. 이처럼 과거 시험이 한 번 열릴 때마다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니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어, ‘과거 시험을 보는 마당’을 ‘난장’(亂場)이라 했다.
‘난장판’은 여러 사람이 뒤섞여 어지러이 떠들어 대거나 뒤죽박죽이 된 판을 뜻한다. 이런 난장판이 최근 대한민국 국회 안팎에서 발생했다. 과거 시험을 보러 온 선비들이 아닌, 대한민국 제1야당 자유한국당이 개최한 ‘공수처법(고위공직자범죄 수사처법)·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 대회’에 참석한 당원과 지지자들, 일부 보수단체들이 그 장본인이었다.
당 대표와 원내대표 등 한국당 지도부가 총출동한 집회인데도 불구하고, 국회 경내에서 욕설은 물론 다른 당 국회의원과 당직자까지 폭행하는 폭력 사태까지 빚어졌다. 여기에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은 국회 본청 진입까지 시도하면서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한국당 지도부가 대회 참석자들을 선동하기까지 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패스트트랙’ 법안을 놓고 여야가 여전히 충돌 중이니, 국회 안팎에서 난장판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제20대 국회는 그동안 서로 싸움질만 하는 ‘동물 국회’, 게다가 민생 법안은 손도 대지 못하는 ‘식물 국회’로 불리는 등 갖은 오명을 다 썼다. 20대 국회가 종료되기까지 이제 불과 4개월여밖에 남지 않았다. 난장판으로 얼룩진 20대 국회가 남은 기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최권일 정치부 부장 cki@kwangju.co.kr
제20대 국회는 그동안 서로 싸움질만 하는 ‘동물 국회’, 게다가 민생 법안은 손도 대지 못하는 ‘식물 국회’로 불리는 등 갖은 오명을 다 썼다. 20대 국회가 종료되기까지 이제 불과 4개월여밖에 남지 않았다. 난장판으로 얼룩진 20대 국회가 남은 기간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최권일 정치부 부장 ck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