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혁명 두 열사, 하늘과 땅 차이였다
2019년 12월 13일(금) 04:50

[김정일 중앙대학교 4·19혁명기념사업회 회장]

2020년 4·19 혁명 60주년이다. 혁명이 일어나던 당시 중앙대학교 3학년으로 앞장섰다. 4·19 혁명 때 대학생 중 중앙대학교에서 가장 많은 여섯 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지금까지도 무거운 마음이 가슴을 짓누른다. 그래서 어느 누구보다 더 4·19 혁명사를 후세에 제대로 남기고자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23년 전 필자는 떨어져 있었던 4·19 혁명 영혼 부부 김태년 열사와 여학생 서현무 열사를 합장시켜 매스컴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열사들의 뜻과 정신을 기리는 것이, 살아남은 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초, 수소문하여 어렵사리 순천고등학교 출신인 후배 송규석 위령비(과역초교 정문 앞)를 찾아 참배했다. 선배가 아닌 산 자로서 먼저 챙겨야 했다. 60여 년간 드러나지 않아, 그의 이름을 아는 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더욱이나 모교 순천고등학교와 동창회 사무실로 문의한 바 1959년 졸업생 중 송규석(宋圭錫) 한자까지 같은 동성동명(同姓同名)이 세 명이나 되었다.

그중 한 사람이 4·19 혁명 때 희생자인데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가슴에 먹먹한 아픔이 밀려왔다.

반면 단양군은 후배인 지영헌 열사를 추모하는 열정과 정성이 대단했다. 이를 직접 보고자 지난 10월 27일 단양읍 대성산에 있는 4·19 혁명 민주금자탑과 그곳에서 11.2㎞ 떨어진 단성면에 있는 지 열사 모교 단양공고 교정에 세워진 추모비를 참배하고 돌아왔다.

모두 나라를 위해 희생됐지만 두 후배의 사후는 너무 달랐다. 지 열사의 죽음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단양에서 4·19 혁명 추모제를 열고, 그의 희생을 기리고 있다. 단양공고 동창회가 주관하여 2006년 화강암으로 4·19 혁명 ‘민주금자탑’을 세웠다. 그곳에는 그의 사진, 생애, 경과 보고와 중앙대학교 총장의 헌사까지 기록되었다. 4·19 혁명 정신을 그대로 담아 단양의 자랑스러운 인물로 숭앙받고 있다. 그 기념탑 앞에 서니 숙연함과 동시에, 단양이 역시 충절 고장임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자유를 찾자고 외치며 지 열사와 함께 목숨을 바친 송규석 열사는 추모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4·19 혁명의 의로운 희생이 기억 속에 사라져 갔다. 잊혀진 송 열사의 쓸쓸한 죽음에 빛을 불어 넣어 주고 싶었다.

고흥은 나라가 위태로울 때마다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구국에 앞장섰던 고장이다. 임·정 양란 충훈 의사, 항일 애국지사를 비롯한 반공 충혼 열사를 배출한 역사의 고장이다. 우리들의 역사 속에 찬란했던 문화 유산이 조상들의 얼과 함께 고스란히 남아 있다. ‘더 훼손되고 잊혀지지 않을까’ 우려되어 2016년 12월 고흥문화원에서는 1500여 쪽에 달하는 ‘마을 유래지’를 펴냈다. 이 책자를 보면 과역면 석봉리 봉촌 마을은 송 열사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이 지역에 알려진 인물로 면의원 송주성을 비롯하여 20명이 등재되어 있다. 송 열사는 찾을 수가 없었다. 고흥 현충공원에 세워진 ‘현충탑’ 후면에 어렴풋이 학생 운동자 ‘송규석’ 이름 석자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모교 과역초교 정문 앞에 56년 전 과역면민들이 세워 준 송규석 군의 위령비에서 그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비문에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피를 토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배우는 학도여, 길가는 나그네여 / 여기 못다 피고 떨어진 꽃이 있다오. / 이 땅의 자유가 그립기에 독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 그날의 총탄 앞에 맨가슴을 헤치고 뛰어 갔더래요 / 청춘을 불태워 피 거름으로 가꾼 이 땅 위해 자유의 열매를 맺게 해다오 / 배우는 학도여 길가는 나그네여 / 1964년 9월”이라고 새겨져 있다.

송 열사 비문을 보면 볼수록 우리 현대사의 슬픈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비문에 적힌 대로 뜻 있는 길손이 볼 수 있도록, 길 안내 표지판(현충 시설물) 하나라도 세워 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필자의 절규(絶叫)가 티끌 만한 물방울이 대해를 이루듯이, 송 열사 위령비와 현충탑에 새겨진 이름 석 자를 단초로 삼아 단양의 민주금자탑이 귀감이 되기를 바란다. 송 열사의 고향 그리고 모교인 과역초교, 순천고등학교에서 내년 4·19 혁명 60주년 때 작은 송 열사 흉상, 더 나아가 추모식 이라도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는 혁명 운동에 함께 참여한 산 자들의 도리이자 의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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