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독립운동 사적지, 선열들께 부끄럽지 않나
2023년 03월 03일(금) 00:00
화순군에 있는 호남 유일 ‘민족 대표 33인’ 양한묵 선생 묘소가 심각하게 훼손된 채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 선생은 1919년 3월 1일 서울 종로구 태화관에서 열린 독립선언서 서명식에 참석했다가 경찰에 체포돼 모진 고문 끝에 옥사했다. 이후 서울 수유리 공동묘지에 안장됐다가 1922년 현 위치인 화순군 앵남리 야산으로 이장됐다.

광주일보가 3·1절을 앞두고 엊그제 찾은 양 선생 묘소는 도저히 참배객을 맞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봉분은 산짐승이 파헤친 듯 양 측면의 흙이 떨어져 나가 잔디 뿌리가 보였고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잡초가 무성했다. 특히 묘소로 들어가는 입산로는 가관이었다. 나무 계단 대부분은 썩은 상태였고, 일부는 아예 유실됐다. 또 10㎝ 크기의 녹슨 대못이 곳곳에 튀어나와 참배객들의 안전을 위협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참배객들이 묘소를 찾아가는 것도 힘들었다. 묘소는 마을에서 깊숙한 동네 뒷산에 있지만, 동네 어귀 어디에도 그 흔한 안내판 하나 없었다. 또한 묘소 인근에 세 기의 봉분이 뒤섞여 있어 봉분 옆의 안내판이 없으면 어느 곳이 양 선생의 묘소인지 알아보기조차 힘들었다.

광주·전남 지역에 있는 독립운동 현충 시설은 광주 16곳, 전남 121곳 등 총 137곳에 달한다. 하지만 장성군 북이면 모현리 ‘삼일사’나 함평군 월야면 ‘낙영재’ 등 대표적인 독립 만세 운동 현장과 사적지들이 관리 부실로 방치되고 있다. 여기에는 지자체의 무관심 탓이 크다.

독립운동 사적지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선열들의 혼이 깃든 곳이다. 당연히 후손들은 이를 보존해 숭고한 정신과 호국의식을 지켜 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도 사적지가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국가보훈처와 지자체는 독립 운동 사적지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할 수 있도록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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