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공연의 경제학
[데스크시각-박진현 제작국장, 문화선임기자]
2018년 08월 29일(수) 00:00
‘시카고’ ‘빌리 엘리어트’ ‘물랑루즈’ ‘금면왕조’…. 평소 공연을 즐기는 애호가라면 한 번쯤 들어 보았을 외국의 소문난 브랜드 공연 이름이다. 뉴욕이나 런던을 여행하는 이들에게 브로드웨이의 ‘시카고’와 웨스트엔드의 ‘빌리 엘리어트’는 놓치면 후회할 수밖에 없는 ‘인생 뮤지컬’이다. 과거엔 유명 관광지를 수박 겉핥듯이 둘러보는 게 유행이었지만 요즘은 그 도시의 문화를 체험해 보는 ‘콘텐츠 관광’이 대세가 됐다.

중국 고대 신화의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한 베이징의 ‘금면왕조’(金面王朝)는 문화 관광의 성공 케이스다. 주·야간 하루 두 차례 시내 중심가의 전용 공연장 ‘해피 밸리’에서 연중 열리는 공연은 매회 1000여 석의 좌석이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뜨겁다.

무엇보다 탄탄한 스토리와 예술적 연출은 백미라 하겠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총지휘한 장예모 감독의 연출력과 무대 미술, 음향에다 출연 배우 200여 명의 환상적인 조화가 객석을 압도한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모세의 기적과 맞먹는 일명 홍수 신(scene, 장면)이다. 극의 사실감을 살리기 위해 360도 회전이 가능한 무대 위에서 500여 톤의 물이 실제로 휘몰아치는 장면은 관객들로 하여금 전율을 느끼게 한다.

지난 2011년 대구 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을 통해 세상에 나온 ‘투란도트’는 대구판 ‘금면왕조’쯤 된다. 중국을 배경으로 한 푸치니의 동명 오페라를 새롭게 해석한 작품인데, 대구시와 DIMF 사무국이 중국 시장을 겨냥해 수년간 공들여 온 브랜드 공연이다. 극중에 차이나풍의 음악을 삽입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 같은 환상적인 협업 덕분에 국내외에서 통하는 히트 상품으로 떠오르며 지역 경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외지에서 온 관객들은 저녁 공연이 끝난 후 대구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경우가 많아 호텔이나 음식점의 매출에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광주를 보면 아직도 체류형 관광의 불모지나 다름없다 할 것이다. 현대 미술의 한바탕 축제인 광주비엔날레가 있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문화전당) 등에서 빅 이벤트들을 개최하고 있지만, 밤늦게까지 관광객의 발길을 붙드는 상설 야간 콘텐츠가 부족하다. 때문에 미술관이나 전시장을 둘러본 외지인들이 관람을 마치고 ‘미련 없이’ 광주를 떠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광주시가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지난 2011년 광주문화재단을 통해 9억 원을 투입한 ‘자스민 광주’를 필두로 2억5000여 만 원을 들인 ‘님을 위한 행진곡’과 ‘빛고을 아리랑’ 등을 무대에 올렸지만 완성도가 떨어져 결국 사장(死欌)되는 운명을 맞았다. 의욕만 앞선 나머지 오랜 준비 기간을 거치치 않고 급조해 무대에 올린 탓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공연 콘텐츠를 관광과 연계시키는 정교한 전략과 (이를 지휘하는)전담 기구가 없다는 것이다. 얼마 전 2019 광주 세계마스터즈수영선수권대회(8월5~18일)를 겨냥한 문화 관광 대책 회의도 그랬다. 시 문화관광체육실장의 주재로 열린 이날 회의는 산하 문화정책관, 문화예술진흥과, 관광진흥과 관계자가 참석해 마스터즈대회 참가자를 공연장으로 끌어 들이는 콘텐츠를 모색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브랜드 공연의 필요성에는 공감을 하면서도 정작 어느 부서가 추켜들 것인가에 대해선 모두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발을 빼느라 바빴다고 한다.

세계수영선수권대회의 부대 행사인 마스터즈 대회는 200여 개국에서 1만5000명의 수영 동호인이 참가하는 메가 이벤트다. 수영 선수들이 참가하는 본행사와는 달리 대부분 가족 단위로 여행을 겸해서 오는 데다 체류 기간도 최소 1~2주여서 실제 방문객은 등록자의 2~3배에 달한다. 역대 수영대회 개최지 가운데 흑자를 낸 도시들 역시 마스터즈 참가자들의 문화 소비에 ‘웃을’ 수 있었다. 이를 감안하면 문화관광을 꿈꾸는 광주로서 마스터즈 대회는 천금 같은 기회다.

최근 광주시는 서구 세계 광엑스포주제관을 브랜드 상설 공연장으로 리모델링해 광주를 대표하는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한편의 ‘웰메이드’ 공연을 제작하려면 기획에서부터 제작까지 긴 호흡이 필요하다. 지속 가능한 콘텐츠를 위해선 배우는 물론 조명, 무대, 연출 등 인적 인프라에 대한 지원과 투자가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고품질 공연에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만큼 문화전당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은 필수다.

‘자스민 광주’는 단기간의 성과에 집착한 문화 속도전의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 준, 지역의 흑역사였다. 동시에 ‘메이드 인 광주’의 감동을 담아낼 명작은 지속 가능하면서도 작품성이 높아야 한다는 교훈을 일깨워 주기도 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예술의 도시 ‘광주다움’을 보여 주려면 내년 수영선수권대회의 개막에 맞춰 지금부터 문화 관광의 로드맵을 새로 짜야 한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미션은 예술, 축제, 관광의 시너지를 이끌 컨트롤 타워를 세우는 것이다.

/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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