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 내몰린 발달장애인 가족 - 최인관 광주장애인부모연대 사무처장
2024년 06월 10일(월) 22:00
5월 3일 대구지방법원에서는 63세 남성의 살인죄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이 남성은 지난해 10월 대구의 자택에서 39살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아들을 살해한 아버지의 최후 진술은 다음과 같았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반성하고 참회합니다. 반성하고 참회합니다. 반성하고 참회합니다. 반성하고 참회합니다. 반성하고 참회합니다.”

사건 현장에는 아들의 시신과 함께 아버지의 유서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유서에는 아들이 다니던 복지관에 재산 일부를 기부해달라는 등의 신변을 정리하는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하늘나라로 가려던 계획과 달리 그날 죽지 못하고 손목에 아로새겨진 칼자국과 함께 아들을 살해한 죄로 재판정에 서게 되었다.

아버지는 왜 이런 선택을 하였을까? 아들은 지적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발달장애인이었다. 육체적으로 약해서 자주 간질과 저혈압으로 쓰러졌으며 이러한 이유로 한시도 아들을 혼자 둘 수 없었다. 아이의 몸이 커지고 힘이 강해질수록 아비의 몸은 왜소해지고 힘은 약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들이 서른 살이 될 즈음에 뇌출혈로 쓰러져 뇌병변 1급 진단까지 받게 되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아들을 간병한지 9년이 되는 해에 아버지는 발가락이 절단되고 근육 신경이 손상되는 교통사고를 당해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이라는 희소병까지 얻게 되었다. 아들에 이어 아버지마저 진통제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결국 본인의 몸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상황에 이르러 아버지는 해서는 안 될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기게 된 것이다.

전국적으로 발달장애인 가정의 사회적 참사가 반복되고 있다. 3년의 기록을 살펴보면 2022년 10건, 2023년 11건, 2024년 상반기에만 3건이 발생하였다. 발달장애인 가족 내에서 자녀를 살해하고 본인도 자살하는 사회적 참사를 우리는 언제까지 지켜봐야만 하는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사회적 지원이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그 목소리는 그들을 구원하는 제도와 정책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그들 가정내의 문제로 치부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에 따르면 전체 발달장애인 중 41.2%는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대부분의 활동에 지원이 필요하며 주지원자는 88.3%가 부모라고 한다. 즉 발달장애인의 대다수가 지역사회에서 자립하지 못하고 부모나 가족과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서비스로는 활동지원서비스가 유일하지만 이마저도 월평균 120시간 수준에 머물고 있어 실제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 또한 이들을 지원하는 정책은 정보 접근성이 낮은 발달장애인 가정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많으며 정보를 안다고 하더라도 적절한 지원자를 구하지 못해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위의 사례에 언급한 발달장애인 당사자도 지적장애와 뇌병변장애를 중복으로 가진 최중증 발달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30세의 늦은 나이에 월 90시간만 지원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발달장애인의 돌봄은 정책적으로 정부가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닌 발달장애인 가족 구성원에게 그 돌봄과 지원이 강제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돌봄과 지원의 절벽에 내몰린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본인의 한계까지 돌봄과 지원을 이어가다 결국 참담한 선택으로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발달장애인 가족의 참사를 사회적 타살로 부르는 이유인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은 없다는 말이 있다. 현재 발달장애인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충분히 예측가능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가족에게만 그 책임을 맡겨두고 외면하여 사회적 재앙이 된 것이다. 발달장애인을 다르게 보지 말라는, 그들도 우리와 함께 시대를 살아가는 존재라는 공익광고를 정부에서 제작해서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 가정의 문제는 느긋하고 아름다운 인식개선 광고를 통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지난 4월 전국장애인부모연대에서는 17개 시도 전국 오체투지 투쟁을 진행하였다. 더 이상 죽고 죽이지 않기 위해 거리로 나와 온몸을 내던져가며 필요한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였다. 6월에도 그들은 또다시 뜨거운 아스팔트에서 오체투지를 진행한다고 한다. 이제 관념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닌 그들의 목소리를, 그들의 요구를 정부는 직접 들어야 한다. 그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지금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히 경청하지 않으면 비극적인 참사를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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