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한, 우리 문화 뿌리 이해하는 단초...K-한류의 ‘마스터키’ 입니다”
2025년 08월 10일(일) 18:55 가가
정은영 ACC 기획운영과장 ‘잊혀진 나라 마한 여행기’ 펴내
“옹관에서 충격·거룩함 느껴…고대 문화 예술성 찾는 여정”
“옹관에서 충격·거룩함 느껴…고대 문화 예술성 찾는 여정”
“몇 년 전 국립나주박물관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 전시실 한가운데 조명을 받으며 나란히 누워 있는 옹관들의 모습이 인상 깊게 다가왔어요. 시각적인 충격과 거룩함을 동시에 느꼈다고나 할까요, 고요했지만 강렬했습니다.”
정은영 역사 기행 에세이스트는 평소 여행을 좋아한다. 오래된 것, 잊혀진 것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마한에 관심을 갖게 했다.
최근 그가 마한을 모티브로 한 ‘잊혀진 나라 마한 여행기’(율리시즈)를 펴냈다.
기자는 저자를 평소 국립 문화기관에서 주어진 업무를 차분하면서도 야무지게 처리하는 공무원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간혹 문화예술에 대한 생각이나 단상 등을 이야기할 때면 얼핏 내공이 느껴지곤 했다. 현재 그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기획운영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최근 정 과장으로부터 이번 책을 발간하게 된 계기, 마한에 대한 단상, 답사를 하며 느낀 점 등을 들을 수 있었다.
그에 따르면 마한은 기원전 3세기부터 800년 동안 한반도 중서부 지역에 존재했던 작은 나라들의 연맹체다. “남도의 경우 약 800년간 마한으로 존재했고, 백제로 존재한 시간은 100여 년에 불과하다”며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 문화 중 일부는 혹시 마한일 수도 있다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정 작가는 말했다.
마한을 주제로 한 역사 기행서를 쓴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우선 자료도 충분치 않고 고대 국가인데다 삼국의 역사에 가려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더욱이 (선입관일 수도 있지만) 여성이 고대 정치 연맹체, 옹관이나 고분으로 대표되는 마한에 남다른 호기심을 갖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정 작가의 마한에 대한 ‘집착’ 또는 ‘호기심’은 생득적이었다. “마한이 있었던 이 땅은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는 말에서 대략 짐작이 갔다.
“함평에서 태어나 신안에서 자랐고, 광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서울에서 오래 살았지만, 제 정서의 8할은 이곳에서 형성되었죠. 마한의 땅을 걷고, 기록하고, 해석하는 것은 제 정체성을 찾고 잊어버린 근원을 만나는 여정이었어요.”
정 과장은 마한에 대해 “고대국가로 발전하지 못한 채 백제에 복속됐고, 삼국 시대 중심의 역사 기술로 인해 기록이 거의 남지 않은 ‘잊힌 나라’, ‘잊힌 역사’”라고 했다. 다만 영산강 유역의 옹관 등 물질적인 흔적은 남아 있기에, 기록이 없다고 해서 기억까지 없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한민족’ 등에서 사용하는 ‘한’이라는 글자가 역사상 처음 등장한 나라가 마한이다. 우리의 고대 문화는 삼국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지만, 고대 문화의 원형은 삼국 시대가 아니라 삼한 시대에 있다”며 “‘한’이라는 문화적 원형을 떠나서는 우리 민족의 모습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마한의 역사적 의의를 얘기했다.
그러면서 “K-한류를 지속적으로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문화의 원형과 뿌리를 알아야 하고, 그 마스터키는 마한으로 나아가는 길에 있다”고 정 작가는 말했다.
이번 답사는 남도의 아름다움과 정의로움 그리고 예술성의 시작이 마한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그 흔적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걷고, 기록하고, 해석했다.
어떤 점을 주목해서 답사를 했는냐는 물음에 “광주의 신창동 유적지에서는 나무로 만든 현악기, 가죽신을 예쁘게 만들기 위해 사용한 나무 신발골, 옻칠한 사각 칸막이 접시 등을 유심히 들여다봤다”며 “이곳이 음악과 흥이 넘치고, 멋이 흐르며, 맛이 남다른 데는 역사적 연원이 있다고 생각됐다”고 정 작가는 언급했다.
더불어 ‘삼국지’의 ‘위서 동이전’에 기록된 “마한 사람들의 성격이 사납고 용맹스럽다”는 대목을 상상하며, 고경명과 김덕령 장군을 위시한 남도의 의병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 현대사의 5·18민주화운동까지 정의를 향한 정신의 뿌리를 확인하는 데도 초점을 맞췄다.
그렇다고 학술, 학문적 시각으로만 접근하지 않았다. 답사에 식도락의 즐거움이 빠질 수는 없는 법. 구서구석 맛집도 찾아다녔고, 그곳의 이야기를 유적과 연결시키기도 했다.
“광주의 마한지와 명화식육식당, 나주의 홍어1번지와 하얀집, 해남의 은혜식당, 무안의 두엄식당 등이 그 예입니다. 추천사를 써준 최유안 소설가도 “음식에 진심인 애호가가 안내하는 미식 여행기”라고 언급해 주셨죠. 맛집 이야기를 특히 담고자 했던 이유는 책을 읽는 독자의 취향을 고려한 것도 있지만, 미향이라는 지역 특성을 역사 여행 속에 포섭해 담아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답사를 하고 책을 쓰면서 좋은 자료와 책들을 접했다. 전라남도와 전남문화재연구소에서 발간한 ‘전남의 마한유적’, 최완규 교수의 ‘최완규의 마한 이야기’, 임영진 교수의 ‘우리가 몰랐던 마한-고고학자가 들려주는 마한 이야기’ 등은 많은 도움이 됐다. 지난 2000년 광주MBC에서 제작한 마한 5부작 다큐멘터리, 이후 2023년 ‘세계 속의 마한’까지 14편의 다큐멘터리도 중요 자료다.
서울대에서 고고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정 작가는 김영사에서 4년간 편집자로 일했다. 이후 행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 후 문체부에서만 20여 년간 근무해오고 있다.
‘ACC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문화와 지역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을 것 같다’는 말에 “다양한 시간의 층위와 다양한 이야기가 공존하는 곳에 사는 것이 참 좋다”며 “ACC는 5·18민주화운동의 흔적인 옛 전남도청과 상무관, 광주 읍성의 흔적, 고려시대 대황사의 석등 등 여러 시대의 기억이 어우러지는 장소라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정 과장은 덧붙였다.
한편 국무총리비서실, 대통령비서실에서도 근무했던 정 과장은 ‘봄날은 간다-정용대 기억의 책’, ‘잊혀진 나라 가야 여행기’를 펴냈다. 향후에도 ‘우리 헤리티지에 대한 사회적 소명을 실천하는 사람’을 모토로 우리 문화유산과 그 현재적 의미를 사회와 소통하는 일에 한 걸음씩 나아갈 계획이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정은영 역사 기행 에세이스트는 평소 여행을 좋아한다. 오래된 것, 잊혀진 것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마한에 관심을 갖게 했다.
기자는 저자를 평소 국립 문화기관에서 주어진 업무를 차분하면서도 야무지게 처리하는 공무원으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간혹 문화예술에 대한 생각이나 단상 등을 이야기할 때면 얼핏 내공이 느껴지곤 했다. 현재 그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기획운영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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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광산구 월계동에 자리한 장고분은 우리 전통악기 장고를 닮았다 해서 그 같은 명칭이 붙었다. |
그에 따르면 마한은 기원전 3세기부터 800년 동안 한반도 중서부 지역에 존재했던 작은 나라들의 연맹체다. “남도의 경우 약 800년간 마한으로 존재했고, 백제로 존재한 시간은 100여 년에 불과하다”며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 문화 중 일부는 혹시 마한일 수도 있다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정 작가는 말했다.
그러나 정 작가의 마한에 대한 ‘집착’ 또는 ‘호기심’은 생득적이었다. “마한이 있었던 이 땅은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는 말에서 대략 짐작이 갔다.
“함평에서 태어나 신안에서 자랐고, 광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서울에서 오래 살았지만, 제 정서의 8할은 이곳에서 형성되었죠. 마한의 땅을 걷고, 기록하고, 해석하는 것은 제 정체성을 찾고 잊어버린 근원을 만나는 여정이었어요.”
정 과장은 마한에 대해 “고대국가로 발전하지 못한 채 백제에 복속됐고, 삼국 시대 중심의 역사 기술로 인해 기록이 거의 남지 않은 ‘잊힌 나라’, ‘잊힌 역사’”라고 했다. 다만 영산강 유역의 옹관 등 물질적인 흔적은 남아 있기에, 기록이 없다고 해서 기억까지 없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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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K-한류를 지속적으로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문화의 원형과 뿌리를 알아야 하고, 그 마스터키는 마한으로 나아가는 길에 있다”고 정 작가는 말했다.
이번 답사는 남도의 아름다움과 정의로움 그리고 예술성의 시작이 마한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그 흔적을 찾기 위한 여정이었다. 걷고, 기록하고, 해석했다.
어떤 점을 주목해서 답사를 했는냐는 물음에 “광주의 신창동 유적지에서는 나무로 만든 현악기, 가죽신을 예쁘게 만들기 위해 사용한 나무 신발골, 옻칠한 사각 칸막이 접시 등을 유심히 들여다봤다”며 “이곳이 음악과 흥이 넘치고, 멋이 흐르며, 맛이 남다른 데는 역사적 연원이 있다고 생각됐다”고 정 작가는 언급했다.
더불어 ‘삼국지’의 ‘위서 동이전’에 기록된 “마한 사람들의 성격이 사납고 용맹스럽다”는 대목을 상상하며, 고경명과 김덕령 장군을 위시한 남도의 의병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 현대사의 5·18민주화운동까지 정의를 향한 정신의 뿌리를 확인하는 데도 초점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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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나주박물관 전시실에 있는 옹관들. |
“광주의 마한지와 명화식육식당, 나주의 홍어1번지와 하얀집, 해남의 은혜식당, 무안의 두엄식당 등이 그 예입니다. 추천사를 써준 최유안 소설가도 “음식에 진심인 애호가가 안내하는 미식 여행기”라고 언급해 주셨죠. 맛집 이야기를 특히 담고자 했던 이유는 책을 읽는 독자의 취향을 고려한 것도 있지만, 미향이라는 지역 특성을 역사 여행 속에 포섭해 담아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답사를 하고 책을 쓰면서 좋은 자료와 책들을 접했다. 전라남도와 전남문화재연구소에서 발간한 ‘전남의 마한유적’, 최완규 교수의 ‘최완규의 마한 이야기’, 임영진 교수의 ‘우리가 몰랐던 마한-고고학자가 들려주는 마한 이야기’ 등은 많은 도움이 됐다. 지난 2000년 광주MBC에서 제작한 마한 5부작 다큐멘터리, 이후 2023년 ‘세계 속의 마한’까지 14편의 다큐멘터리도 중요 자료다.
서울대에서 고고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정 작가는 김영사에서 4년간 편집자로 일했다. 이후 행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 후 문체부에서만 20여 년간 근무해오고 있다.
‘ACC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문화와 지역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을 것 같다’는 말에 “다양한 시간의 층위와 다양한 이야기가 공존하는 곳에 사는 것이 참 좋다”며 “ACC는 5·18민주화운동의 흔적인 옛 전남도청과 상무관, 광주 읍성의 흔적, 고려시대 대황사의 석등 등 여러 시대의 기억이 어우러지는 장소라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정 과장은 덧붙였다.
한편 국무총리비서실, 대통령비서실에서도 근무했던 정 과장은 ‘봄날은 간다-정용대 기억의 책’, ‘잊혀진 나라 가야 여행기’를 펴냈다. 향후에도 ‘우리 헤리티지에 대한 사회적 소명을 실천하는 사람’을 모토로 우리 문화유산과 그 현재적 의미를 사회와 소통하는 일에 한 걸음씩 나아갈 계획이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