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다 던지지 못하면 얻을 수 없는 것들이 사랑이고 문학이죠”
2025년 08월 17일(일) 17:25
광주 출신 김병호 시인 최근 시집 ‘슈게이징’, 평론집 ‘풍경의 뉘앙스’ 펴내
“자기 만족 우선하는 개성적 작품들 많이 창작돼…시의 르네상스 시대 예감”

김병호 시인(협성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김병호(54)는 문학의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문학인이다. 그의 이름 뒤에는 시인, 평론가, 문예지 주간, 대학교수라는 직함이 따라붙는다.

하나도 제대로 하기 힘든 세상에서 그는 4개의 전문 영역에서 성실하게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물론 아버지, 남편이라는 역할까지 포함하면 그의 하루는 눈코 틀 새 없을 만큼 바쁠 것으로 짐작된다.

광주 출신 김병호 시인이 최근 평론집과 시집을 펴냈다. ‘풍경의 뉘앙스’(문학수첩)와 ‘슈게이징’(시인의 일요일)은 그의 문학적 감수성과 미학을 보여주는 저작물이다.

“헤아려보니 시집은 ‘백핸드 발리’ 이후 7년 만입니다. 시 한 편을 쓰고 나면 한 열흘은 꼼짝 못하는 체질이죠. 진이 빠진다고 할까요. 그래서 시집 한 권의 분량을 모으는 데 시간이 오래 필요했고, 그렇게 모은 시도 다시 걸러내다 보니 시간이 더 더디게 되었어요. 그리고 본격적 평론집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전에 학위논문을 일반 문학교양서로 다듬어 출간한 적이 있었지만, 시집 해설이나 서평, 시평, 시인론 등을 묶은 문학평론집은 처음이에요.”

두 권의 책을 발간하게 된 데 대해 묻자 돌아온 답이었다. “특정한 주제를 기획하거나 전체적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지는 않았지만 다만 시를 모아보니 어떤 큰 맥락이나 마음의 결이 한데 모아진 것을 느꼈다”며 “삶을 살아가는 어느 구간에 잠시 머물며 소용돌이쳤던 정서와 감각들이니 아무래도 뭔가 엇비슷한 결이 있지 않을까 짐작은 한다”고 그는 말했다.

김 시인은 성실하고 사람 좋은 문인으로 평이 나 있다. 중앙이나 지역의 문학행사장에서 가끔 마주질 때면 그는 늘 겸손하며 진중한 모습이었다.

송원고를 거쳐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월간문학’ 신인상,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현재 반연간 ‘문학수첩’과 계간 ‘시로여는 세상’의 편집위원과 주간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협성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연이어 시집과 평론집을 발간하게 된데 대해 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선생님께서 ‘시인이 시집만 내면 됐지, 다른 글은 모두 잡문이니 괜한 욕심 내지 말고 시만 열심히 쓰라’고 한 적이 있다”며 “그럼에도 말씀을 어기고 평론집까지 내게 된 것은 20년이 넘었으니 평론집 한 권 정도는 있어도 되겠다 싶었다”고 했다.

시집 ‘슈게이징’은 의미가 깊은 ‘시어’다. 신발(shoe)+뚫어지게 보다(gaze)가 결합된 말로 ‘소통의 의지 없이 자신의 발만 내려다보며 연주하는 것 때문에 붙여진 인디 록의 장르’라고 한다.

“다소 부끄럽지만 시집 ‘슈게이징’은 연애시로 읽어도 무방할 것 같다”는 말에서 시집의 지향점 내지는 경향성을 짐작하게 한다. “구체적 인물이나 특정한 사건을 근거로 하고 있지는 않지만, 삶의 어느 갈피에서 감출 수 없이 툭 튀어나오는, 그리움이나 사랑 같은 근원적인 감정을 이미지와 이야기로 펼친 것들이 많다”며 “어떤 분은 제 시집을 읽고 “아팠다”고 하시던데, 저도 쓰면서 아파했던 시들이었다”고 그는 전했다.

평론집은 20여 년 넘게 썼던 글들 중에서 추린 것이라 하나의 주제로 압축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을 것 같다. 다만 주제나 대상이 현재에도 유효한 것들을 모아보려 했다는 말에서 고심의 단면이 읽힌다.

“우리 시가 지나고 있는 자리의 이정표도 보이는 것 같고, 많은 평론가와 독자들이 주목하는 시인과 시보다는 묵묵하게 자기 자리에서 시와 시의 자리를 지키려는 시인들에게 더 오래 눈길이 갔던 것도 사실입니다.”

시의 언어와 평론의 언어는 다소 다를 텐데 어떻게 창작을 하고 비평을 하는지 궁금했다. 대체로 한 분야만을 하기에도 벅찬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는 “시를 쓸 때에는 어렵고 힘든 마음과 나름의 즐거움이 반반이어서 이겨볼 만하다”면서도 “평론은 대부분 주문 생산의 경우가 많아서 시에 비해 손끝이 더 무겁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시는 쓰는 게 하나의 답이 되는데, 평론은 수많은 답 중에서 유력한 하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 이런 마음이 큰 지도 모르겠다”고 부연했다.

“글의 시작만 두고 보면, 평론보다 시가 훨씬 어렵습니다. 평론은 대상 텍스트가 있지만 시는 매번 백지에서 시작을 해야 하지요. 시를 쓸 수 있는 발화점의 감정과 사유가 차오르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힘겹죠. 발화점까지 온 마음을 끌어올리는 게 지옥과 같은 고통이기도 한데, 막상 한 편의 시를 완성하고 보면 그보다 더 큰 희열이 있긴 합니다.”

이에 반해 평론은 분석과 해석보다는 시를 쓰는 동지적 마음으로 시를 헤아리려 한다고 했다.

문창과 교수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도 벅찰 텐데도 그는 “학생들과 시를 함께 읽고 같이 이야기하는 게 참 좋다”고 한다. “시를 전공하겠다는 학생의 수는 줄어들지만 시에 대한 열정과 욕심을 가진 학생들은 꾸준히 있어서” 가급적 선생의 관점보다는 그 길을 먼저 걸어온 선배로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계간지 일도 나름 재미가 크다고 얘기했다. “계간지 일을 핑계로 시인을 만나면 시의 행간에서 읽지 못한 시인의 속내도 알게 된다”며 “좋아하는 시인의 작품을 청탁해 먼저 읽은 기쁨도 얻고, 마음의 응원도 보낼 수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단의 흐름을 감지하고 이를 학생들에게 알려주기도 용이한데다, 시의 올바른 흐름을 만들고 지킬 수 있다는 작은 사명감도 가지고 있을 법했다.

그가 ‘문학수첩’과 인연을 맺은 것은 ‘해리포터 시리즈’의 한국어판을 가지고 있던 당시 김종철 대표의 배려 때문이었다. 문예지 ‘문학수첩’ 일을 맡아 하며 시인과 소설가, 평론가들과 인연을 맺으며기획과 편집의 김을 익힐 수 있었다.

김 교수는 고향인 광주에 대해 묻자 “광주 사람이라는 말에 제 삶의 가치와 무게를 얹고 살아가려는 사람 중 하나”라며 “부모님이 계시고 동생이 살고, 애정하는 몇몇 선후배 시인들도 계셔서 자주 다녀가는 편”이라는 말로 광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특히 “충장로 우체국 앞에 있었던 나라서적은 청춘의 심장과 같은 곳이었다”며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고, 그곳에서 김남주와 박노해, 한수산과 신경숙을 읽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오늘날은 ‘시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해도 될 만큼 많은 이들이 시를 읽고 시를 쓰고 있다고 진단했다. 비평가와 시장의 검열 시선에서 벗어나 자기만족을 우선시 하는 개성이 충만한 작품들이 많아졌다는 분석이다.

“예전에 비해 시인으로 등단할 수 있는 매체도 늘었고 상대적으로 수월하기도 하고, 시집 내는 일도 생각만큼 어렵지는 않습니다. 이를 두고 ‘하향평균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시의 출판시장은 자립경제에 가까워 쓰는 사람이 결국 사서 읽는 사람이 되죠. 그래서 이런 분위기가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어요.”

마지막으로 문학을 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더니 “스스로를 벼랑끝까지 몰아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는 다소 무거운 말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요즘은 자기 자신을 아끼는 마음이 커서인지, 계산을 먼저 하게 된다”며 “연애를 할 때에도 나중에 헤어지면 상처를 받을까 두려워 좋아하는 마음을 아끼고, 그 마음을 20-30%씩 남겨두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을 다 던지지 못하면 절대 얻을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그게 사랑이고 그게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100을 다 주고도 더 주지 못한 안타까움과 후회가 결국 사랑이 되고 문학이 되는 게 아니냐고, 저는 강의실에서 되묻곤 한답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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