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광풍과 일제
2019년 08월 22일(목) 04:50
‘예향’이라는 광주가 고층 사각형 건축물로 가득차고 있다. 올라가는 것은 아파트이며, 사라지는 것은 광주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택, 상가, 학교, 공원, 공장 등이 있었던 자리, 설령 그것이 광주의 역사, 광주의 문화, 광주의 정체성 등을 내포하고 있어도 순식간에 없어지고 있다. 지난 2015년 6월 말 사용 중인 아파트가 998개 단지 37만 382호에서, 4년이 지난 올해 6월 말에는 1097개 단지 41만 2623호로 급증했다.

사실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현상이다. 미국, 유럽 등에서 주요한 개인 공간을 공유해야 하는 아파트가 대표적인 주거 공간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심 내 단독 주택 상당수가 너무 낡아 살기에 불편하고 기반 시설과 편의 시설도 미비해 아파트 인기가 급상승했다. 거기에 부동산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정부 정책이 계속 이어지면서 아파트가 ‘부’를 상징하고, 그것을 부풀려 주는 ‘상품’이 돼버렸다.

아파트 단지는 특정 집단이 공유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폐쇄성’을 지니고 있다. 상업시설, 공원, 광장, 공공시설 등과는 공간의 성격 자체가 다르다. ‘상품’인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에 대해 애착이 상대적으로 적고, 거주의 지속 가능성이 낮다 보니 공동체 의식이 미약하다. 주변인들과의 관계 맺기에도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도시가 갈수록 삭막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리나라에서의 개발은 일제 강점기에 본격화됐다. 근대화와 도시화라는 미명 아래 일제 강점기 본토에서 대거 이주한 일본인 대부분은 금전을 목적으로 식민지 조선을 찾았다. 예나 지금이나 쉽게 부를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토지를 개발해 그 수익을 독식하는 것이었으며, 일본인들은 식민지에서 이 같은 방식으로 부를 챙겼다. 만일 100년 전 건축·토목 기술이 현재와 같았다면, 광주는 이미 아파트 숲으로 뒤덮였을 것이다. ‘반일’을 넘어 ‘극일’을 이야기하고 있는 지금, 도시 공간에서 일제와 같은 개발 방식을 혁신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현안이다.

/윤현석 정치부 부장 chad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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