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옥숙 인문지행 대표] 익숙한 것들과 이별하기
2018년 12월 24일(월) 00:00
자연의 순리와 변화를 통해서 자신들의 삶을 이해하는 인디언족에게 12월은 ‘다른 세상의 달’ 또는 ‘침묵의 달’이다. 12월에는 새롭게 시작하는 한 해를 준비하거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조용하게 차분하게 지내라는 뜻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12월이면 마음이 더 조급해지거나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아진다. 도대체 그 많던 시간은 어디에 다 썼으며, 굳은 결심으로 세웠던 계획들은 기억조차 희미하니 어찌 된 일인가 싶은 것이다. 여느 다른 달들과 같은 속도로 12월의 시간도 흘러가는 것이 틀림없는 일인데도, 항상 12월은 더 짧고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결국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말을 쏟아 내고 오전과 오후를 나눠서 하루에도 몇 번씩 약속을 잡는 바람에 우리네 12월은 침묵의 시간으로는 언감생심일 뿐이다.

낡은 것을 비우지 않으면 새로운 것이 들어올 자리가 없다는 것쯤은 누구나 경험을 통해서 잘 안다. 그럼에도 낡은 것을 비우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모든 낡은 것에는 낯익은 것이 주는 익숙함과 편안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털어 내기가 가장 어려운 것은 낡은 생각과 오래된 습관, 몸에 밴 태도일 것이다. 생각과 습관은 긴 시간에 걸쳐 낡아 갈수록 친밀해지고 익숙해져서 ‘나 자신’이 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견고한 틀이 되어서 ‘나’를 지배하고 통제한다. 이런 의미에서 낡은 것이 주는 익숙함과 이별하기는 불편하고 두려우며 고통스러운 일이다. 낡은 것과 이별한다는 것은 곧 지금까지의 익숙하고 편안했던 내 모습과 결별하고 새롭고 낯선 나를 찾아가는 불편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는 익숙함에 길들여진다. 하지만 익숙한 것을 떠나지 않고는 새로운 시작이 있을 수 없으니, 언제나 마무리는 마침표를 찍는 끝맺음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의 다른 표현이아 하겠다.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는 일은 단순히 불편하거나 고통을 감수하는 것 이상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 파장이 개인적인 영역의 일이 아니고 역사적이고 보편적인 문제일 때는 더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경우가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1473~1543)다. 코페르니쿠스는 폴란드 출신의 천문학자겸 성직자로 천년 넘게 세계를 지배하던 천동설이 옳지 않다는 주장을 쓴 책을 펴 낸 첫 번째 학자다. 지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상식 밖의 일이지만 당시에는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돈다는 천동설이 절대 진리이자 신의 은총을 드러내는 확실한 증표였다. 지구는 신의 손길로 직접 창조된 인간들이 사는 곳이어서 전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생각은 과학과 이성이 아니라 신앙의 문제였다. 여기에 천동설의 진짜 의미가 있다. 이런 뜻에서 지구가 태양의 주변을 돈다고 하는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은 모두에게 익숙하고 편안한 생각과 태도에 대한 단호한 결별의 차원을 넘어서 세계를 지배해 온 절대 권력과 체계를 완전하게 뒤집는 혁명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지지한 지오르다노 브루노(1548?-1600)는 일반 재판이 아니라 종교 재판을 받은 뒤 절대자의 뜻과 섭리를 부정한다는 죄목으로 화형까지 당했다. 그럼에도 코페르니쿠스의 생각은 모든 사람들의 인식과 가치관에 큰 변화는 물론 인류 역사의 새로운 출발이 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기존의 낡은 틀을 완전히 뒤집는 새로운 사고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한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해서 반드시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역사적 일이거나 사회적 결단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견고하게 굳어진 낡고 익숙한 틀을 허물고 새로운 길을 내는 선택이라면 작고 개인적인 일 또한 위대한 전환이다. 너무나 익숙해서 낡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어려울 만큼 정체된 나와의 과감한 이별을 통해서만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더 성장하고 변화하고자 한다면 먼저 할 일은 우리 안에 쌓여 있는 낡고 익숙한 것들과 이별하는 것,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습관의 길로 더 이상 가지 않는 것이다. 새로운 시도, 새로운 계획으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차분하게 준비하기에 12월은 더없이 좋은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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