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문화유산 대흥사 <16>‘동국선원’(東國禪院)
고승대덕 선맥 면면히…청년 문재인 ‘고시’ 염원 결실도
선방스님들이 수행정진하는 공간
‘東國禪院’현판, 추사 김정희 친필
청년 문재인이 고시 준비했던 ‘7번방’
현종7년 초의선사가 지은 ‘대광명전’
서산대사·초의선사 선맥 이어지는
2019년 08월 28일(수) 04:50

해남 대흥사 동국선원(東國禪院)은 스님들이 수행 정진하는 곳으로 한국불교의 근간이 되는 공간이다.

대통령 문재인이라 쓰여진 시계.




청년 문재인이 고시 공부를 했던 7번방.




청년 문재인이 고시 공부를 했던 7번방.










그 청년은 각심(刻心)했다. 그래 원 없이 공부를 해보자. 더 이상 물러설 곳도, 패배할 것도 없었다.

지나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유신반대 시위를 주도하다 구속과 동시에 제적까지 당했다. 검찰로 이송되는 날, 호송차에 올라 바라본 밖의 날씨는 너무도 좋았다. 모든 것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아무 일이 없다는 듯 하늘은 맑고 투명했다. 차가 출발하려는 순간, 구멍이 뚫린 철판 너머로 누군가 차를 따라오며 손을 휘젓는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였다. 차가 사라질 때까지 어머니는 눈을 떼지 않고 오래도록 이편을 바라보았다.

청년은 머리를 흔들었다. 죄스러움과 회한이 밀려왔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어머니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그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사법시험을 치르기로 작정한 이상 좌고우면할 수 없었다. 물론 퇴로는 없었다. 석방이 되자마자 바로 입대를 하고, 3년간의 군생활을 그렇게 마쳤다. 제대는 했지만 모든 것이 막막했다. 복학은 안 된 데다, 그렇다고 허송세월을 보낼 수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변고를 당했다. 친척 회사 일을 도와주기 위해 출근했다가 갑자기 쓰러지셨다고 한다. 심장마비였다. 이제 겨우 59세. 아버지는 1950년 12월 흥남철수 때 고향을 떠나오신 실향민이었다.

청년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말수는 없지만 사회의식이 강한 분으로 남아 있다. 청년은 아버지의 일생을 돌아보며 가슴이 저미는 아픔을 느꼈다. 아버지의 삶은 떠도는 부평초와도 같았다.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삶에 지쳐 서서히 생명의 불이 꺼져갔던….

해남 대흥사. 아버지의 49재를 마치고 청년은 그렇게 남도의 사찰을 찾았다. 아버지를 위해 마지막으로 잘 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한가닥 희망을 품고서.

천년 가람 대흥사는 고즈넉한 사찰이었다.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새벽예불을 알리는 범종소리만이 고즈넉한 산사를 깨울 뿐이었다. 그렇게 청년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에 매진한다. 공부하는 틈틈이 머리를 식히기 위해 탁 트인 해남의 바다를 보기도 했다.

“대흥사도 좋았지만 둘러싸고 있는 두륜산도 매우 아름다운 산이었다. 공부에 지치면 산길에서 보이지 않는 계곡으로 가서 벌거벗고 목욕을 했다. 때로는 두륜산 정상에 올라 그 너머로 내려다보이는 ‘땅끝’을 바라보기도 했다. 해남 땅끝마을에서 보면 그냥 바다와 방파제가 보일 뿐이다. 두륜산에 올라가서 봐야 ‘땅끝’임이 실감난다. 한반도의 끝부분이 바다와 맞닿아 있는 모습, 그리고 그 너머의 다도해를 멀리서 바라보면 가슴이 뭉클해지곤 했다.”(문재인, 『문재인의 운명』, 북팔, 2018, 170~171쪽)

그리고 세월이 흘러 청년은 2017년 5월 9일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된다. ‘운명의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곡절이 많았다. 두 번의 구속과 제적, 고시 합격, 시민운동가, 인권변호사, 노무현 전 대통령 비서실장…. 영광과 고난은 비례하는 것이어서 가혹한 만큼 그것의 열매 또한 값진 법이다.

해남 대흥사(주지 법상) 동국선원(東國禪院) 7번 방. 푸른 청년 문재인이 고시를 준비했던 방이다. 세계문화유산 대흥사가 보유한 또 하나의 ‘이색적인 보물’이다. 필자가 방문한 날도, 몇 분의 산행객들이 방을 구경하고 갔다.

때마침 하안거(夏安居)가 끝난 지 얼마 안 돼, 동국선원 출입이 가능했다. 하안거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 3개월 간 스님들이 참선하는 것을 말한다. 혹자들은 “말 없는 포교이자 한국불교의 근간”이라고 말하는데, 그만큼 수행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맴맴맴맴-” 숲에서 들려오는 매미의 울음소리가 제법 당차다. 무더위가 물러가는 즈음의 매미소리는 여느 때보다 앙칼지다. ‘매미 함부로 욕하지 마라. 그대들은 단 한번이라도 모든 것을 바쳐 울어본 적이 있던가.’

매미 소리를 귓가로 흘려들으며 마루에 걸터앉는다. 앞으로 펼쳐진 대광명전(大光明殿)이 눈에 들어온다. 헌종7년(1841) 초의선사가 건립한 전각이다. 당시 전라수군절도사인 추사의 제자 위당 신관호와 소치 허유 등이 합심해 추사의 방면을 위해 지었다고 전해온다.

청년 문재인도 공부를 하다 가끔씩 문을 열고 대광명전(大光明殿)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자신의 삶에도 서광의 빛이 비쳐들기를 희원하면서 말이다. 또한 이 땅의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에게도 서기(瑞氣)가 깃들기를 염원했으리라.

댓돌 위에 가지런히 신발을 벗어놓고, 조심스럽게 7번 방 문을 연다. 빈한하면서도 깔끔하다. 한쪽에 작은 책상과 간단한 침구가 놓여 있다. 벽면에는 소박한 그림의 액자가 걸려 있고, 뒤쪽 벽면에는 동근 시계가 덩그러니 걸려 있다. 자세히 보니 시계에 ‘대통령 문재인’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저편에 걸린 작은 죽비는 수행하는 스님들 대상이 아닌, 어쩌면 산문 밖에서 온 이들을 향한 깨우침의 도구로 보여 절로 옷깃이 여며진다.

동국선원은 초의선사 때 만들어졌다. 대흥사가 13대종사와 13대강사를 배출한 것은 그러한 선풍과 무관치 않다. 근대에도 많은 스님들이 동국선원을 거치며 수행정진의 가풍을 이어나갔다. 동국선원 글씨는 제주도 유배생활을 마치고 대흥사에 들른 추사가 쓴 친필이다.

대흥사 월우 스님은 “청년 문재인의 고시 합격은 동국선원에서 시작된 염원이 감응한 것이었다”며 “당시에 예비군 훈련을 빠지지 않기 위해 주민등록증을 대흥사로 옮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흥사는 서산대사와 초의선사의 선맥이 이어지는 남방제일수행도량”이라고 덧붙였다.

7번 방을 나와 경내를 가만히 거닌다. 햇귀가 떨어진 숲 너머로 저만치 가을이 오고 있다. 고시(考試)라는 관문을 통과했던 문 대통령은 세월이 흘러 또 다시 ‘고시’(苦時)에 직면해 있다. 어려운 시절이고 어려운 난국이다. 청년의 시절에 품었던 염원과는 차원이 다른 통찰과 혜안이 필요한 때다.

/글·사진=박성천기자 sky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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