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미안 수업’ 펴낸 ‘전방위 아트 워커’ 윤광준씨
2019년 04월 09일(화) 00:00 가가
“아름다움 아는 힘 생기면 인생이 달라진다”
글 쓰는 사진가·오디오 평론가…미술·음악·건축·디자인 섭렵
‘일’·‘놀이’ 경계 나누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지금까지 이어와
나이 티 안내고 사는 방법은
새로운 호기심 끊임없는 유지
‘좋아하는 일 하며 살겠다’면서
결행하지 못하는 까닭은?
글 쓰는 사진가·오디오 평론가…미술·음악·건축·디자인 섭렵
‘일’·‘놀이’ 경계 나누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지금까지 이어와
나이 티 안내고 사는 방법은
새로운 호기심 끊임없는 유지
‘좋아하는 일 하며 살겠다’면서
결행하지 못하는 까닭은?
윤광준(60)을 한 단어로 규정할 수 없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글 쓰는 사진가, 오디오평론가, 칼럼니스트 등으로 부른다. 사진과 오디오, 와인, 미술, 건축, 디자인에 이르는 그의 폭넓고 지속적인 예술적 활동영역을 감안하면 ‘전방위 아트 워커’(Art Worker)나 예술탐구가, 또는 ‘딜레탕트’(예술 애호가)에 가깝다. 한국 중년 남자들의 로망중의 로망이라 부를만 하다. 최근 ‘심미안 수업’(지와인 펴냄)을 펴내 반향을 얻고 있는 그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상가건물 지하 1층에 자리한 개인작업실 ‘비원’에서 만났다.
◇눈 수술하고 ‘심미안’ 집필=“‘비원’은 내 일터이자 놀이터입니다.”
시원스런 민머리에 동그란 안경, 멋진 콧수염, 부드러운 미소는 윤광준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다. 윤광준은 매일 ‘비원’으로 출근한다. 16년째 이곳에서 커피콩을 갈아 커피를 내리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글을 쓴다. 비원은 지하 1층(B1)에 자리해서 붙인 공간 이름이다. 문을 열고 내부공간에 들어서면 한쪽 벽면을 차지하는 오디오 시스템과 탄노이(Tannoy) 스피커를 중심으로 LP판과 책, 소품들로 빽빽하다. 우리 시대의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다운 작가의 정체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그의 ‘보물창고’다.
작가는 2017년 10월, 독일 드레스덴에서 취재도중 오른 눈에 이상을 느꼈다. 처음에 침침하던 눈이 점점 장막을 친 듯 하다가 아예 볼 수 없게 됐다. 부랴부랴 일정을 정리하고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왔다. 진단결과 ‘망막박리’라는 눈 질환이었다. 세 병원, 세 의사 모두 냉담하게 똑같은 진단을 내렸다. 두 차례 수술을 거쳐 다행스럽게 실명위기를 피할 수 있었다.
이때 신체적인 불편을 겪으면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각도 모두 의식적인 활동’이라는 자각을 했다. 예술애호가로 살면서 봤던 것, 경험했던 것, 좋다고 했던 것을 사람들과 나눠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해서 3년 전 출판계약을 하고 미뤄뒀던 ‘심미안(審美眼) 수업’을 밀린 숙제 하듯 쓰기 시작했다. 심미안은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능력’이나 ‘미적인 가치를 느끼는 능력’을 의미한다.
작가는 ‘문화 생산자’가 아니라 ‘문화 수용자’의 입장에서 서술했다. 직접 경험한 사례들을 중심으로 사진과 미술, 음악, 건축, 디자인 분야를 하나하나 살폈다. 지난해 12월 서점가에 첫 선을 보인 윤광준의 ‘심미안 수업’은 필자도 깜짝 놀랄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 생존확률 바다에 뛰어든 터닝 포인트=그의 스펙트럼은 사진과 오디오, 미술, 음악, 건축,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폭 넓다. 20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40여 년간 관심의 지평(地平)을 꾸준히 넓혀온 결과다. 굳이 ‘일’과 ‘놀이’의 경계를 나누지 않았다. 또 ‘좋아하는 것’을 중도에 버리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왔다는 점이 남들과 다르다.
작가는 6년째 애플과 소니의 혁신적인 디자인 원류인 독일 ‘바우하우스’(Bauhaus)에 관심을 쏟고 있다. 2년 전 눈이 멀 뻔 했던 독일 드레스덴 역시 ‘바우 하우스’ 취재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내년쯤 바우하우스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윤광준은 중앙대 예술대학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월간잡지 ‘마당’과 ‘객석’에서 사진을 담당했다. 이후 웅진출판으로 자리를 옮겨 사진부장을 맡아 우리 눈으로 한국의 자연생태를 기록하는 최초의 대규모 다큐멘터리 프로젝트인 ‘한국의 자연탐험’을 8년간 진행했다. 적외선 센서장치와 고속 스트로보를 활용한 곤충사진을 찍기 위해 일본 최고의 자연생태사진가인 구리바야시 사토시(栗林 慧)를 찾아가 노하우를 배우기도 했다.
37살이던 1996년에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냈다. 고 구본형(2013년 작고) 변화경영연구소 소장이 쓴 계발서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 실린 ‘앤디 모칸 이야기’를 읽고 난 후의 일이었다. 바다에 뛰어들면 1%의 생존확률이 있고, 그대로 남으면 죽음뿐인 난파선에 탄 선원의 스토리였다. 그는 퇴사한 후 곧이어 닥친 IMF에 집 평수를 줄여 이사하는 등 힘든 시기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에 절실함을 갖고 견뎠다. 2011년 펴낸 ‘마이웨이-윤광준의 마이웨이’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뛰어든 바다에서 살길은 스스로 헤엄쳐 나가는 것뿐이었다”고 묘사했다. 우리가 현재 아는 ‘전방위적 아트 워커’ 윤광준은 1%의 생존확률을 믿고 바다에 뛰어든 선택의 결과다.
사진의 기본적인 자세를 알려주는 ‘잘 찍은 사진 한 장’(2002년)과 오디오 세계를 다룬 ‘소리의 황홀’(2007년), 생활 속 디자인과 기능이 뛰어난 물건을 소개하는 ‘윤광준의 생활명품’ 등은 ‘윤광준’이라는 이름을 독자들에게 각인시켰다. “연필이 아니라 창조의 도구를 만든다”는 독일 파버 카스텔 연필처럼 그가 소개한 ‘생활명품’은 기능성 외에도 만든 사람의 정신과 뛰어난 디자인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의 글은 책상머리가 아니라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한 실증주의적 글쓰기에 중점을 둬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누구보다 독보적인 소재와 맛깔난 필력을 갖춘 그는 ‘잘 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를 잡았다.
◇새로운 호기심 끊임없이 끄집어내야=그는 대학시절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조립 오디오를 구입한 것을 시작으로 40여 년간 오디오와 함께 해왔다. 오디오라는 ‘기계’가 아니라 거기서 나오는 ‘음악’이 더 중요하다. 그는 “좋아하는 음악을 섬세하게 듣기 위해서 오디오 기기를 쓰는데 작은 차이에 의해 감동의 폭이 달라진다. 인생에 빗대면 사람의 관계와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오디오를 통해 인생을 배웠다”고 강조한다.
윤광준은 올해 환갑을 맞았다. 나이 티를 안내고 사는 방법은 ‘새로운 호기심을 끊임없이 유지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여러 글에서 독자들에게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되묻는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즐겨라’가 아니라 ‘제대로 하라’고 한다. ◇많은 직장인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겠다’고 결심하면서도 결행을 하지 못하는 까닭은 왜일까?
“결국은 내가 뭘 좋아하는 줄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결정도 못하는 거예요. 좋아하는 것조차 전부다 (남의 것을) 수입한 거야. 신문이나 책에서 본 것을 마치 내 것인 양 포장하고 있는 거죠. 정확히 말하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겁니다. 파올로 코엘료 식 메시지를 던지자면 ‘어쨌든 인간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다 이뤄진다’는 거예요.”
/파주=글·사진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 제공=윤광준>
시원스런 민머리에 동그란 안경, 멋진 콧수염, 부드러운 미소는 윤광준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다. 윤광준은 매일 ‘비원’으로 출근한다. 16년째 이곳에서 커피콩을 갈아 커피를 내리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글을 쓴다. 비원은 지하 1층(B1)에 자리해서 붙인 공간 이름이다. 문을 열고 내부공간에 들어서면 한쪽 벽면을 차지하는 오디오 시스템과 탄노이(Tannoy) 스피커를 중심으로 LP판과 책, 소품들로 빽빽하다. 우리 시대의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다운 작가의 정체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그의 ‘보물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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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문화 생산자’가 아니라 ‘문화 수용자’의 입장에서 서술했다. 직접 경험한 사례들을 중심으로 사진과 미술, 음악, 건축, 디자인 분야를 하나하나 살폈다. 지난해 12월 서점가에 첫 선을 보인 윤광준의 ‘심미안 수업’은 필자도 깜짝 놀랄 정도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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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몽골여행 당시 초원에서 말과 함께 한 윤 작가. |
작가는 6년째 애플과 소니의 혁신적인 디자인 원류인 독일 ‘바우하우스’(Bauhaus)에 관심을 쏟고 있다. 2년 전 눈이 멀 뻔 했던 독일 드레스덴 역시 ‘바우 하우스’ 취재 중에 일어난 일이었다. 내년쯤 바우하우스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책으로 펴낼 계획이다.
윤광준은 중앙대 예술대학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월간잡지 ‘마당’과 ‘객석’에서 사진을 담당했다. 이후 웅진출판으로 자리를 옮겨 사진부장을 맡아 우리 눈으로 한국의 자연생태를 기록하는 최초의 대규모 다큐멘터리 프로젝트인 ‘한국의 자연탐험’을 8년간 진행했다. 적외선 센서장치와 고속 스트로보를 활용한 곤충사진을 찍기 위해 일본 최고의 자연생태사진가인 구리바야시 사토시(栗林 慧)를 찾아가 노하우를 배우기도 했다.
37살이던 1996년에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냈다. 고 구본형(2013년 작고) 변화경영연구소 소장이 쓴 계발서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 실린 ‘앤디 모칸 이야기’를 읽고 난 후의 일이었다. 바다에 뛰어들면 1%의 생존확률이 있고, 그대로 남으면 죽음뿐인 난파선에 탄 선원의 스토리였다. 그는 퇴사한 후 곧이어 닥친 IMF에 집 평수를 줄여 이사하는 등 힘든 시기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에 절실함을 갖고 견뎠다. 2011년 펴낸 ‘마이웨이-윤광준의 마이웨이’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뛰어든 바다에서 살길은 스스로 헤엄쳐 나가는 것뿐이었다”고 묘사했다. 우리가 현재 아는 ‘전방위적 아트 워커’ 윤광준은 1%의 생존확률을 믿고 바다에 뛰어든 선택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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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몽골여행 당시 초원에서 말과 함께 한 윤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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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은 올해 환갑을 맞았다. 나이 티를 안내고 사는 방법은 ‘새로운 호기심을 끊임없이 유지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여러 글에서 독자들에게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되묻는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즐겨라’가 아니라 ‘제대로 하라’고 한다. ◇많은 직장인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겠다’고 결심하면서도 결행을 하지 못하는 까닭은 왜일까?
“결국은 내가 뭘 좋아하는 줄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결정도 못하는 거예요. 좋아하는 것조차 전부다 (남의 것을) 수입한 거야. 신문이나 책에서 본 것을 마치 내 것인 양 포장하고 있는 거죠. 정확히 말하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겁니다. 파올로 코엘료 식 메시지를 던지자면 ‘어쨌든 인간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다 이뤄진다’는 거예요.”
/파주=글·사진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사진 제공=윤광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