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의 땅 남극, 무엇보다 사랑했다”
엄마 임경림씨 ‘베토벤’서 전시회 열어 딸 응원
우주인 꿈꿨던 남편, 세 살짜리 아들 육아 맡아
2014년 12월 25일(목) 00:00

임경림씨가 딸 안나를 위해 그린 ‘위풍당당.’

옛 전남도청 앞 클래식 음악감상실 ‘베토벤’에서는 소박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임경림씨의 문인화전이다. 대나무 등 정통적인 문인화 소재와는 다른, 한 작품이 눈에 띄었다. ‘위풍당당’이라는 글귀가 적힌 ‘펭귄’이다.

이 작품은 임씨가 남극에 가는 딸 안나(29)씨에게 힘을 주고 싶어 그린 그림이다. 안 씨는 제28차 남극세종과학기지 월동 대원으로 선발돼 2016년까지 세종기지에 머물며 생물학을 연구한다. 전시 안내 팸플릿에는 안나씨가 엄마의 첫 개인전을 응원하며 쓴 글이 실려 있었다.

전시회 개막식에서 만난 안씨는 “그 어떤 대안도 생각한 적 없을 만큼 남극을 사랑했다”고 했다.

시작은 중학교 때였다. 엄마가 보던 ‘내셔널지오그래픽’은 그녀에게 신세계였다. 잡지에 언급된 수많은 극한지와 오지 사진은 그녀를 매혹시켰고 그 중에서도 ‘남극’에 푹 빠졌다. 15년의 세월이 흘러 세살바기 아들을 둔 ‘엄마’ 안나는 진짜 남극에 가게됐다.

안씨의 학창 시절은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달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학원에 다니지 않았다. 전대사대부고를 지원한 이유도 야간자율 학습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지구과학 등을 좋아했던 안씨는 이화여대 생물과학과를 졸업했다. 부전공은 철학이었다. 대학원은 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 지능형융합시스템학과를 선택했다. 순간 순간 마음이 끌리는 분야에 몰입했고, 열정과 성의를 다해 공부했다.

이화여대 지도교수였던 최재천 교수는 남극행을 전한 안씨에게 “학술적으로 의미있는 연구도 좋지만 일상과 다른 환경에서 사람이 어떻게 변화하는 지 ‘인간’의 모습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고 오라”는 덕담을 건넸다.

2013년 당연히 합격할 것이라 생각했던 첫 도전에 실패했다. 꼭 실연당한 것같은 기분에 힘들었지만 또 다시 시작했다. 서류면접을 통과하고 체육대 입시학원에서 과외도 받았다. 합격한 후에는 GPS 사용법, 무선통신, 응급 처치, 조난대처법에 대한 교육 등 생존에 필요한 이론과 실습훈련을 마쳤다.

남극을 향한 그녀의 준비는 오랫동안 계속됐다. 일본에 학회 차 갈 때는 일행들과 헤어져 홀로 홋카이도까지 달려가 유빙을 보고 왔다. 소아과 의사 고경남씨가 쓴 ‘남극산책’을 감명깊게 읽은 후에는 편지를 쓰고 직접 병원으로 찾아갔다. 남극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고 씨는 “내 책을 보고 남극에 가는 꿈을 꾼다는 사람은 많이 만났지만 직접 그 꿈을 이룬 이는 안나씨가 유일하다”며 격려했다.

석사 학위 논문 ‘행복한 남극 월동 디자인’은 남극에 다녀온 이들과 관련 학자들을 인터뷰했다. 국내는 물론이고 일본, 뉴질랜드, 독일 등 해외까지 찾아가 사람들을 만났다.

“남극에 직접 다녀온 분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남극에 대한 꿈이 더 커졌죠. 처음에는 설레지만 해도 잘 안뜨는 환경이 계속되다보면 기분들이 쳐진다고 해요. 장보고 기지에 비하며 세종기지는 리조트라고들 부르지만 팍팍하기는 마찬가지죠. 1년 가까이 그런 생활을 하다보면 팀웍이 중요하죠. 한 외국인 대원은 어떤 사람이 젓가락질 하는 모습만 봐도 너무 싫었다고 이야기하더군요. ”

서울대 박사 과정 중 만난 남편 이민구(32)씨는 대한민국 우주인 선발대회에도 참여한, 우주를 꿈꾸는 이였다. 안씨의 남극행을 두고 시댁 어른들은 말했다.“남극은 우주보다 가깝네.” 월동대원 면접에서도 가장 큰 핸티캡이었던 육아는 친정 부모와 남편의 몫이 됐다.

안씨는 낯선 것에 대한 도전과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동생 이름은 5살 때 그녀가 지었다. 조선대 조교로 일하고 있는 동생은 안비(24)씨. 자기 이름과 합치면 ‘나비’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 쓰는 것도 좋아한다. 서울대 홍보팀이 만드는 계간지 ‘서울대 사람들’의 편집장이며 서울대 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이기도 하다. 남극을 소재로 한 동화 ‘겨울의 김수박’을 쓰기도 했고 올해 신춘문예에도 도전했다.

안씨는 친구들이 학원에서 공부하는 시간에 ‘베토벤’에서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 광주에 인연이 없던 엄마가 늘상 베토벤에 데리고 다녀서다. 부르크너의 음악을 좋아하는 그녀는 베토벤에서의 시간이 지금의 자신을 만든 큰 요인 중 하나라고 했다. 남극행을 앞두고 처음 찍는 가족 사진도 스튜디오에서 찍는 대신 수많은 추억이 담긴 베토벤에서 ‘꼭’ 찍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안나가 꿈을 꾸고 그걸 이루어 가는 과정을 모두 지켜본 엄마 입장에서는 참 대견하죠. 제가 그림 공부를 시작한 게 어쩌면 안나 덕입니다. 안나가 중학교 1학년 때 방과 후 학부모 교실에서 처음 그림을 접했거든요. 남극으로 떠나는 안나에게 힘을 싣고 싶었어요. 건강하게 잘 다녀오라는 마음도 함께 담아 전시회를 열게 됐습니다.”

엄마는 곡성 전남 곳곳을 돌며 솜을 구입해 안나씨가 세종 기지에서 쓸 따뜻한 목화 솜이불을 지었다.

남극으로 떠나며 안씨는 9분 50초 분량의 대학원 논문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기자에게 보냈다. 남극에서 하고 싶은 일이 담겨 있다고 했다. 영상 속에서 만나는 ‘안나의 꿈’은 다른 이들의 가슴도 뛰게 했다.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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