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에는 오래 보자 - 이윤호 굿네이버스 광주전남본부 팀장
2024년 05월 14일(화) 00:00
출근하는 길 담장 너머로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빨간 장미를 보면서 명나라 후기 격언서, 고금현문(古今賢問) 한 구절이 불현듯 떠올랐다. ‘꽃 한 송이 피었다고 봄이 아니다. 온갖 꽃이 함께 피어야 비로소 봄이다.’ 장미도 어우러져야 아름다운 것처럼 가정의 달 5월에는 아이들과 부모 그리고 수많은 스승의 마음 곳곳에 웃음꽃 만발하는 봄이 오기를 기대한다.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애송시, 김춘수 시인의 ‘꽃’을 보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한다.’ 시인의 고백처럼 우리는 관계 안에서만 존재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존재인지 모른다. 자녀는 나에게 ‘꽃’이고 ‘우주’이다. 티 없이 고결하게 피어나는 신비요 그 자체만으로도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대한민국 아동에게도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너는 꽃이고 우주다!’ 요즈음 출생 미신고 아동 사망, 아동청소년 정신건강 적신호, 끊이지 않는 아동 성범죄와 학대, 자립준비청년의 어려운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 시대 부모이자 어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못한 것만 같아 숙연해진다. 누군가 현존하는 미래인 우리 아이들이 밝고 씩씩하게 자라기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나는 ‘관심(關心)’이라고 답하고 싶다.

우리 집에는 앵무새, 사슴벌레, 강낭콩 등 7개 종의 애완 동식물들이 있다. 온통 자녀들이 돌보는 또 하나의 가족이지만 나에게 이들은 자녀와 눈높이를 맞추고, 생각을 나누며, 소통을 돕는 양육 조력자들이다. 앵무새(사랑이)는 고운 말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말씨 선생님이다. 아이들이 서로 아웅다웅 다투고 있을 때였다. “애들아 나중에 사랑이가 너희들의 미운 말씨를 계속 따라하면 어떨 것 같니?”하며 소리를 흉내 내었더니, 모두 한바탕 크게 웃고는 말과 행동을 조심하기 시작했다.

강낭콩(뾰족이)은 생명의 신비와 희망을 전해주는 꿈 선생님으로 아이들은 매일 강낭콩에 물을 주면서 잘 크고 있는지 혹시 어디 아프지 않은지 밤낮으로 살피며 함께 자란다. 그리고 잠자기 전에 아이들은 안방에 있는 식물 스투키(초록이)에게 ‘초록아 사랑해, 잘 자!’ 속삭이며 불을 끈다. 이후 우리 가족 사이에 ‘사랑해, 잘 자!’ 캠페인이 시작됐으니 초록이는 뛰어난 가족사랑 선생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를 통해 자녀와의 대화가 풍성해지고,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며, 자녀와 함께 부모도 성장해 가는 일상을 경험한다.

5월에는 아이들을 오래 보자. 그리고 자세히 보자. 예쁘고, 사랑스러워지는 것을 어느 시인처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에 대한 작은 관심은 정성이 담긴 엄마 밥상 같아서 화려하지 않지만 나날이 켜켜이 쌓여서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지난주에는 첫째 딸 학부모 참관수업에 참석했다. 부모가 왔는지 확인하려고 뒤돌아보는 아이들의 수많은 눈동자 중에 내 아이와의 짧고도 강렬한 눈맞춤을 잊을 수 없다. 아이는 마법에 걸린 듯 금세 안정을 찾고 수업에 집중했다. 수업 끝자락에 소감을 나누면서 학생, 부모, 교사에게 박수를 보냈는데 우리 아이들이 이처럼 건강하게 잘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주변 환경의 지지와 관심’ 덕분이라 믿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아동과 교사의 권리 충돌로 안타까운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지만 투철한 사명감으로 바르게 지도하시는 훌륭한 담임교사와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도 포기하지 않고 가정을 성실하게 일구어가는 부모 그리고 옆에서 늘 격려하고 지지해 주는 학급친구가 있기에 대한민국 아동이 흔들리지 않고 사회 구성원으로 견고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다.

내가 속한 굿네이버스는 2016년부터 격년주기로 ‘아동권리지수’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 아동의 권리보장 수준과 변화 추이를 점검한다. ‘2023 대한민국 아동권리지수(4차)’ 결과 우리 지역은 69.2점으로 21년(3차) 대비 1.2점 상승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지자체 재정 확보와 인프라 구축 등 사회적, 제도적 노력과 관심이 여전히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가정-학교-지역사회’ 모두가 현장에서 흘린 땀의 결실이라 생각되기에 내일이 빛나는 우리 고장(光州)의 미래가 기대되고, 모두가 함께 만드는 ‘아동행복 대한민국’이 설렌다.

끝으로 김춘수 시인의 ‘꽃’ 마지막 대목을 선물로 글을 마친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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