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느린 재난”…‘재난에 맞서는 과학’ 북콘서트
2024년 12월 14일(토) 13:00
가습기 살균제 참사 다룬 ‘재난에 맞서는 과학’ 북콘서트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느린 사회적 재난
재난에 맞서는 과학은 불확실한 편…비전문가들의 발언도 중요해

광주시 동구 친환경자원순환센터에서 책 <재난에 맞서는 과학> 저자 박진영 씨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관해 발언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느린 재난입니다. 재난은 순식간에 발생하는 이미지지만, 이 참사는 과거부터 먼 미래까지의 장기적인 과정을 거쳐 서서히 진행되는 사회적 재난의 일종입니다.”

지난 가을 광주시 동구 친환경자원순환센터에서 열린 ‘재난에 맞서는 과학’ 북콘서트에서 저자 박진영 씨가 한 말이다. 박진영 씨는 비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에 연구원으로 참여한 계기로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오랜 기간 연구했다. 그는 참사에 관해 많은 사람의 논의가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출판했다.

박 씨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피해 조사와 보상이 지금까지도 원활히 진행되고 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아무도 이 피해의 원인을 몰랐다. 연구가 적었던 이유도 그렇고, 피해자, 전문가들 모두 화학물질로 인한 피해는 생소하다고 말했다. 다수는 자신이 피해자인지도 인지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학적 지식’의 부족함이 큰 여파를 만들었다고도 지적했다.

“과학적 지식이 부족했기에 재판과정에서 기업들의 처벌이 늦어졌습니다. 2016년 재판에서 가해기업 옥시가 무죄판결을 받았던 이유도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되었던 대표적인 화학물질 중 클로로메틸아소티아졸리논(CMIT)와 메틸아소티아졸리논(MIT)의 독성이 미화되었기 때문이죠.”

박 씨는 ‘재난에 맞서는 과학’에서 ‘골든타임’에 관해서 언급했다. 정부의 독성물질과 피해 정도에 관한 확실한 인과관계를 찾는다는 핑계로 인해 골든타임을 놓쳐 피해자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재난에 맞서는 과학은 불확실하다’고 덧붙였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 핵발전소 근처 암 환자 증가’와 같은 사회적 재난은 원인(화학물질 등)과 피해(질환 등)의 과학적 인과관계가 확실하지 않아 전문가들도 애매한 해결책을 내놓는다는 이야기다.

그는 이러한 책 내용에 관해 “잘못된 과학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전문가들도 틀릴 수 있기에, 비전문가들의 발언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북콘서트에서 독자들이 박진영 저자의 말에 경청하고 있다. 북콘서트에는 피해자 추준영 씨(왼쪽에서 두 번째), 참여연대 선임간사 장동엽 씨(오른쪽에서 첫 번째)가 게스트로 초청됐다.
한편, 책에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피해자가 진짜 피해자와 가짜 피해자로 나뉘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북콘서트에 게스트로 참여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박준석 군의 어머니 추준영 씨는 이에 대해 의견을 내놓았다.

추 씨는 “환경부는 피해자를 4단계로 분류했는데, 이중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폐질환 가능성 거의 없음’의 3·4단계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었다”며 “이들은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음에도 가짜 피해자라고 불리며 질타를 당했다”고 말했다.

저자 박진영 씨는 피해자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가습기 살균제가 학부모들 사이에서 인기 상품이었고, 마트에서도 ‘건강에 좋은 제품’으로 홍보했다”며 피해자가 다양한 이유에 대해서 밝혔다. 그리고 “피해자들이 트라우마를 겪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손으로 가족을 해쳤다는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1994년부터 17년간 판매돼 온 가습기 살균제는 지난 2011년부터 독성 조사가 시작됐다. 가장 피해자 수가 많았던 옥시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은 2000년 출시 이후 11년간 약 415만 개가 팔렸다.

광주·전남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광주·전남 피해 신청자는 364명으로, 이 중 101명이 숨져 사망률이 28%에 달했다. 그러나 이중 정부에서 구제대상으로 인정받은 피해자는 전체 신고자의 61%(221명)로, 시간이 지날수록 3·4단계로 추락한 피해자들이 늘어나 배상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질 우려가 있다.

/글·사진=남진희 대학생 기자

/정리=서민경 기자 mink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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