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영의 ‘그림 생각’ (271) 기생충
가난 하다고 모두가 기생충은 아니다
2019년 06월 13일(목) 04:50

최호철 작 ‘북아현 뉴타운 개발지구’.

화제의 영화 ‘기생충’을 관람하고 나서 감독이 권했던 ‘소주 한잔’ 대신 ‘맥주 한잔’을 마셔야 했다.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생각이 들지만, 영화가 슬프고, 씁쓸하고, 무서웠기 때문이다. 감상평을 한마디로 줄이자. 부자가 아니라면 우리는 모두 기생충인가 하는 극단적인 비애감을 갖게 하는 영화라고, 나는 보았다.

영화에는 세트로 잘 만들어진 반지하 가옥이 즐비한 동네가 나온다. 서울에는 실제 그런 동네가 지금도 있을 것이다. 서민들의 주거지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이 가득 담겨있는 그림 한 점과 영화를 동시에 떠올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삶은 숙주 곁에 들러붙은 기생충이 아니라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자기 함량껏 부단히 노력하는 거룩한 존재라는 생각을 새삼 해본다.

최호철 작가(1965~ )의 ‘2010년 북아현 뉴타운 개발지구’(2010~2016년 작)는 젊은 시절 작가의 작업실이 있었던 북아현동이 재개발된다는 소식을 듣고 그리기 시작한 작품으로 주택가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굽이굽이 사람과 사람의 삶이 연결되고 서민들의 고달프지만 소소한 일상이 사실적이고 세밀한 묘사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멀리 보이는 재개발 아파트, 그 뒤로 북한산, 중간의 철길 등 개인과 세대의 삶이 함께하는 공간과 기억이 켜켜이 묻어난다.

“7년에 걸쳐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림에 나오는 동네 절반이 없어져 뉴타운으로 개발되었다”고 말하는 작가는 “한 개인의 기억과 공간이 송두리째 사라지지 않고 존중받는 사회였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그림에 등장하는 서민들을 그림 속에서는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삶의 가치를 지니고 살아가는 공간의 주인, 세상의 주인공으로 그리고 싶었다”고 들려준다.

20대 때 ‘전태일 평전’을 읽고 감화를 받아 청계피복노조원과 야학교사로 활동하며 전태일의 일대기를 만화로 그렸던 작가는 현재 회화, 만화, 일러스트레이션, 애니매이션 등 현대 시각문화의 거의 모든 장르를 통해 우리 시대 풍속을 그려오고 있다.

<광주시립미술관학예연구관·미술사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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