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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과 호남사림
김형주
2017년 01월 10일(화) 00:00
빛고을 호남의 진산 무등산은 예로부터 온 세상을 감싸 안은 넓은 품으로 시인묵객과 풍류가객 등 수많은 사람으로 항상 넘쳐나는 곳이었다. 또한 높은 기상과 올곧은 지조의 우리지역 사림이 은거하며 심신을 수양하는 정갈한 보금자리이기도 하였다.

사림(士林)은 훈구파에 대립하는 조선 중기 정치를 주도한 신진사류를 일컫는데, 고려말 조선 초기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두 차례의 사화를 겪으며 뚜렷한 성색을 지닌 정치세력으로 성장하고 중앙정계에도 진출하였다.

무등산자락 일대를 터전으로 한 호남사림은 혼탁하고 어지러운 당대의 부조리한 현실정치에 초연하여 호연지기를 키웠으며, 강호에 유유자적하며 학문에 심취하여 큰 업적을 이룬 청빈하고 강직한 성품을 가진 일군의 선비들이었다. 무등산 사림의 선구적인 인물은 전신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고려 말기 무신으로 조선이 건국되자 두문동에 들어갔고, 담양 남면에 내려와 독수정(獨守亭)을 짓고 기거하며 절개를 지켰다

무등산 권역의 사림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시기는 조선 중기라 할 수 있다. 무등산 권역 사림의식의 맹아는 담양부사 박상의 주도로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신씨(愼氏)의 복위’를 주장한 순창 삼인대(三印臺)의 상소를 그 시초로 보고 있다. 아울러 이 시기 정암 조광조를 주축으로 하는 신진 사림의 도학정신이 정암의 능주 유배로 인해 호남으로 옮겨오게 되었다. 능주 죽수서원에 배향된 정암과 학포 양팽손, 정암의 제자였던 소쇄처사 양산보와 함께 동복의 최산두의 문하에서 수학한 하서 김인후 등이 도학과 성리학 탐구하고 사림정신의 확립과 실천이라는 큰 업적을 남기었다.

이 지역 사림의 선도자로 호남의 절의정신을 이끌었으며 눌재집 등 방대한 문필작품을 남긴 박상과 그의 제자로 주옥같은 시가를 빚어낸 면앙 송순, 2000여수의 한시를 찬술한 석천 임억령, 소쇄원을 당대 선비들의 사랑방으로 활용하면서 다수의 저술을 한 하서 김인후, 조선시대 기록문학의 백미라 일컬어지는 미암일기를 쓴 유희춘,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대가로 시대를 초월한 걸작을 지어낸 송강 정철 등이 뛰어난 재주로그 이름을 떨치었다.

또한 우리지역에서 국가적인 위난에 충효윤리를 몸소 실천한 사람들로는 임진왜란 당시 선비의 표상이 된 고경명, 고종후·인후 3부자 및 김덕홍·덕령·덕보 3형제가 있었고, 한말 의병으로는 고광순, 김태원, 양진여·양상기 부자 등이 눈부신 활약을 하였다.

몇몇의 사림은 각고면려의 학문정진으로 중앙관직에 나아가 큰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은퇴 후에는 다시 이곳에 내려와 머무르다 생을 마감하였다. 그러나 다수의 사림들은 시끄러운 바깥세상과 절연된 무등산에서 빼어난 산천경개를 완상하며 막힘없는 무애의 삶을 영위하였다. 이렇게 무등산은 호남사림들이 마음껏 깃드는 따뜻하고 포근한 정신적인 둥지였다.

〈광주시립민속박물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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