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관과 마한 - 윤영기 사회체육담당 부국장
2023년 09월 25일(월) 00:00
고분에서 발굴된 금동관(金銅冠)은 최고 지배자나 정치체의 존재를 상징하는 유물이다. 2020년 영암군 시종면 내동리 쌍무덤(지방기념물 제83호)에서 금동관편(金銅冠片)이 출토됐다. 금동관 조각이었지만 일제 강점기 나주 신촌리 금동관(국보 제295호) 출토 이래 마한시대 금동관의 실재를 보여주는 유물로 평가됐다. 금동관편은 금동대관(金銅帶冠·띠 모양의 금동관) 둥근 테의 앞쪽과 양측 면에 나뭇가지 모양의 장식을 세운 형태로, 나주 신촌리 금동관과 매우 유사해 주목받았다. 쌍무덤 금동관은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광주·전남지역을 중심으로 한 마한권역에서 발굴된 금동관은 백제와 연관지어 해석된다. 백제의 왕이 5세기 말 나주지역 신하에게 준 게 신촌리 금동관이라는 인식이다. 이는 전남 지역이 서기 369년 백제에 병합됐다는 통설을 전제로 한 해석이다. 전남지역 마한이 530년까지 존속했다는 학설이 학계에서 공감을 얻고 있음에도 통설을 따르는 견해는 여전하다. 최근 영암군 주최로 열린 ‘영암 내동리 쌍무덤 사적지정 학술대회’에서도 유사한 주장이 되풀이 됐다. 쌍무덤 금동관도 백제의 하사품이라는 전형적 견해다.

반면 이도학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명예교수는 “신촌리 금동관은 백제보다는 초화형 입식(草花形 立飾·관의 테두리 위에 세운 꽃모양 장식) 등에서 대가야계 요소가 포착되고 있는 등 백제와 동질성 보다 이질성이 두드러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영암 내동리 금동관모 편은 신촌리 9호 금동관과 동일 계통이며, 영암 내동리 세력은 백제 중앙과 관련이 없는 독자세력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의 견해는 ‘현지(마한 지역)에 살던 장인 집단이 금동관 형태를 모방해 현지에서 제작했다’는 김낙중 전북대 교수의 자체 제작설과도 맥이 닿아 있다.

영암 내동리 금동관의 진가는 이 지역 마한사를 재정립할 수 있는 유물이라는 데 있다. 영암군이 이번 학술대회에 그치지 않고 백제의 마한 병합 시기, 금동관의 제작 주체 등 현재까지도 논란이 되는 우리 지역 고대사를 밝히는 노력을 지속했으면 한다.

/penfoot@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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