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도시 아이콘이 되다〈19〉 도쿄 모리오카 서점] 매주 한 권만 판다
명품숍 즐비 긴자 쇼핑가 뒷골목 간판도 없는 6평 공간
오래된 서랍장·구식 전화기 … 책보다 먼저 눈에 띈 그림
아트디렉터 책 판매땐 갤러리·꽃 서적은 플라워숍 변신
책에 맞는 전시·퍼포먼스로 전 세계 고객 마음 사로잡아
2018년 04월 02일(월) 00:00

6평 규모의 모리오카 서점은 매주 한 권의 책을 전시회와 강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곁들여 판매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권의 책만 파는 서점이 있다. 아니 (어떨 때는)한 달에 한가지 책만 팔기도 한다.

만약 이런 서점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십중팔구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 문을 닫게 될 것이다. 그런데 놀라지마시라. 일본 도쿄에는 ‘한번에 한 권만 책을 파는’, 말도 안 되는 컨셉으로 3년 가까이 꿋꿋이 살아남은 서점이 있다. 도쿄 긴자의 잇초메에 자리한 ‘모리오카 서점’이다.

잇초메는 수많은 명품 숍이 들어서 있는 긴자의 쇼핑가에서 조금 떨어진 뒷골목이다. 오래된 건물이 군데군데 자리한 동네는 인적이 뜸해서인지 대낮인 데도 해질녘의 스산한 분위기가 감돈다.

모리오카 서점을 처음 방문하는 이들은 여러 번 놀란다. 이런 칙칙한 동네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과 그 흔한 간판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점 앞에 도착해서도 여기가 맞는지, 한참 고민하게 된다. 그러다 유리창 한켠에 작은 영문글씨로 가게 이름과 주소, 그리고 한 권의 책이 있는 공간이라고 적힌 문구(Morioka Shoten & Co, Ltd. Single Room With A Single Book, Suzuki Building, 1-28-15 Ginza, Chuo-Ku, Tokyo, Japan)를 발견하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필자 역시 그랬다.

모리오카 서점이 ‘입점해’ 있는 스즈키빌딩은 1940년 대 초반 일본 정부의 홍보매체인 ‘닛폰’(nipppon)을 펴낸 출판사가 있었던 근대 건축물이다. 1층에는 서점과 패션, 헤어 숍 등이 들어서 있어 ‘올드 & 뉴’의 감성이 느껴진다. 아마 모리오카 서점이 이곳에 둥지를 틀 게 된 건 이런 독특한 아우라 때문이었으리라.

서점 안으로 들어서면 예상치 못한 풍경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약 6평 정도인 내부는 책보다는 그림이 먼저 방문객을 맞는다. 순간, 서점인지 갤러리인지 착각이 들 정도다. 인테리어 역시 여느 서점과는 사뭇 다르다. 천장까지 설치된 서가 대신 긴 테이블 두 개와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오래된 서랍장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 위에는 70∼80년대의 구식 전화기가 자리하는 등 아날로그적 감성이 물씬 풍긴다.

하지만, 모리오카 서점의 하이라이트는 흰색 벽면에 걸려 있는 수십 여 점의 그림들이다. 일본의 전통만화를 연상케 하는 그림들은 시세이도 아트 디렉터의 작품들로 서점 한가운데 비치된 테이블 위에 인쇄된 책으로도 진열돼 있다. 말이 책이지 대형 포스터를 책 형태로 디자인한 도록 같다. 1∼24번까지 번호가 적힌 미니 도록을 펼치면 작가의 그림과 작품세계가 함께 담겨 있다. 서점 한켠에 마련된 간이 서가에는 24개의 도록을 한데 묶은 책 세트가 꽂혀져 있다. 그러고 보니 서점에서 발견한 유일한 책이다. 실제로 모리오카 서점은 아트디렉터의 작품과 책을 9일간(2017년 12월19일∼28일) 판매했다.

이처럼 모리오카 서점은 ‘한번에 한 권만 파는’ 독특한 컨셉으로 유명한 곳이다. 서점의 벽면과 테이블에 진열된 책은 단 한 종류일 뿐이다. 책은 작가에 따라 일주일 또는 한 달 간격으로 바뀐다. 그때마다 서점의 내부 풍경은 달라진다. 아트디렉터의 책을 판매할 때는 근사한 갤러리로 변신하고 꽃에 대한 책을 내놓을 때는 향기로운 플라워숍으로 바뀐다. 음식에 관한 책을 팔 때는 미슐랭 맛집이 부럽지 않은 레스토랑으로 변하고 고양이와 반려견 책을 선보일 때는 동물 그림이 서점의 벽면을 장식한다. 책을 매개로 갤러리, 레스토랑, 카페 등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매번 옷을 갈아입는 것이다. 기발한 컨셉이 입소문을 타면서 모리오카 서점은 일본 전역뿐 아니라 한국, 중국, 멀리 미국과 유럽에서까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

숲(모리)과 언덕(오카)이란 뜻의 모리오카 서점은 20여 년간 책방을 운영해온 모리오카 유시오키(44) 씨의 아이디어에서 탄생했다. 도쿄 진보초의 유서깊은 고서점 ‘잇세이도’와 사진전문 헌책방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그는 좋은 책 한 권만 있으면 얼마든지 고객들을 불러 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특히 지난 2006년 도쿄 가바야초에서 사진전문 헌책방 ‘모리오카’를 운영한 경험은 큰 밑천이 됐다.

“사진집을 주로 취급하던 서점의 성격에 맞춰 갤러리 공간을 마련해 전시회를 자주 개최했었어요. 여기 저기서 화보 촬영이 가능한 스튜디오로 이용하고 싶다는 제안이 들어왔어요. 매스컴과 SNS를 통해 책방이 알려지게 되면서 사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책방을 많이 찾아 주었어요. 그런 모습을 보니 문득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행복한 소통의 장을 본격적으로 운영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때 독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한 권의 책만 있으면 멀리서도 온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죠.” 약 9년간 그의 표현대로 ‘황야에서’ 버티며 터득한 교훈이다. 당시 그의 경험담은 근래 ‘황야의 헌책방’으로 국내에 출간되기도 했다.

그의 역발상은 운 좋게 투자자 도야마를 만나게 되면서 지난 2015년 5월5일 지금의 자리에 문을 열게 됐다. 비록 특정한 기간에 한 권의 책만 판매하기 때문에 수익성은 높지 않지만 전시회와 그림 판매 등의 파생 상품으로 매출 효과를 얻는다.

모리오카 서점이 3년 만에 독립서점의 대안으로 떠오르게 된 데에는 평면적인 책을 ‘입체적으로’ 보여준 덕분이다.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의 내용을 전시회나 강좌, 퍼포먼스 등으로 고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한 게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책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네요.” 모리오카 유시오키는 2년 전 서점을 찾은 손님이 그에게 건넨 말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힘들 때마다 그 말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는다. 수많은 책이 쏟아지는 시대, 때론 한 권의 책에 갈증을 느끼는 독자들도 많다. 모리오카 서점은 양보다 질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행복한 ‘놀이터’다.



※ 이 시리즈는 삼성언론재단의 기획취재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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