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의 ‘좌측담장’] 수치심을 느낀다면
2018년 05월 17일(목) 00:00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스마트폰 중에 하나인 아이폰은 원래 카메라 효과음이라는 게 없다. 카메라 모드에서 촬영 버튼을 누르면 ‘찰칵’ 소리가 나는 것은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존재하는 기술적 옵션인데, 이는 일명 ‘몰래 카메라’라고 불리는 불법 촬영을 막기 위한 조처이다. 그만큼 상대의 동의 없는 촬영이나 불순한 목적을 가진 촬영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말일 텐데, 더 씁쓸한 것은 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이러한 불법 촬영과 범죄가 늘어 가고 있다는 현실이다.

몰래 남의 사진을 찍는 일은 예의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초상권 침해에도 해당된다. 하물며 화장실·탈의실 장면이나 성행위 모습을 몰래 담는 것은 심각하고 파렴치한 범죄임이 분명하다. 몇몇 철없는 사람들이 모여 앉아 낄낄대고 소비하고 말 일은 아니란 말이다. 이 범죄의 피의자 대다수는 남성이다.

필자를 포함하여 그들은 오래전부터 사회적 도덕 결함에 매몰되어 촬영물을 공유해 왔다. ‘**양 비디오’를 함께 보며 부지불식간에 지워 버렸던 죄의식이 기술의 발전을 만나 도덕적 붕괴를 일으킨 것이다. 리벤지포르노에 ‘국산’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해외에서 촬영된 불법 영상의 피해자에게 ‘원정녀’ 딱지를 붙이는 (일부?)남성에게 21세기의 평균적 도덕률을 요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먼저 그것을 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인간 이하의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

놀랍게도 야구를 보면서도 수치심을 느낄 때가 있다. 오랜만에 정자세로 앉아 보는 야구 중계, 심지어 더욱 오랜만에 보는 투수전, 게임은 이닝이 쌓일수록 박빙 양상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카메라가 자꾸만 그라운드나 더그아웃이 아닌 관중석을 잡는다. 최근 기록이나 의미 있는 수치가 나와야 할 타이밍에 여성을 비춘다. 선수의 환호나 좌절의 표정을 보여 주어야 할 순간에 일어서서 박수치는 아까 비춰 준 여성을 다시 좇는다. 그 여성은 아마도 카메라맨이나 PD가 보기에 젊고 예뻤을 것이다.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었으면 좋고, 몸에 딱 붙거나 약간의 노출이 있으면 더 좋다. 중간중간에 일어나 응원에 맞춰 율동이라도 해 준다면 금상첨화다.

익숙한 풍경이다. 흥겨운 응원을 위해서는 미니스커트와 ‘탑’을 입은 치어리더가 필요하다.(실제 포털사이트에 ‘탑’을 검색하면 관련 검색어에 ‘프로야구 치어리더’가 뜬다. 대체 왜?) 경기 중 경기장에 배트를 수거하는 일 또한 불편한 복장을 한 ‘배트걸’의 몫이다. 카메라는 귀신처럼 ‘젊고 예쁜’ 여성을 찾아 허락도 없이 텔레비전 화면에 송출한다. 경기가 끝나면 정장을 입은 해설가 두 명과 몸매가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은 여성 아나운서 한 명이 진행하는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이 시작된다. 아나운서는 출력된 대본으로 허벅지를 가리기 바쁘지만, 어째서인지 의자는 높고, 카메라는 낮다.

야구팬은 이제 야구장을 둘러싼 일련의 성적 대상화에 부당함과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 그러나 일부(!) 팬들은 중계 화면에 잡힌 여성을 캡처해 게시판에 올려놓고는 ‘OO녀’라고 이름 붙이고 평가하길 주저하지 않는다. 아름다움과 아름답지 않음에 대한 주관적이고 저열한 판단이 이뤄지고 그것은 댓글이라는 이름의 배설물이 된다. 이렇게 많으면 수십만 명이 보는 야구 중계가 거대한 불법 촬영의 수단이 되고, 놀이터가 되는 것이다. 이 끔찍한 놀이는 결코 야구가 아니다. 고척에서, 사직에서, 잠실에서 중계 카메라가 ‘젊은 여성’을 찾는 이유가 그 화면을 보는 남성 팬을 위함이라면 남성 모두가 해당 방송사에 수치심을 느낄 일이다. 아무리 수심 깊은 수치심이라도, ‘언제 찍힐지 모르는’ 공포심에 비하면 가뭄 속 계곡물에 불과할 테지만.

중계권을 가진 방송사도 엄중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최근 각 구단은 원작자와 저작권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응원 등에 있어 음악을 쓰고 있지 않다. 팬의 입장에서 서운한 마음이 없지 않아 있지만, 창작자의 지적재산권은 지켜져야 함이 마땅하다. 여러 사람이 함께 부르는 노래에도 이처럼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는데, 사람의 얼굴을 방송의 재료로 씀에 있어 이토록 게으르고 뻔뻔한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 경기장의 분위기를 알리기 위해 관중석을 이따금 노출할 수는 있지만, 같은 사람을 여러 번 의미 없이 송출하는 것은 명백한 전파 낭비일 것이다.

야구장에 여성 팬이 많아졌다고 한다. 여성 팬 앞에서 어설픈 지식으로 야구를 설명한다고 우쭐대다가는 ‘맨스플레인’(남자들이 무작정 여자들에게 아는 척 설명을 늘어놓는 행동)이라 공박당하기 십상이다. 당연한 일이다. 세상의 거의 절반은 여성이고, 여성과 남성이 야구를 즐기는 방식과 이유, 열정은 결코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여성 모두는 남성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야구장에 온 것이 아니다. 야구장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곳에서 그렇다.

다시 수치심의 계곡물로 돌아오자. 시원한 계곡물은 사람의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하기도 한다. 그깟 야구 중계 화면과 불법 촬영물이라니,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두 영상은 동일인의 모니터에서 재생되었을 수 있다. 더 이상 수치심을 느끼고 싶지 않다면, 야구 문화를 바꾸고, 불법 촬영물은 안 보면 된다. 공포와 수치에 비해 아주 쉬운 해결책 아닌가.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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