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 수행자’ - 송기동 예향부장
2023년 10월 17일(화) 00:30
“작품을 바닥에 놓고 5m 짜리 대(사다리)를 타고서 출렁출렁하면 리듬이 생겨요. 그 리듬을 무당처럼 타 버립니다.”

지난해 6월, 서울 연희동 주택가에 자리한 기지재단에서 박서보 화백을 인터뷰했다. 건물 1층은 작품 전시실과 정원으로 꾸며져 있었다. 전시실에는 제주 유채와 진달래, 개나리, 벚꽃, 단풍과 같은 자연의 색감을 담은 ‘컬러 묘법(描法)’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바깥 정원에는 널찍한 바위와 수양매 등 나무 몇 그루가 점점이 자리하고 있어 단아한 인상을 줬다. 실내에 놓인 달항아리와 바깥의 정원 풍경이 하나인 듯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화백은 30대 중반 시절, 새로운 미술의 방법론을 ‘나를 비워내는 일’에서 찾았다. 어린 아들의 한글 쓰기를 보며 시작한 ‘묘법’ 작업이 그것이다. 그의 단색화(單色畵)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은 때는 80대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화백의 ‘컬러 묘법’ 작품을 새가 날아들어 실제로 쪼아 먹었다는 일화는 자연과의 합일(合一)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이제 단색화는 한국만의 독창적 미술양식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화백은 하루 14시간 이상 ‘연필 묘법’ 작업에 몰두하던 20~80대 시절을 이야기하며 이를 ‘수행’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그에게 그림은 수신을 위한 수행의 도구라고 했다.

“그것(그림을 그리는 일)에만 집중을 하니까 그 사이에 몇 번을 지우고 또 다시 하고 지우고 다시 하고 수없이 반복하는 거죠. 결국은 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수신(修身)하기 위해서, 지금 그림을 통해서 내가 수행(修行)하는 거지. 무슨 얘기인지 그걸 이해 못하면 내 그림 이해 못합니다.”

한국 현대 미술사에 큰 획을 그은 박서보 화백이 지난 14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화백은 생전에 ‘변화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그러나 변해도 추락한다’라는 묘지명을 미리 새겨뒀다고 한다. 언제나 변화를 추구하고, 매너리즘을 경계하기 위해 다짐하곤 했던 문구라고 말했다. ‘캔버스 수행자’ 단색화 거장이 새로운 예술을 꿈꾸는 젊은 예술인들에게 던지는 화두이기도 하다.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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