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야 할 이름 김홍빈 - 김진수 사진부 차장
2021년 08월 09일(월) 03:00

김진수 사진부 차장

김홍빈 대장을 처음 만난 것은 2007년이었다.

“김홍빈입니다. 반갑습니다”라며 그가 악수를 청했다.

으레 내미는 손이라 생각하고 반사적으로 맞잡았지만 당황하고 말았다. 당시 김 대장이 누군지도, 등반 도중 손가락을 잃었다는 것도 몰랐기에 더욱 티가 났을 것이다. 당연한 반응이라는 듯 김 대장은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뭉툭하고 거친 김 대장의 손을 처음 잡은 그 날,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이미 ‘열 손가락이 없는’ 장애를 극복하고 있었다. 도전의 과정에서 장애는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는 입버릇 처럼 말했다. “저같이 장애있는 사람도 해내는 일입니다. 여러분도 희망을 가지세요.” 김 대장은 그렇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에게 힘과 용기를 준 산악인이었다.

2015년 4월 지진 피해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네팔에서 김 대장을 다시 만났다.

로체(8516m) 등정을 위해 왔던 김 대장도 베이스캠프가 지진 피해를 입어 수도인 카트만두로 대피한 상태였다. 그는 “히말라야 여신이 이번엔 못 올라가게 하네요”라며 밝은 표정으로 얘기를 이어갔다.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준비한 원정이라 속상할 법도 한데 남 일 얘기하듯 했다. 그렇게 자연에 겸허했기 때문에 숱한 죽을 고비에도 도전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김 대장이 등정에 욕심을 내고 무리하게 산행을 감행했더라면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보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김 대장은 2년 뒤인 2017년 5월 로체 등정에 성공했다. 그 여세를 몰아 그 해 7월 파키스탄 낭가파르밧(8125m) 정상도 밟았다.

지난 4월 영암 월출산 시루봉 암벽등반 훈련 때 만난 김 대장은 기자에게 브로드피크 원정에 함께 가자고 권했다. 자신의 마지막 8000m급 히말라야 완등의 순간을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담고 싶었나 보다. 그는 기자에게 비행기표까지 발권해주며 매일같이 전화했다. 하지만, 두 달이 넘는 원정 기간을 버틸 자신이 없었다.

원정에 나서던 날, 김 대장은 지인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전 세계가 코로나로 힘든 시기에 저의 8000m 14좌 꿈인 마지막 브로드피크 등반이 온 국민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기를 기원하며 전 대원 안전하게 다녀오겠습니다. 항상 변함없는 격려와 응원에 감사드립니다. 원정대장 김홍빈 드림” 김 대장은 그렇게 위로받기 보다 남을 위로 하고 희망을 주려했다.

김 대장은 지난 달 18일 밤 브로드피크 등정 성공이 들려온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실종됐다. 김 대장을 아끼는 모든 이들은 그의 생환을 간절히 바랐지만 가족들의 뜻에 따라 수색이 종료됐다. 달리 말하자면 김대장이 수색을 종료하도록 했다. 그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혹, 내가 산에서 일을 당하면 결코 나서지 말라. 나를 찾느라 나선 산악인들이 2차 피해에 희생될 수 있다”고 말해왔다고 한다. 사실상 유언이 된 이 말 때문에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김 대장과 이별을 준비하게 됐다.

8일 김 대장의 영결식이 진행됐다. 그를 히말라야 품에 맡겨두었지만 우리에게 남은 일이 있다. 숱한 고난과 역경에도 희망이 되고자 했던 그를 기억하는 일이다. 때마침 광주산악계 등에서 그를 기리는 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한다. 부디 시민, 산악인의 염원이 결실을 맺었으면 한다.

김진수 기자/jeans@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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