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트래킹 <하> 루트번트랙] 지구에서 가장 황홀한 길
2016년 01월 25일(월) 00:00
‘오차드’ 텐트 위 별 쏟아지고 하늘 담은 호수·순백의 연봉들

루트번 트레킹은 지리산 종주길처럼 장쾌하면서 시원스러운 길이다. 8㎞의 화강암 산 허리 길 사이사이에 산을 담고 있는 맥킨지 등 호수들도 눈부시다.

아침 10시, 루트번트레킹의 시작점인 더디바이드로 출발했다.

테아나우에서 밀포드사운드 방향으로 50여분 정도 소요된다. 루트번트랙 그리고 ‘Key Summit’라는 안내판이 있었다. 오르막 숲길은 협곡을 걸었던 밀포드와는 달리 마치 우리나라의 큰 산을 오르는 그런 느낌이었다. 너도밤나무 숲길에서 부는 바람이 청량했다. 하늘은 맑고 햇볕도 따스하다. 2.5km 정도, 오르막을 오르니 갈림길이 나왔는데 트레킹코스인 하우덴헛으로 가는 길 그리고 아름다운 주변 경관을 볼 수 있다는 키서밋의 갈림길이다.

배낭을 모아두고 키서밋으로 가는 지그재그 길을 올랐다. 곧이어 만년설을 머리에 인 아름다운 순백의 연봉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키서밋(918m) 바로 아래로는 조그마한 호수가 있고, 길은 산릉으로 계속 이어져 있었다. 오른쪽으로 오늘 걸어야할 산허리길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할리포드계곡과 그 뒤로 이어지는 순백의 연봉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왕복 3km) 다시 제자리로 내려와 배낭을 찾아 10분 정도 걸으니 너른 호수 옆으로 하우덴헛이 자리하고 있다.

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고, 숲길을 3.5km를 더 가니 얼랜드폭포가 나왔다. 루트번트랙을 개척할 때 동행했던 기자의 이름이라고 한다. 폭포는 멀리서보면 산 중턱 바위에서 뿜어 나오는 것 같았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겹쳐진 화강암반 위에서 떨어지는 제법 큰 규모였다. 물을 떠서 마시니 차갑고도 짜릿한 맛이 상쾌했다. 아름다운 연봉을 보면서 걷는 허리 길은 마치 지리산 종주 길처럼 장쾌하면서 시원스럽다.

폭포에서 2.5km정도 가면 조그만 호수가 있고 주변으로 나무들이 숲을 이루는 ‘오차드’라는 곳이 나오는데 야영이 허용된 훌륭한 장소였다. 이런 곳에서 밤하늘의 별을 세면서 하루를 보낸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을 하며 길을 재촉했다. 오차드에서 오늘 우리 숙소인 맥캔지호수산장까지는 2.5km거리다. 그러니까 거대한 화강암 산허리 길을 무려 8km를 걸어야 하니 그 산의 규모가 가히 짐작될 것이다. 산과 산 사이 안부를 넘어 내리막숲길을 내려가니 하늘이 터지면서 작은 분지가 나왔고, 그곳에 맥캔지호수롯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2일째, 롯지에서 300m거리에 있는 맥캔지호수를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왼쪽 산(오션 픽)으로 이어지는 길을 1,200m 높이까지 지그재그로 올라갔다. 어제 잤던 산장과 호수가 점점 작아지면서 에밀리픽의 웅장한 하얀 봉우리가 다가왔다.(3km) 오션픽의 오르막 끝자락을 올라 너른 공터로 나가자 거센 바람이 할퀴듯 달려드는데 눈앞으로는 멋진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바람을 피해 움푹 파인 곳으로 몸을 피하여 간식을 먹으며 그 멋진 풍광을 눈에 담았다.

올라올 때와는 반대로 오션 픽의 산허리를 반대방향으로 4.5km걸어야 점심장소인 해리스새들에 도착할 수 있다. 홀리포드계곡이 내려다보이고 그 뒤로는 하얀 모자를 쓴 연봉들이 길게 도열하고 있는 멋진 경관을 보면서 걸으니 그 긴 구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산허리길이 끝나고 약간 경사진 오르막을 올라 10분쯤 가면 점심장소인 해리스새들이다. 이미 20여 명의 등산객들이 쉬고 있었다. 이곳에서 주변 경관과 마틴베이까지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코니컬 힐(1,515m)에 오를 수 있는데, 아직은 눈이 많아 길이 폐쇄되어 아쉬웠다.

점심을 먹고 약간의 오름길을 오르니 왼쪽 아래로 해리스호수가 하늘을 품고 잔잔하게 펼쳐지면서 와카티푸호수까지의 경관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여기서부터 숙소인 루트번폭포산장까지는 내리막으로 3.5km의 거리다. 시간은 여유롭고 하늘은 맑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 내가 있으니 부러울 게 없다. 내리막을 내려서면서 길에서 벗어나 해리스호수로 갔다. 정말 깨끗하고 맑은 호수다. 해리스호수 위로는 윌슨호수가 있어 만년설에서 녹은 물을 공급해주고 있으며, 해리스호수 역시 아래 루트번폭포를 거쳐 와카티푸호수로 받은 물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호주에서 온 여의사가 그 차가운 물에 뛰어들어 유유히 수영을 즐기는 모습을 보노라니 부럽기도 하고 춥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길로 되돌아와 내리막길을 한 시간 가까이 내려가니 루트번폭포가 두세 갈래로 물을 토해내고 있다. 오른쪽으로는 숙소인 루트번폴스롯지가 있고 아래로는 자유트레커들의 숙소가 있다. 자정쯤 화장실에 다녀오다 하늘을 보니 밤하늘이 온통 별들로 가득하여 손에 잡힐 듯하다. 한참을 넋을 놓고 구경했던 그 멋진 기억이 아직도 오롯하다.

마지막 날이다. 대략 10km 정도만 걸으면 되니 부담이 없다. 산장을 출발하여 2.5km가면 루트번플레이트라는 오두막이 나오는데, 이곳은 두 개의 계곡이 만나는 아주 넓은 곳이다. 엄청나게 넓은 이곳이 1994년엔가 범람하여 오두막이 잠기고 심지어는 퀸즈타운 시내까지 피해를 입혔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곳에서 숲길을 2.5km 더내려가 왼쪽으로 들어갔는데 우리나라 계곡의 풍광 뛰어난 담처럼 푸르디푸른 담과 계곡의 풍치가 아름답고 정겹다. 계곡 가에서 준비해간 점심을 먹고 숲길 4km를 더 걸어 루트번트레킹을 마무리했다. 사실 루트번트랙은 지리산 당일종주처럼 하루에도 완주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아름다움 풍광을 그렇게 보는 것은 아쉽지 않을까!

루트번트레킹을 마치고 중간 조그만 마을 카페에서 완주증명서를 전달받았다. 밀포드트레킹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관심은 밀포드와 루트번 중 어느 트랙이 더 좋았는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밀포드와 루트번은 트레킹의 성격이 다르다. 밀포드는 원시적인 자연 속에서 협곡을 걷는 길이고, 루트번은 산허리를 걷는 길이다. 비교 자체가 무리인 것이다. 일주일 간 100여km를 걷는 고단한 일정이지만 새로운 힘이 솟아나는 힐링의 길이었다고 자부한다.

*최희동

전남대총동창회 상임부회장·산악회장을 맡고 있다. 전남대 7대륙 최고봉 원정대 에베레스트·엘브루즈 부단장과 코지어스코 단장을 지냈으며 올해 말 남극 빈슨 매시프 원정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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