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세훈 고려대 명예교수] 노년의 처연함, 노년의 경이(驚異)
2018년 11월 06일(화) 00:00
유대의 고대 문헌들은 인간의 생애를 ‘짧고 악하다’(few and evil)고 요약한다. 창세기에서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춘추가 얼마시냐?’는 파라오의 물음에 했던 답 또한 “내 나그네 인생이 걸어 온 ‘짧고 악한’ 70년…”이었다. 비극적 정서는 노년의 감회에도 서려 있어서, 솔로몬이 말년에 쓴 구약 최고의 지혜서 전도서의 마지막 장은 이렇게 기록한다. “백발이 찾아와 모든 욕망이 끊기면 육체 위의 메뚜기 한 마리도 짐이 되고… ‘내 죽음을 슬퍼할’ 애곡자들은 거리로 흩어지리라.” 그러나 그 속절없는 무상함 속에서도 영원을 꿈꾸는 인간은, 오늘도 ‘죽어도 변치 않을 사랑’을 되뇌며 ‘저 하늘, 저 바다 끝까지 단둘이 살자’며 서로를 위로하는 존재다.

C.S. 루이스는, 물고기가 물을 찾듯, 무릇 모든 갈망이란 이미 존재하는 것에 대한 그리움이라 말한다. 가령 인간이 영원을 꿈꾼다면 그것은 영원한 세상이 어딘가 실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죽음에 관한 모든 사유가 반증(反證)조차 불가능한 가설일 수밖에 없다면, 죽음이란 어떤 철학적 언명으로도 쉽사리 초월되거나 냉소 또는 무시될 수 없는, 두렵고 부자연스런 그 무엇일 터이다. 하여 병고와 외로움의 그림자마저 짙어지면 노년은 더욱 처연해진다.

지난 5월 타계한 미국 작가 필립 로스의 소설 ‘에브리맨’에는, 분방하고 원기왕성한 날을 보내던 주인공이 느닷없는 질병으로 20여 년을 고통 속에 보내다 죽음을 맞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입원과 수술이 거듭되고, 친지도 취미도 젊은 여자에게도 흥미를 잃어가던 주인공이 마침내 맞닥뜨린 것은 관계의 절멸이다. 자신의 우상이던 형의 성공과 건강마저 점차 참을 수 없는 질투의 대상이 되면서는 그 다감하던 형과의 관계도 단절된다. 존재의 이유와 보람이 온통 손주 얘기뿐인 실버타운의 노인들 틈에서 그의 고독은 더 절망적으로 깊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이 주는 최악은 그것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동안 노년은 ‘이것 아니면 저것과의 전쟁, 무자비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친숙했던 이들이 하나둘 소멸해 가는 것을 보면서, 그는 노년을 ‘전쟁 아닌 대학살’이라고 느낀다. 주인공은 “살점이 썩어 가도 뼈는 남으니, 신은 허구이고 내세는 없다고 믿는 내게, 뼈만이 유일한 위안”이라며 자학하기에 이른다.

로스 못지않게 우리에게 친숙한 폴 오스터가 ‘브루클린 연가’(The Brooklyn Follies)에서 그린 노년은 사뭇 다르다. 주인공은 폐암을 통보받자 ‘조용히 죽기 위해’ 어릴 때 떠났던 브루클린을 다시 찾는다. 그리고 죽음의 예감에 몸서리치는 노년이 아니라, 저마다의 상처로 허물어져 가는 가까운 이들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느라 분주한 일상을 보낸다. 그 와중에 새로운 사랑을 찾고 또 만나기도 하며, 틈틈이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잡다한 기억들을 기록하는 일도 멈추지 않는다. 구태여 쾌락을 탐하지도, 인정받고자 노심초사하지도 않으며, 각별한 소망이 있는 것도 아니니 조바심 내며 안달할 일도 없고, 그렇다고 불의를 하찮게 여기는 것도 아니며, 일이 틀어졌다고 원망과 자책에 빠지지도 않는… 그저 긍정하며 사는 무난한 세월이었다.

그러나 밀려드는 노년의 체념과 상실감만은 어쩔 수 없다. 유망한 영문학도였던 조카가 뒤늦게 발견한 그의 작가적 재능을 경축하며 “글쓰기는 영혼의 독감 같아서 언제 누구를 강타할지 모른다”고 거인들의 예를 동원하여 장광설을 늘어놓지만, “60세에 작가가 되는 일은 누구에게도 불가능하다”고 굳게 믿는 완강한 노년을 설득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여전히 그 자신은 ‘글쓰기가 단지 소일거리인, 더는 아무 할 일이 없는 은퇴한 보험 외판원’에 불과했던 것이다.

인생의 남은 날들을 세며 지혜를 배우는 일은 노년만이 누리는 특권이라는 잠언을 잠시 떠올리다가, 오래 전 한 대학신문에서 보았던 글 하나가 생각났다. “한스-게오르그 가다머를 세계적 철학자로 알린 ‘진리와 방법’은 그가 60세 되던 해에 출판한 첫 저서였다. 그가 20세기 지적 사건이라 할 여러 논쟁에 참여한 것도 모두 그의 나이 60을 넘어서였다… 칸트가 ‘인간학’을 썼을 때 나이가 74세였고, 미켈란젤로가 성 베드로 성당 둥근 천정의 구상에 몰두한 것은 팔순을 넘기고였다. 독일 안과 의사 히르슈베르크는 75세에 현역을 은퇴한 뒤 아랍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 결실이 7권짜리 연구서 ‘안과 의학의 역사’였다. 당시 남자들의 평균 수명은 40세였다. 블레이크는 단테를 연구하기 위해 60세에 이태리어 공부를 시작했다.”

신화처럼 들리는 이들의 노년은 보통 사람들에게도 감동과 희망을 준다. 그러나 젊음 하나에 가능성을 걸었던 청춘마저 가고, 병고와 외로움에다 OECD 최고의 빈곤율을 매일 몸으로 살아 내는 이 땅의 노인들에게 노년의 경이란, 그저 터무니없는 한담에 불과하리라. 가난은 먼저 상상의 잠재력을 질식시키고, 물질과 정신이 고갈된 곳에 남는 것은 권태(ennui)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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