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운 좋게 살아남았다
2016년 09월 13일(화) 00:00

[문정은 광주청년유니온 위원장]

지난 3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인근 철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박모(29)씨가 교량 보강 공사를 하던 중 하천으로 추락했다. 추락 직후 구조대가 다리 밑을 수색했지만 그는 끝내 숨진 채 발견됐다.

그리고 다음날,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에서 19세 비정규직 청년이 사망한 지 꼭 100일 째가 되었다. 100일이 지났지만, 900일이 다 되어 가도록 아직 우리는 안전하지 못하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운 좋게 살아남았다.

우리는 작은 한숨을 내뱉으며 그 불운이 우연히 나를 피해갔음에 안도할 뿐이다. 사람들은 청년이 미래고 희망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이 사회의 가장 위험하고 불안정한 노동으로 하루를 살며 불투명한 미래 앞에 위험을 감내하고 있는 것은 청년들이다.

필자는 2010년 청년들의 노동권 향상을 위해 자발적으로 만든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에서 활동하고 있다. 청년유니온에 가입한 사람들은 주로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학교에 다니거나 졸업 후 구직활동에 나선 15세에서 39세의 청년들이다. 주로 특정 사업장의 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노동조합’이라는 것을 일터가 변변치도 않은 청년들이 만들었다니 의아해 하는 눈길도 있다.

청년유니온은 5년 전 노동·시민단체들과 함께 피자 업체의 ‘30분 배달제’ 폐지 운동을 통해 청(소)년들이 겪어야 하는 위험한 노동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그 결과 주요 피자 업체들의 ‘시간 내 배달제’를 폐지하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이후에도 카페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적용되지 않던 ‘주휴 수당’ 지급을 이끌어 냈고, 다양한 실태조사를 통해 그동안 노동 밖의 노동으로 취급되어 대변되지 않았던 미용실 스텝, 학원 강사, 산학협력 현장실습생, 대학 시간제 강사 등의 노동을 주목하게 했다.

그간 나름의 의미 있는 활동들에도 불구하고, 다시 5년 만에 ‘30분 배달제’는 ‘20분 배달제’로 부활해 지난 6월 또 다른 청년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갔다. 배달 사업의 확장과 동종 업계와의 치열한 경쟁 속에 ‘20분 배달제’는 부활했고, 이를 위해 배달 노동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7∼8분에 불과했다. 사고 직전 고인이 동료와 나눈 메시지에서는 늘어나는 주문과 쫓기는 시간 사이에 분초를 다투던 그의 고통이 느껴졌다. 그 고통 뒤에는 롯데리아라는 대기업 패스트푸드점이 있었고, ‘더 빨리’를 외치는 우리가 있었다.

실제로 배달 아르바이트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아르바이트생 5명 중 1명이 배달 중 사고를 당하거나 다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촉박한 배달시간과 과도한 배달물량 등에 따른 무리한 운전’ 때문에 사고를 당한 이들이 52.6%나 됐다.

얼마 전 한 청년이 광주 청년유니온의 문을 두드렸다.

매일 새벽 직업소개소를 통해 ‘막노동 일거리’를 얻는 20대 청년은 어쩌다 청년유니온을 알게 되었을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다니던 고등학교에 학비를 낼 수 없었던 그는 ‘돈 없으면 학교 나오지 말라’는 선생의 고함에 그 길로 학교를 나왔다. 그 뒤로 아버지를 따라 하던 막노동은 이제 그의 삶을 유지하는 유일한 노동이 되었고, 늦었지만 이제라도 또래 친구들처럼 대학에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쩌다 한 번 가는 청년유니온 모임에서 만난 또래들도 다들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래도 왠지 자기보다는 나은 것 같다. 그래도 무언가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일터에서 겪은 부당함, 구직의 어려움을 나누다 보니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지금보다는 사는 게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작은 기대가 마음에 싹튼다.

그와 함께, 우리는 더 많은 ‘우리들’을 찾아 나서려 한다. 분초를 다투며 마음을 졸이는 친구들을 찾아 나서려고 한다. 얼마나 위험한지, 얼마나 불편부당한지 알고 있지만, 함께 분노하고 함께 저항할 이들이 곁에 보이지 않아 단념할 수밖에 없던 그들을 만나러 가야겠다. 더 이상 하루하루를 살아남는 것에 안도해야 하는 청년들을 찾아 나설 수 있도록 일하고 꿈꾸고 저항하는 청년들의 노동조합 청년유니온과 함께 해달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변화의 발걸음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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