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정의’
2019년 09월 02일(월) 04:50 가가
이청준 작가(1939~2008)의 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나환자들의 섬 소록도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병원장으로 부임한 군의관 출신 조백헌 대령이 오마도 간척 사업을 벌이면서 환자들과 갈등을 겪는다는 내용이다. 조 원장은 불신과 패배 의식에 젖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소록도의 실질적 주인인 환자들과 소통하지 않고 공사를 강행했기 때문이다.
비단 소설 속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 없는 것은 오늘의 정치, 나아가 모든 삶의 현장 또한 예외가 아니다. 더욱이 정치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일수록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저마다의 영역에서 추구하는 ‘천국’의 모습은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비이성적 마녀사냥을 중지하고 반론의 기회를 보장하라”는 주장부터 “까도 까도 끝이 없는 ‘강남 양파 조국’”이라는 조롱까지 홍수를 이룬다. 기득권층의 특혜로 박탈감을 느꼈던 이들은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을 추구했던 ‘노무현 정신’을 떠올린다. 특혜로 비칠 수 있는 딸의 장학금 문제 등은 논란 자체만으로도 조 후보자가 사과하는 게 백번 타당하다.
그러나 ‘강남좌파’이기 때문에 개혁을 추진할 자격이 없다는 것은 논리 어불성설이다. 조 후보자를 비난하는 자유한국당은 수십 년간 권력을 누리며 불법, 탈법, 비리를 저질렀다. 자신들이 만든 패스트 트랙 법안마저 팽개치고는 누구 하나 수사를 받지 않는다. 그들이 주장하는 정의는 과연 무엇인가. 반면, 우리 시대 부조리와 불의에 침묵하며 각 분야에서 ‘성공한 좌파’로 활동하는 이들은 과연 대학 시절 꿈꿨던 정의를 실현하고 있을까.
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이 세상에 천국이 없듯이 완벽한 정의도 없음을 보여 준다. 스스로가 정한 천국과 정의가 있을 뿐이다. 혹자는 이를 ‘내 안의 천국’이나 ‘선택적 정의’라고 부른다. 이 세상도, 우리도 완벽할 수 없음을 망각한 채, 완벽한 천국과 정의를 주장한다면 아귀다툼만 있을 뿐이다. “그것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숨 막히는 지옥이 되어 버릴 수 있다.”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비이성적 마녀사냥을 중지하고 반론의 기회를 보장하라”는 주장부터 “까도 까도 끝이 없는 ‘강남 양파 조국’”이라는 조롱까지 홍수를 이룬다. 기득권층의 특혜로 박탈감을 느꼈던 이들은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을 추구했던 ‘노무현 정신’을 떠올린다. 특혜로 비칠 수 있는 딸의 장학금 문제 등은 논란 자체만으로도 조 후보자가 사과하는 게 백번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