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 김민석 여론매체부 기자
2022년 06월 26일(일) 20:40
“기자면 다야?! 잘못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1년 전, 첫 기사가 나간 뒤 피해 유족에게 들었던 첫 마디였다. 피해 유족의 천금같은 아들은 지난해 6월 29일 광주시 광산구 어등산에서 극단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등졌다.

당시 광주광산경찰서를 출입하는 기자로, 해당 고교생의 죽음에 빈번한 학교폭력으로 인한 괴로움과 두려움이 영향을 미쳤다는 내용을 취재한 뒤 사회면에 작성한 단독 기사의 첫 반응이었다. 갑작스럽게 소중한 아들을 잃은 부모의 아픔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결과였다. 가해자에 대한 엄정한 처벌과 경찰의 적극적인 수사를 요구하는 ‘긍정적’ 기사라는 생각만으로 작성한 탓에 예상치 못한 반향에 당혹스러웠다.

어떻게 해야할까. 미안함·엄청난 상처를 덧낸 것 같은 죄스러움 등으로 사건에 더 매달렸다. 피해 학생 친구들을 만나러 다녔고 관련 내용을 숨기는 경찰서와 학교, 교육청을 돌아다녔다. 경찰의 초동 수사가 미흡한 사실이 드러났고 학교와 교육청 등 교육당국의 무관심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도 확인했다. 꼭 10년 전, 대구에서 발생한 학교폭력 사건 피해 학부모도 만났다. 당시 정부가 대대적으로 강화했던 학교폭력 대책도 현장에서는 먹혀들지 않았다는 점도 알게됐다.

그렇게 내놓은 기사만 30건이 넘었다. 사건 발생 초기에 반짝 관심을 보이던 다른 언론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유족들이 마음을 열고 연락해왔다.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어 고맙다’면서 걸려온 전화였다. 해당 경찰수사는 한 달여 만에 검찰로 넘어갔고 사건 발생 3개월 뒤인 지난해 9월 29일 첫 재판이 열렸다. 가해 학생들은 재판에서도 ‘장난이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재판부에는 뭘 잘못했는지 반성문을 줄기차게 냈다. 11차례 재판이 진행될 때마다 피해 가족들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가해자들에게 당한 아들의 피해 사실이 들춰질때마다 울부짖었다.

사건 이후 1년이 흘렀고, 지난 24일 이들에 대한 1심 선고 재판이 열렸다. 아들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유족들의 슬픔을 헤아리는 듯 담당 판사도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이례적으로 범행에 가담한 10대 가해학생들에게 징역형의 실형이 선고됐다.

사건을 처음 마주한 뒤 1심 재판 결과를 지켜보면서 지난 4월, 재판을 지켜보던 중 아들이 괴롭힘을 당하는 동영상이 재판에서 재생됐을 때 입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꺽꺽’ 신음을 토해내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1년의 시간은 가족들의 삶도 바꿔놓았다. 가족들은 경남 사천으로 이사했고 부친은 다른 직업을 선택했다.아들을 떠나보낸 ‘광주’에 더 머물 수 없었다고 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이 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폭행 형태, 가해자들 태도, 학교와 교사들의 허술하고 무책임 대응 방식까지. 영화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도무지 달라지지 않는 현실을 꼬집는다.

오는 29일은 숨진 고교생의 기일이다.

“내 아이가 차라리 가해자가 돼 피고인의 자리에 서 있더라도, 한 번이라도 다시 볼 수 있는 것이 소원”이라는 부친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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