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와 ‘호남’-박기웅 경제부 기자
2021년 11월 16일(화) 21:00

박기웅 경제부 기자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지난 2일 보석으로 풀려났다.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사업권을 활용해 금호고속에 자금을 부당지원했다는 혐의로 지난 5월 구속기소된 지 6개월여 만이다.

지금까지 수사와 재판과정을 들여다보면 박 전 회장이 계열사 부당 지원 등 불법행위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이 모든 과정이 개인의 사욕이 아니라 그룹의 재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이 명백히 밝혀졌다. 박 전 회장 사건을 지켜보는 호남인들의 안타까움이 한층 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직도 지역민들은 금호를 떠올리면 마음이 안타깝고 짠할 수 밖에 없다. 택시 두 대로 시작한 故 박인천 창업주는 광주여객을 설립해 버스 운수업계에 뛰어들었고, 1970년대 호남고속도로 개통으로 급성장을 이뤘다. 당시 호남인들의 열렬한 성원에 힘입어 맞수인 중앙고속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뒤 타이어와 건설, 석유화학 사업에 진출하며 그룹의 기초를 다졌다. 1988년 제2민항사 선정과 함께 대기업으로 도약하는 등 위용을 뽐내던 시절도 있었다.

한 때 호남에서는 유일하게 30대 그룹에 이름을 올렸고, 재계 7위까지 뛰어올랐던 ‘호남기업’ 금호의 쇠락을 지켜보는 지역민들의 애잔함은 단순히 금호가 지역에 기반을 둔 기업이어서가 아니다.

금호는 76년을 지역민과 동고동락해왔다. 호남인들의 성원에 힘입어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을 이뤄왔으며, 호남인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수많은 공헌을 해왔다. 박인천 창업주는 ‘영재는 기르고, 문화는 가꾸고’라는 사회공헌 철학으로 1959년에 죽호학원을 설립해 교육사업에 헌신했고, 1977년 금호문화재단을 설립해 문화 예술에 대한 지원에도 힘을 쏟았다. 광주상공회의소 설립 이후 24년간 회장을 지내며 지역 대표 경제단체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했다. 경제는 물론 문화, 교육, 체육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공헌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금호에 대한 호남인들의 긍지는 높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호남에서 금호 같은 그룹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라며 안타까워 한다. 박 전 회장이 구속에서 풀려났으나 법적 심판을 받게 될 그를 바라보는 지역민들의 상실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박 전 회장의 신병이 다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면 금호그룹의 재건 역시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어질 게 뻔하다.

금호그룹은 누가 뭐라 해도 호남인들의 정서가 깊게 밴 기업이다. 문재인 정부는 호남을 주 기반으로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기업의 문제를 포함해 경제적 상황을 시장논리가 아닌 정치적 논리로 풀려고 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낙후된 호남경제를 고려할 때 지역에 76년 뿌리를 내려온 대표기업이 위기에 처한 것을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지역민의 생각이다. 금호 만큼은 어떠한 경우라도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호남인들의 간절한 바람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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