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언론인] 돌아가면 안 되나
2018년 08월 21일(화) 00:00
민주화 이후 한때 민주화 투쟁을 해 온 한쪽을 도덕주의 세력으로, 산업화를 주도해 왔던 다른 한쪽을 실용주의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이 두 세력이 힘을 합쳐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열어 나가자는 주장이 대두되기도 했었다. 나 역시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역사는 우여와 곡절을 겪으면서, 다른 길을 걸어 왔다. 민주화 운동 세력에 대한 기득권 세력의 도덕적 열등감이 그들로 하여금 이념 논쟁과 색깔 공세를 불러일으키게 했고, 그것이 오늘의 좌우나 진보·보수 논쟁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이른바 산업화 세력의 실용 능력이라는 것도 보잘것없는 것이 되었고, 민주화 운동 세력의 도덕성이라는 것도 더 이상 떳떳하게 내세울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나 자신이 겪어 왔고 또 알고 있는 민주화 세력이란 이 나라의 정치적 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던졌고, 그러기에 살아오는 동안 쫓기는 거리의 뒷골목이나 감옥에서 내 조국의 현실을 끌어안고 적어도 한 번쯤은 울어 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 민주화 운동 세력은 오직 30여 년에 걸친 군사 독재의 청산과 조국의 민주화만을 향해 시야를 가린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려왔기 때문에, 안보와 외교 통상, 먹고사는 문제 같은 구체적 정책에 대해서는 미처 깊은 연구나 통찰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의 민생 문제에 대한 접근이 어딘지 미덥지 못하고, 특히 요즈음 갈팡질팡하고 있는 대입 제도와 관련한 교육 정책에 나타나고 있는 무능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발묘조장(拔苗助長)의 고사



최근 소득 주도 성장론에 기초한 최저 임금제의 실시, 52시간 근로제와 탈원전 정책 등 문재인 정부가 역점을 두어 시행하고 있는 일련의 경제 정책에 대한 국민적 저항과 이의가 이어지고 있는데, 이것도 정의감과 의욕만 앞서는 정책 운용의 미숙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심히 걱정된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발묘조장(拔苗助長)의 고사를 떠오르게 한다. 그 고사의 내용은 이렇다.

송(宋)나라 때 어느 농부가 있었는데, 그는 자기 논에 심은 벼의 묘가 빨리 자라지 않는 것이 안타까워 매일 논에 나가 모를 바라보았다. 매일 같이 나가서 지켜봐도 모가 자랄 기미가 보이지 않자 농부는 초조하게 논 주위를 왔다 갔다 하다가 모들이 자라는 것을 도와줄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 억지로라도 모가 자랄 수 있도록 자기가 도와주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논으로 달려가 모를 하나하나 뽑아서 크기를 높게 하였다. 금세 모들이 커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아침부터 해가 서산에 떨어질 때까지 온 힘을 다하여 모를 뽑는 일을 계속하였다. 그리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온 집안 식구들을 모아 놓고 자신이 한 일을 자랑하였다. 그 말은 들은 아들이 황급히 논으로 달려가 보니, 모가 모두 뽑혀서 말라 죽어 있었다.

경제 문제에 관한 한 문외한으로서 매우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재정 지출로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도가 OECD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가 최하위권이라고 하니, 가난한 사람들에게 소득 자체를 올려 주기 위한 노력은 정의감에 입각한 선한 의지임에는 틀림이 없겠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누리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최저 임금제도 역시 꼭 필요한 제도다.

그러나 그 최저 임금제로 인하여 살길이 막힌 600만 자영업자, 예컨대 편의점·치킨점·미용실 등 영세업자들은 “노동자만 국민이냐, 우리도 국민이다”며 광화문 거리에서 절규하고 있다. 그동안 좀처럼 단체 행동에 나서지 않았던 사람들이 집단행동으로 나선 것이다. 평화가 경제라고 하지만 그래서 더 불안하다. 거기다 늘린다는 일자리는 거꾸로 줄어들고, 줄어야 할 실업자는 늘어만 가고 있다. 그 방향과 목표는 만 번 옳지만 모를 빨리 키우자고 한 노릇이 모를 죽이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는가.

최저 임금제를 시행하되 일본처럼 단계적으로 할 수는 없는 것인가. 아베 총리가 2015년에 1000엔까지 올리겠다고 공약한 이후 일본은 3년 연속 3% 안팎씩 오르고 있다니, 2년 만에 29.1%나 인상되는 한국의 최저 임금제와는 크게 대비가 된다. 52시간 근로제와 관련해서도 일본은 노사 합의에 따른 유연성의 보장, 재량 근무 제도의 도입을 병행하고 있다고 한다. 외신의 지적처럼 노동자의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마련한 제도가 ‘저녁 식사를 걸러야 하는 삶’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탈원전 정책에 있어서도 원칙은 지키되 유연성을 발휘할 수는 없는 것인가 묻고 싶다.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갈 수도



거기에다 안팎에서 들려오는 국민 경제의 경보음도 심상치 않아 보인다. IMF 전망치에 의하면 세계 경제는 작년 3.7%에서 올해도 같은 고성장이 이어질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만 거꾸로 침체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민이 체감하고 있는 경기도 심상치 않아 보인다.

모처럼 편 정책을 중간에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줄 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도 당초에 자신이 반대하던 한미FTA를 앞장서 체결했고,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후퇴할 수 있는 것도 지혜요 용기다. 막히면 돌아가는 것이 더 빠른 길일 수도 있다. 물이 흐르는 것이 그렇다. 급하면 돌아가라는 속담도 있지 아니한가. 가다 못 가면 쉬었다 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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