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 김미은 여론매체부장
2023년 10월 18일(수) 23:00
“더이상 내가 열여섯 살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어. 서른여섯, 마흔여섯 같은 나이들도 여리고 조그맣게 느껴졌어. 더 이상 나는 학년에서 제일 작은 정대가 아니었어.”

1980년대 흔히 볼 수 있었던 낡은 녹음기의 버튼을 누르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전시장에 울리는 내 목소리가 낯설기도 했지만, 테이프에 담길 그 목소리가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책상 위에 놓인 책 ‘소년이 온다’의 51페이지를 소리 내어 읽었다.

전시장에서 만난 영상 속에서는 또 누군가가 ‘소년이 온다’를 읽고 있었다. 1980년 살레시오 고등학생이던 아들 백두선을 잃은 박순금 어머니 등 6명의 ‘오월 어머니들’이었다.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소리 없는 목소리’전(26일까지·기획 유재현·정현주)은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를 오월 어머니와 시민들이 함께 읽는 프로젝트다. 김홍빈·심혜정·정기현 세 명의 참여작가는 오월 어머니들의 낭독 모습, 광주의 장소들을 촬영한 영상과 설치 작품을 통해 죽은 자와 산 자 모두에게 ‘애도’를 전한다.

국내에서 40만부 이상 판매된 ‘소년이 온다’는 영미권에서 ‘휴먼 액트(Human Acts)’로 번역되는 등 20여개 국에서 출간돼 ‘오월’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몇 년 전 5·18 취재차 광주를 찾은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 역시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고 했다. 그는 5·18 광장을 지날 때 “저기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바로 그 상무관이냐”고 물었다.

‘소년이 온다’에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상무관에서 시신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되는 중학교 3학년생 동호와 그런 동호를 마음에 묻은 엄마 등 다양한 목소리가 등장한다. “네가 나한테 한번 와준 것인디, 지나가는 모습이라도 한번 보여줄라고 온 것인디, 늙은 내가 너를 놓쳐 버렸어야.”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왜 캄캄한 데로 가.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오월 어머니들’의 육성으로 듣는 소설의 어느 구절과 동호의 내레이션이 마음을 움직인다. 소설을 낭독하며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마음을 어루만지는지도 모른다.

/김미은 여론매체부장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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