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현 광주 증심사 주지] 희망이 곧 신이다
2019년 03월 22일(금) 00:00
“밤! 밤! 밤! 바아아암“

아직 새벽 6시가 되지 않은 시각, 긴 가뭄 끝에 내리는 반가운 봄비라고는 하지만 가로등 하나 없는 시골 국도는 내리는 비 때문에 칠흑처럼 깜깜하다. 새벽 4시부터 예불에 기도까지 하고 나선 터라 몰려오는 졸음과 사투를 벌이며 혼자 가고 있는데, 느닷없이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이 차 안을 가득 채운다. 차에서 듣는 USB는 김광석부터 바하까지 갖가지 음악들이 장르를 불문하고 두서없이 들어가 있다. 다음에 무슨 노래가 나올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의외성은 이 USB가 선물하는 덤이다.

아마도 나는 ‘운명’을 중학교 때 처음 들었을 것이다. 그리곤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는 베토벤의 말을 어디선가 본 것도 그 즈음이었을 것이다. 베토벤의 ‘운명’을 알고 지낸 지 40년이 훌쩍 넘은 셈이다. 그동안 아마도 수백 번 이상 베토벤의 ‘운명’을 들었을 것이다. 베토벤이 실제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내 알 바 아니지만, 60을 바라보는 즈음에 와서야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는 말을 했던 베토벤의 심정을 처음으로 헤아려 본다.

그에게 운명이란 작곡가에게서 소리를 빼앗아 가는 냉혹하고 비정하고 잔인한 존재다. 동시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휘두르는 무심하고 절대적인 존재이다. 그런데 그의 ‘운명’ 어디에서도 신세 한탄이나 운명에 대한 증오 같은 것은 느낄 수 없다. 오히려 후반부로 갈수록 운명에 대항하여, 운명을 헤쳐 나가려는 인간의 결연한 의지와 심지어 승리의 환호까지 느껴진다.

그의 개인적인 운명을 생각하며 ‘운명’을 듣고 있노라면 ‘운명’의 위대함에 절로 숙연해 진다. ‘운명’을 다시 듣고 있자니 ‘운명’은 그의 희망이 아니었을까 싶다. 비록 현실에서는 운명에 난도질당해 그 몰골이 말이 아니었을지라도 상상 속에서는 운명과의 목숨을 건 투쟁에서 승리하여 가슴 벅찬 감동을 토해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상에서 일상으로 돌아올 때마다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게임에서 로그아웃하여 다시 현실로 돌아온 청년의 심정과 비슷하였을까? 게임 속에서는 청년 백수도 노력만 하면 뭐든 될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다. 그들에게 게임은 무기력만 안겨주는 냉혹한 현실보다 훨씬 더 살 맛나는 세상이다. 그러나 게임에 심취하는 십대들은 이미 만들어진 세계만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살맛나는 게임 속 세상은 그저 게임 속 세상일 뿐이다.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많은 젊은이들이 한 때 게임에 빠져드는 것도 현실이지만 또한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게임 속에 안주하지 않는 것 또한 현실이다.

예술은 다르다. 예술가의 창작 작업은 온전하게 주체적이고 자기 주도적이다. 상상은 그리고 예술은 인간의 전유물이다. 현실에서 운명의 전횡이 날로 극악무도해 질수록 예술을 향한 영혼의 자유로운 비상은 더욱더 빛을 발한다. 냉혹하고 무자비한 현실은 인간으로 하여금 꿈꾸게 한다. 꿈은 예술을 통해 현실이 된다. 개인의 희망이 예술 작품을 통해 현실화될 때 비로소 개인의 희망은 많은 이들과 공유된다.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을 향한 의지가 된다.

물론 갓난아기가 울며 엄마를 찾듯, 가혹한 운명에 내동댕이쳐진 우리들은 애타게 신을 찾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의 기도에 대답하지 않는 신을 비난하고 증오하기도 한다. 그러나 얼굴이 상기 되고 목이 터지도록 우는 것은 갓난아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유일한 길이다. 유감스럽게도 어른이 된 우리들은 이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 갓난아기가 울며 엄마를 찾는 것은 유일한 선택이지만, 인간이 신을 찾는 것은 유일한 길이 아니다. 유일한 길이 아니기에 신을 증오하고 비난하기도 하는 것이다.

거역할 수 없는 운명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이 교향곡 ‘운명’을 작곡하였듯,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신을 향한 호소나 현실에 대한 냉정한 인식보다 그 현실 위에 꽃피우는 희망이다. 비록 운명처럼 현실이 무자비하고 냉혹할지라도, 희망할 수 있다면 현실은 살아갈 만하다. 죽음의 유대인 수용소에서도 희망의 불씨 하나 마음 속에서 꺼지지 않는다면 인간은 살아간다. 인간은 희망하기 때문에 존재한다. 희망이 곧 우리들의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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