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문화현장 - 담양해동문화예술촌
세월이 머문 공간, 예술이 자리하다
막걸리 주조장 정체성 그대로 살려
담양군, 문화거점시설로 리모델링
막걸리 역사·제조 과정 한눈에
영상·음향으로 재현한 작품들 눈길
어린이 위한 ‘노리’도서관 오픈 예정
2019년 12월 03일(화) 04:50
담양해동문화예술촌 전경


술병을 모티브로 제작한 의자가 참신하다.


술병을 모티브로 제작한 의자가 참신하다.


해동주조장의 역사를 보여주는 아카이빙 공간


‘내가 술을 마시는 건/꼭 취하고 싶어/마시는 술 아니다./허무한 세상 땀 흘려 얻은 울분을/허기진 뱃가죽 공복에 씻어내려고/마시는 술만도 아니다./(중략)내가 말없이 술잔 비우는 건/윤회를 꿈꾸는 세월에 주먹을 치며/나를 달래는 일이다./내 가슴 일부를/누구 스친바 없는 시간에/미리 섞는 일이다./허기진 공복에 잔을 씻고 씻으며/미지의 시간을 위로해주려는/그런 마음이단 말이다.’(강태민의 ‘내가 술을 마시는 건’ 중에서)



초겨울의 길목에 찾은 담양해동문화예술촌(해동문화예술촌)은 입구에서 부터 전시장까지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매력적인 현장이었다. 옛 누룩창고를 리모델링한 주류 아카이빙 공간은 색다른 감흥을 느낄 수 있어 흥미로웠다. 나무로 엮어 놓은 천정에선 수십 년의 세월이 고스란히 머물러 있고 술 제조에 사용한 물을 긷던 우물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양한 술이야기, 문학 속 이야기를 주제로 꾸며진 섹션과 전국의 다양한 막걸리를 전시한 공간은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그곳에서 만난 한 편의 시는 잊고 있던 아날로그 감성을 일깨우며 마음의 여유를 느끼게 했다.

사실 불과 6개월 전만해도 담양 하면 추월산, 죽녹원, 관방제림, 소쇄원 등 아름다운 풍광이 먼저 떠오르는 생태 도시의 이미지가 강했다. 이 때문에 담양읍을 중심으로 하는 시가지는 담빛예술창고 이외에는 특별한 볼거리가 부족해 그냥 스쳐가는 곳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난 6월 해동문화예술촌이 문을 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해동문화예술촌은 1960년대 전통 주조방식으로 막걸리를 생산하다 2010년 폐업 이후 방치된 해동주조장을 리모델링한 복합문화공간이다. 해동주조장은 1950년대 말 고(故)조인훈 대표가 ‘신궁소주’를 인수해 현재 해동주조장 문간채에 영업을 시작하며 출발했다. 사업이 번창해 누룩창고, 가옥, 관리사, 농기구 창고 등 주조 관련 시설을 확대했고 1970년부터는 해동막걸리, 해동 동동주를 생산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막걸리 소비가 줄어들면서 주조장들도 하나 둘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담양에서 제일 잘 나갔던 해동주조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급기야 현대적인 생산방식을 도입한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2010년 해동주조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수년간 방치된 해동주조장에 햇볕이 들게 된 건 지난 2016년 부터. 담양군이 원도심내 역사·문화적 가치를 간직한 해동주조장을 문화거점시설로 재조성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디자인공예문화진흥원이 주최한 ‘2016 산업단지·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에 공모해 선정된 것이다. 사업의 내실을 기하기 위해 담양군 산하 담양문화재단 문화생태 도시팀은 이듬해 ‘담빛길’ 행사, ‘술통파티’, ‘밤샘드로잉’ 등 다양한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하며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수렴했다.

해동문화예술촌의 매력은 막걸리 주조장의 정체성을 생생하게 살린 독특한 전시구성과 콘텐츠이다. 1500여 평(5222㎡), 창고 10동, 주택 4동으로 조성된 공간에는 갤러리, 아카이브실, 교육실 등 다양한 시설들이 꾸며져 있다. 술을 빚은 주조장은 아카이브실로, 누룩창고는 전시실로 활용하는 등 기존의 산업시설을 리모델링한 공간의 역사성이 돋보인다.

1960년대 부터 막거리를 빚는 데 사용했던 우물과 막거리를 만드는 과정을 재현한 콘텐츠는 인상적이다.

‘막거리, 향을 담아내다’라는 주제의 전시실에서는 전국 각지의 막걸리들을 눈으로 즐길 수 있고 ‘막걸리, 색과 소리를 익히다’라는 공간에서는 술익어가는 소리를 영상과 음향으로 재현한 ‘작품’들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특히 인상적인 건 술을 빚던 공간과 자재를 보관하던 장소가 다양한 전시가 열리는 공간으로 변모했다는 점이다. 전시장에 창을 내 밖의 공간을 감상할 수 있고 본 전시장 사이의 너른 공간은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또한 아카이브실에서 나와 마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젊은 예술가들의 톡톡튀는 벽화들이 반갑게 맞는다.

이처럼 주조장에서 문화공간으로 변신한 해동문화예술촌은 상도 여러 차례 받았다. 최근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사)한국건축가협회가 주관한 ‘2019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우수상을 받았고 2019 지역문화대표브랜드 최우수상, 2019 매니페스토 지역문화부문 ’우수상도 수상했다.

‘해동문화예술촌’은 개관 기념전으로 공간의 역사성을 알 수 있는 해동주조장의 아카이빙 전시와 ‘도시 리듬과 예술적 행동’전을 기획해 문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양초롱 예술총감독이 기획한 개관 기념전 ‘도시 리듬과 예술적 행동’전은 주조장이 노동의 장소이자, 일상의 장소였던 역사성에 주목한 것으로 ‘삶의 터전과 함께하는 전시’를 지향하며 삶의 곳곳에 살아있는 예술의 현장을 보여줬다. 개관전 당시 설치된 예술촌 입구의 소박한 스트리트 아트는 이런 양 감독의 뜻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해동문화예술촌은 내년까지 모든 사업을 마무리 지을 계획이다. 현재 주인이 사용하던 안채의 용도를 고민중이며 와인 등을 마실 수 있는 스탠드 바도 조성하기로 했다. 또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도서관 ‘노리’도 조만간 오픈할 예정이다. 특히 주조장 앞 바로 앞의 한옥은 인문학당, 해외 작가 레지던시 등으로 활용되며 최근 매입한 교회 건물은 클래식 음악 공연, 영화 상영 등이 이어지는 ‘아레 아레아’(가칭)로 조성할 예정이다.

/담양=글·사진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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