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지명과 유래 : 몸 낮추고 서로 품어주며 ‘통크게 ’‘둥글게 살라’는 두륜산
2019년 01월 23일(수) 00:00
백두산의 ‘두’(頭)·중국 곤륜산 ‘륜’(崙)에서 나온 두륜산
두륜산 봉우리들 둥근 바퀴 닮아 바퀴 ‘륜’(輪)으로 바껴
두륜산 옛 이름은 ‘한듬’…‘한’은 크다 ‘듬’은 둥글다는 뜻
서로 안고 안아 둥글게 한덩어리가 된 산과 천년 사찰

‘큰 둥근덩어리’라는 뜻을 지닌 대둔산(두륜산)에는 둥글게, 통크게 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늘 위에서 바라본 천년 고찰 대흥사의 아름다운 전경. <대흥사 제공>

올 겨울엔 눈이 내리지 않는다. 산하에 소복이 쌓인 눈을 본지 오래다. 그러나 눈이 없어도 겨울은 겨울이어서 나름의 운치가 있다. 시린 하늘과 메마른 바람은 자연 본연의 모습을 닮아 있다. 벌거벗어 오히려 성성한 나무와 밋밋한 숲이 오히려 보드랍다. 역설의 미학은 그렇게 늘 곁에 있는 것이리라.

해남(海南)에 가기 좋은 날이다. 바다에 면한 남쪽이라는 시적인 뜻이 좋다. 가다 보면 언젠가는 바다에 당도할 것이다. 그곳에 가면 땅끝에서 열리는 무한의 경지를 볼 수 있다. 인식의 범주를 깨뜨리는 그 오묘한 순간! 그러므로 남행은 언제나 설렌다. 설렘은 만남으로 이어지고 만남은 비속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협애(狹隘)의 무지를 깨달아야 무애(無碍)의 겸허와 만날 수 있다.

우슬(牛膝)재는 해남의 관문이다. 잿마루가 높아 소도 무릎을 꿇는다는 산마루다. 이곳 사람들 말로 ‘소물팍’, ‘소무릎’이다. 고갯마루를 가축에 빗댄 옛 선인들의 수사가 정겹다. 소물팍, 소무릎이었으니 살갑고 구성지다. 삶과 예(藝)를 따로 두지 않는 남도사람들의 무구(無垢) 한 면모다.

구름은 낮아 산그림자가 머문다. 먼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바다의 숨이 깃들어 있다. 청량한 공기에 깃든 미미한 바다의 향기. 하늘과 바다와 땅이 가까운 듯 이웃하면서도 멀다는 얘기다. 한편으로 “두륜산은 삼재가 들어오지 않고 만세토록 파괴되지 않는다”는 서산대사의 혜안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다.

“해남은 우슬재가 높아 전차가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이었다. 운고(雲高)가 낮아 전투기가 높게 뜰 수 없어 공중에서의 공격도 어려웠다. 여기에 바다도 낮아 해상세력의 침범도 그렇게 용이하지 않았다.”

예비역 대령 출신인 이성춘 송원대 국방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서산대사의 삼재가 들어오지 않고 만세토록 파괴되지 않는다는 말은 그러한 맥락과 연계해 볼 수 있다”며 “남도의 여러 사찰 가운데 지세로 따지면 대흥사만한 곳이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군사학, 국방학, 전술학의 전문가 말을 들으니 지세와 해남의 연관성이 하나로 꿰진다. 지세와 풍수를 인문학적 사유로 풀어내니 말이다. 실전에서 지형과 전술을 터득한 이의 말은 그래서 개론서와는 다른 문리를 깨우쳐준다.

대흥사 범종.


우슬재를 넘어서자 대흥사는 지척이다. 조바심 내지 않아도 쉬이 당도할 거리다. 대흥사를 감싸고 있는 산은 두륜산(頭輪山)이다. 또는 대둔산(大芚山)이라고 부른다. 1997년에 대둔사지간행위원회와 강진문헌연구회가 간행한 ‘대둔사지’(大芚寺志)에는 이렇게 표현돼 있다.

“산맥은 끊어질 듯 하다가 돌연히 솟아 올라 두 개의 봉우리가 하늘에 닿을 듯 하니 이것이 대둔산이다. 대둔산은 산 꼭대기의 날카로운 봉우리들이 쭈빗하고 골짜기들은 사방을 에워싼 채 수백리나 내리 뻗쳐서 스스로가 한 판을 이루고 있으니 여느 산과도 견줄 수가 없다.”

‘대둔사지’는 대둔산(두륜산)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도 자세히 묘사한다. 요약하면 이렇다.

중국 곤륜산(崑崙山)의 동쪽 가닥이 한반도로 뻗어 백두산(白頭山)을 이루고, 다시 방향을 돌아 남쪽으로 내려온다. 태백산 줄기들이 노령이 되고, 추월산, 서석산, 월출산, 덕령산을 이루고 마침내 해남에 내려와 대둔산이 된 것이다. 길고 긴 여정은 그렇게 남도 땅 해남에서 완료된다.

여기에서 두륜산 지명의 유래를 유추해볼 수 있다. 백두산의 ‘두’(頭)와 곤륜산의 ‘륜’(崙)에서 왔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원래 한자 ‘륜’(崙)은 어떻게 바퀴 ‘륜’(輪)으로 바뀌었을까. 월우 대흥사 주지스님에 따르면 “두륜산을 에워싸고 있는 봉우리들이 사이좋게 연이어 있는 모습이 둥근 바퀴의 형상을 닮은 데서 유래된 것 같다”고 설명한다. 그러고 보니 사방팔방의 연봉들이 사이좋게 어깨를 걸고 있다. 이쪽 봉우리에 말을 하면 저쪽 봉우리가 답을 해올 것 같다.

그렇다면 대둔산의 유래는 어떻게 나온 것일까. 고문에 따르면 두륜산의 옛 이름은 ‘한듬’이었다고 한다. 우리말에 ‘한’은 ‘크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둠’과 ‘듬’은 ‘둥글다’라는 의미와 연관돼 있다. 그러므로 ‘대둔’은 ‘큰 둥근덩어리’를 지칭함을 알 수 있다. 예전에 대둔사를 ‘한듬절’, ‘대듬절’이라고 불렀던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가만히 눈을 감고 대흥사를 품은 두륜산(대둔산)을 그려본다. 산이 감싸 안은 모습이 안온하면서도 평온하다. 맞춤하니 원래 그곳에 절이 있었던 듯 같기도 하다. 대흥사 편에서 보면 두륜산을 향해 몸을 낮춘 것이고, 두륜산 편에서 보면 안은 것이다. 안고 안아 둥글게 한덩어리가 된 모습이 저리도 아름답구나.

해발 703m인 두륜산에서 바다는 멀지 않다. 대개 바다를 끼고 있는 산은 지세가 웅혼하면서도 경관 또한 수려하다. 아름다움은 일체와의 조화 속에서 발아된다. 대흥사 인근이 풍광이 뛰어난 것은 주위와 벗하는 격조 때문이다.

그러나 대흥사의 내력에 대해서는 정확하지 않다. 창건에 관한 설이 분분하다. 신라에 불교를 전파한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설이 있고, 신라 말의 도선국사가 지었다는 설도 있다. 현재로서는 나말여초가 유력하다. 당시의 유물에서 시기를 추정할 뿐이다.

“대흥사 경내에 있는 유물 중에 응진전 앞의 삼층석탑(보물 320호), 두륜산 정상 바로 못미쳐 있는 북미르암의 마애불(국보 308호)과 삼층석탑(보물 301호), 그러니까 나라에서 보물로 지정한 대흥사의 세 유물이 모두 나말여초의 시대양상을 지니고 있다.”(유홍준, 『나의문화유산답사기1』, 창작과비평사, 1993)

누가 언제 창건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한듬’, ‘한둠’의 정신을 얼마나 담아내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저 대둔산이 가르치는 것은 통크게, 둥글게 살라는 의미다. 오늘 우리가 가야할 길을 천년의 사찰을 품은 영험한 산은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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