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도시 아이콘이 되다] 〈16〉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
2018년 03월 12일(월) 00:00
독서·쇼핑·체험 서점에 경계를 허물다

고객들이 매장내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다.

일본 도쿄의 다이칸야마(代官山)에 사는 마에다 요코(63)씨는 매일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자리한 츠타야 서점이 그녀의 목적지다. 오전 10시가 지난 이른 시간이지만 이미 서점 곳곳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시니어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녀가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 한가하게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던 주민이 반갑게 손을 흔든다. 거의 매일 서점으로 출근하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된 동네친구다. 마에다 역시 서점의 카페에서 주문한 커피를 받아 들고 친구 옆으로 다가가 어제 구입했던 소설 책을 꺼내 든다. 2시간이 흘렀을까.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두 사람은 옆 건물에 들어서 있는 레스토랑으로 ‘건너가’ 식사를 나누며 수다 삼매경에 빠진다. 오후에는 서점 2층의 대중문화 매장에 들러 평소 좋아하는 한국 드라마의 OST 음반을 구입할 계획이다.

마에다씨는 “서점에서 책도 읽고 점심도 먹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며 “2년 전 교직에서 은퇴할 때 어떻게 노후를 보낼까 고민했는데 괜한 걱정을 했던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츠타야 서점과 인연을 맺으면서 인생 2막의 즐거움을 얻게 됐다는 것이다.

그녀의 말 처럼 다이칸야마의 츠타야 서점은 ‘시니어들의 천국’이다. 지난 2011년 일본의 베이비부머인 단카이세대(1947∼1949)를 겨냥해 도쿄 시부야의 한적한 주택가에 둥지를 틀면서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60세 이상 프리미어 에이지(premier age)에 포커스를 맞춰 여가와 쇼핑을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신개념의 라이프 스타일을 내세운 게 통했다. 그로부터 개점 7주년이 지난 지금, 츠타야 서점은 세대와 지역을 뛰어 넘는 ‘만인의 문화플랫폼’으로 변신했다.

일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된 데에는 츠타야 서점의 독특한 발상과 기획력을 빼놓을 수 없다. 먼저 장소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츠타야 서점은 젊음과 쇼핑의 중심지인 시부야 역에서 남쪽으로 10분쯤 걸어가면 만나게 되는 주택가에 자리하고 있다. 접근성이 좋은 도심 한복판이나 대로변의 여느 서점들과 달리 고급주택과 트렌디한 숍으로 이어지는 한적한 동네다. 주민의 상당수가 현직에서 은퇴한 시니어들이어서 츠타야의 컨셉에 부합한 최적의 장소다.

츠타야 서점에 대한 첫 인상은 모던함, 그 자체다. 주택가 부근의 아담한 공원 옆에 자리한 서점은 2층 높이의 3개 건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마치 자연과 하나된 느낌이다. 특히 대형 유리와 화이트 톤으로 마감된 외관은 서점이라기 보다는 트렌드한 디자인 숍이나 갤러리를 연상케 한다. 3개의 건물이 구름다리로 이어진 서점은 겉보기와 달리 연면적이 1만3200㎡(4000평)에 달한다.

넓은 면적은 파격적인 디자인을 가능하게 했다.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기능적인 공간이 아니라 책을 읽거나 음악과 영화를 감상하는 쉼터로 과감히 연출한 것이다. 장르별로 도서를 분류하는 일반 서점과 달리 츠타야는 인문·문학, 아트, 건축, 자동차, 요리 등 섹션으로 구분하고 있다. 흔히 서점에서 가장 목이 좋은 자리에 놓여 있는 자기개발서와 경제서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무엇보다 시선을 끄는 건 ‘콘텐츠와 연출’의 시너지다. 가령, 면 요리 관련 서적들로 가득한 코너에는 책 옆에 식기와 식재료들이 함께 놓여 있다.

유명 셰프의 비법을 소개한 서적의 경우 바로 옆자리에 책 속의 식기와 소스, 재료들을 비치해 고객들이 직접 ‘눈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꽃꽂이 서적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손으로 만들어 보고 결과물도 확인하는 색다른 경험을 누릴 수 있다.

물론 도서의 종류는 제한돼 있지만 각 카테고리별로 분류된 서적의 다양성과 전문성은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세계 각국의 여행서적 코너에는 책 진열 대 옆에 여행사 부스가 설치돼 즉석에서 여행 상담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프랑스 여행을 꿈꾸는 고객은 가이드 북에서 부터 인상주의 화집 등 프랑스와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를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다.

특히 이곳에선 서점과 커피숍의 경계가 없다. 서가 옆에는 편안한 소파들이 놓여 있어 누구든지 책을 가져와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다. 책을 사지 않고 나와도 눈치 주는 사람이 없다. 게다가 개점시간이 오전 7시부터 새벽 2시이다 보니 퇴근 후 곧바로 서점으로 직행하는 직장인들이 많다. 오전 시간이 노인들의 세상이라면 밤 시간은 학생이나 회사원들의 아지트다.

서점을 나오면 레스토랑, 갤러리, 자전거 전문점, 애견용품점 등이 기다린다. 레스토랑 주변의 산책로는 애완동물을 잠시 묶어둘 수 있는 곳도 있어 고객들은 종종 산책하면서 책을 읽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이같은 독특한 스타일이 알려지면서 츠타야는 관광객들 사이에 꼭 가봐야 할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실제로 서점 오픈 이후 다이칸야마의 유동인구는 3배 이상 늘었다. 또한 방문객들을 겨냥한 상가들이 입점하면서 쇠락하던 주변 상권도 되살아 났다. 수년 전 일본을 방문한 영국 왕세손과 덴마크 국왕 부부가 자유일정에 츠타야 서점을 찾았다고 하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 인지 알 수 있다. 국내 교보문고가 벤치마킹한 모델도 바로 이곳이다.

츠타야가 개점 7년 만에 글로볼 명소로 부상한 비결은 다름 아닌 차별화다. 지난 1983년 오사카 히라카타에서 탄생된 츠타야는 일본 컬처 컨비니언스클럽(CCC)의 내셔널 브랜드로 성장했다. 특히 츠타야 서점만이 아니라 전국 어디에서나 사용이 가능한 신용카드 ‘T카드’와 적립 공용포인트 ‘T포인트’를 기획해 일본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6000만 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오프라인 서점이 문을 닫고 있는 불황 속에서도 츠타야는 일본 전역에 1400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고, 매년 2조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컬처컨비니언스클럽의 최고경영자인 마스다 무네아키는 지난 2015년 펴낸 자신의 저서 ’지적자본론’에서 고정관념을 깬 혁신이야말로 츠타야 서점의 성공 비결이라고 역설했다.

“새로운 매장을 만들 때 마다 고객의 마인드로 현장을 답사했다. 책상에 앉아서 머리로 구상한 기획이 아니라 오랜 경험으로 터득한 전략으로 콘텐츠를 설계했다. 츠타야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파는 것이다.”

/jhpark@kwangju.co.kr



※ 이 시리즈는 삼성언론재단의 기획취재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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