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김홍빈!
2021년 07월 21일(수) 01:30 가가
“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지난 7월 18일 오후 4시 58분(현지시각). 히말라야산맥 서쪽 끄트머리 파키스탄 카라코람산군의 브로드피크(Broad Peak, 8047m) 정상으로 이어지는 칼날 릿지(바위 능선)에 한 산악인이 올라섰다. 만년설과 얼음에 뒤덮인 암릉은 산정을 향해 가파르게 뻗어 가고 있었다. 능선의 폭은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좁았다. 이따금 돌풍까지 불어 몸조차 가누기 힘들었다. 하지만 그는 열 손가락이 없는 탓에 크램폰(아이젠)으로 설사면을 힘차게 찍으며 두 발로만 균형을 잡아야 했다.
활처럼 휘어진 마지막 릿지를 오르자 반달 모양의 대형 커니스(눈처마)가 나타났다. 그 건너편은 중국 땅으로 깎아지른 낭떠러지여서 더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마침내 정상에 다다른 것이다. 히말라야 8000m급 14개 봉우리가 모두 그의 발아래 놓이는 순간이었다. 북서쪽엔 ‘하늘의 절대군주’ K2(8611m)의 피라미드가 구름을 뚫고 치솟아 장대한 위용을 자랑하고, 남동쪽엔 가셔브룸Ⅰ(8068m)·가셔브룸Ⅱ(8035m) 등 그가 올랐던 거봉들이 줄지어 도열하고 있었다. 한순간 도전과 극복의 외길로 거침없이 달려왔던 지난 30년의 풍상(風霜)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갔다.
장애인 세계 최초 14좌 완등 후 실종
김홍빈(57) 대장이 마침내 히말라야 8000m급 14좌(座) 완등을 이뤄 냈다. 열 손가락이 없는 중증 장애인으로서는 세계 최초다. 그가 이룬 성과는 거의 기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다리가 없어 의족에 의지하거나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간혹 에베레스트(8848m)에 올라 감동의 드라마를 쓰곤 했다. 하지만 김 대장처럼 히말라야 자이언트 봉 14개를 모두 오르거나 그 목표에 도전장을 내민 장애인은 여태껏 없었다. 더욱이 그는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까지 달성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성취는 앞으로도 당분간 깨지지 않을 쾌거임이 분명하다.
비장애 등반가까지 포함해도 14좌 완등은 전 세계에서 마흔네 번밖에 없다. 국내에서는 박영석·엄홍길·한왕룡·김재수·김창호·김미곤에 이어 일곱 번째 대기록이다. 2006년 가셔브룸Ⅱ 등정을 시작으로 14좌를 모두 오르는 데 걸린 기간은 15년. 세계 최초인 라인홀트 메스너(16년)를 비롯해 다른 완등자들의 평균치와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다. 완등을 달성한 나이 역시 거의 최고령에 속한다. 김 대장의 이번 등정으로 대한민국은 이탈리아와 나란히 일곱 명씩의 최다 완등자를 배출하며 산악 강국의 면모를 과시했다. 고흥이 고향인 김 대장은 광주·전남 출신으로는 첫 완등자이기도 하다.
그의 도전과 성취가 더욱 빛나는 것은 불굴의 의지와 부단한 노력으로 자신의 핸디캡을 극복했다는 점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인 1991년 북미 최고봉인 맥킨리(6194m)를 단독 등반하다 동상에 걸려 양손 손가락을 모두 잘라 내야 했다. 손등까지 문드러졌지만 일곱 차례 수술 끝에 그 안에 철심을 박고 뱃살을 이식해 지금의 뭉툭한 조막손이 만들어졌다. 그래 옷을 입는 것은 물론 용변을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동안 실의와 좌절에 빠져 방황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운명처럼 다시 산으로 다시 돌아왔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등반을 통해 스스로에게 희망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첫 목표는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이었다. 1997년 유럽 최고봉 엘브루즈(5642m)를 시작으로 2009년 남극 빈슨 매시프(4897m)까지 모두 오르는 데 12년이 걸렸다.
사실 등반에서 손가락의 역할은 두 말 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험난하기 그지없는 빙벽과 설벽을 수직 이동하는 데는 더욱 그렇다. 스틱을 잡고, 로프를 당기고, 피켈을 찍는 과정은 손가락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김 대장은 초인적인 의지와 투혼으로 열 손가락이 없는 불편을 극복해 냈다. 이를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담금질했다. 장애인 알파인 스키 국가대표와 사이클 선수로 활약하면서 수많은 메달을 따낸 것도 그러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8000m급 14좌 완등은 만만치 않았다. 원정 횟수로 치면 모두 27차례 도전 끝에 이뤄 냈다. 에베레스트와 마나슬루(8163m)는 세 번씩의 시도 끝에 정상을 밟았다. 여기에는 지역 산악계 선후배들의 도움이 컸다. 이번 원정에서도 비록 정상을 밟진 못했지만, 30년 이상 고락을 함께해 온 유재강(60)·정득채(57)·정우연(53) 대원이 기꺼이 그의 손이 되어 주었다.
우리는 믿는다 꼭 살아 돌아올 것을
그렇게 해서 김 대장은 필생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14좌 완등 성공 소식이 알려진 후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정상을 밟은 후 하산 과정에서 조난을 당했다는 것이다. ‘2021 김홍빈 브로드피크 원정대’와 광주시산악연맹이 파악한 바를 종합하면 김 대장은 등정 후 19일 새벽 7800m의 중앙봉과 주봉 사이에 위치한 콜(col: 봉우리 사이의 움푹 들어간 안부) 부근을 통과하다 중국 쪽 경사면으로 실족했고, 오전 5시 55분 위성전화로 구조 요청을 보냈다. 이에 인근에 있던 러시아 등반대가 사고 지점으로 달려갔고 오전 11시께 김 대장을 발견했다. 러시아 등반대는 김 대장이 손을 흔드는 것을 확인하고 고정 로프를 설치한 뒤 대원을 내려보내 구조에 나섰다. 하지만 김 대장이 주마(등강기)를 이용해 능선으로 오르려고 하는 과정에서 다시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광주시와 광주시산악연맹은 사고수습대책위원회를 꾸려 수색과 구조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외교부를 통해 파키스탄 대사관에 구조 항공기를 요청해 조만간 수색에 나설 예정이고, 중국 대사관에서도 구조 활동에 필요한 가용 자원을 동원하고 있다고 한다.
“단 1%의 가능성만 있어도 포기는 없다”고 늘 말하던 김 대장. 불굴의 도전 정신으로 장애를 딛고 일어선 그의 이야기는 교과서에 실어 미래 세대의 귀감으로 삼아도 좋을 만큼 우리 사회가 이어가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김 대장은 이러한 경험을 나누기 위해 장애인이나 소외 계층 청소년들과 산행을 함께하며 ‘희망 전도사’ 역할을 자임해 왔다. 이번 등정 직후에도 그는 “코로나19로 고통받는 국민에게 작은 희망이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전해 왔다. 이젠 우리가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할 차례다. 그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와 우리들에게 환한 미소를 보여 줄 수 있도록.
[논설실장·이사]
김홍빈(57) 대장이 마침내 히말라야 8000m급 14좌(座) 완등을 이뤄 냈다. 열 손가락이 없는 중증 장애인으로서는 세계 최초다. 그가 이룬 성과는 거의 기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다리가 없어 의족에 의지하거나 앞을 보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간혹 에베레스트(8848m)에 올라 감동의 드라마를 쓰곤 했다. 하지만 김 대장처럼 히말라야 자이언트 봉 14개를 모두 오르거나 그 목표에 도전장을 내민 장애인은 여태껏 없었다. 더욱이 그는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까지 달성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성취는 앞으로도 당분간 깨지지 않을 쾌거임이 분명하다.
비장애 등반가까지 포함해도 14좌 완등은 전 세계에서 마흔네 번밖에 없다. 국내에서는 박영석·엄홍길·한왕룡·김재수·김창호·김미곤에 이어 일곱 번째 대기록이다. 2006년 가셔브룸Ⅱ 등정을 시작으로 14좌를 모두 오르는 데 걸린 기간은 15년. 세계 최초인 라인홀트 메스너(16년)를 비롯해 다른 완등자들의 평균치와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다. 완등을 달성한 나이 역시 거의 최고령에 속한다. 김 대장의 이번 등정으로 대한민국은 이탈리아와 나란히 일곱 명씩의 최다 완등자를 배출하며 산악 강국의 면모를 과시했다. 고흥이 고향인 김 대장은 광주·전남 출신으로는 첫 완등자이기도 하다.
그의 도전과 성취가 더욱 빛나는 것은 불굴의 의지와 부단한 노력으로 자신의 핸디캡을 극복했다는 점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지금으로부터 꼭 30년 전인 1991년 북미 최고봉인 맥킨리(6194m)를 단독 등반하다 동상에 걸려 양손 손가락을 모두 잘라 내야 했다. 손등까지 문드러졌지만 일곱 차례 수술 끝에 그 안에 철심을 박고 뱃살을 이식해 지금의 뭉툭한 조막손이 만들어졌다. 그래 옷을 입는 것은 물론 용변을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한동안 실의와 좌절에 빠져 방황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운명처럼 다시 산으로 다시 돌아왔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등반을 통해 스스로에게 희망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첫 목표는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이었다. 1997년 유럽 최고봉 엘브루즈(5642m)를 시작으로 2009년 남극 빈슨 매시프(4897m)까지 모두 오르는 데 12년이 걸렸다.
사실 등반에서 손가락의 역할은 두 말 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험난하기 그지없는 빙벽과 설벽을 수직 이동하는 데는 더욱 그렇다. 스틱을 잡고, 로프를 당기고, 피켈을 찍는 과정은 손가락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김 대장은 초인적인 의지와 투혼으로 열 손가락이 없는 불편을 극복해 냈다. 이를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담금질했다. 장애인 알파인 스키 국가대표와 사이클 선수로 활약하면서 수많은 메달을 따낸 것도 그러한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8000m급 14좌 완등은 만만치 않았다. 원정 횟수로 치면 모두 27차례 도전 끝에 이뤄 냈다. 에베레스트와 마나슬루(8163m)는 세 번씩의 시도 끝에 정상을 밟았다. 여기에는 지역 산악계 선후배들의 도움이 컸다. 이번 원정에서도 비록 정상을 밟진 못했지만, 30년 이상 고락을 함께해 온 유재강(60)·정득채(57)·정우연(53) 대원이 기꺼이 그의 손이 되어 주었다.
우리는 믿는다 꼭 살아 돌아올 것을
그렇게 해서 김 대장은 필생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14좌 완등 성공 소식이 알려진 후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정상을 밟은 후 하산 과정에서 조난을 당했다는 것이다. ‘2021 김홍빈 브로드피크 원정대’와 광주시산악연맹이 파악한 바를 종합하면 김 대장은 등정 후 19일 새벽 7800m의 중앙봉과 주봉 사이에 위치한 콜(col: 봉우리 사이의 움푹 들어간 안부) 부근을 통과하다 중국 쪽 경사면으로 실족했고, 오전 5시 55분 위성전화로 구조 요청을 보냈다. 이에 인근에 있던 러시아 등반대가 사고 지점으로 달려갔고 오전 11시께 김 대장을 발견했다. 러시아 등반대는 김 대장이 손을 흔드는 것을 확인하고 고정 로프를 설치한 뒤 대원을 내려보내 구조에 나섰다. 하지만 김 대장이 주마(등강기)를 이용해 능선으로 오르려고 하는 과정에서 다시 추락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광주시와 광주시산악연맹은 사고수습대책위원회를 꾸려 수색과 구조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외교부를 통해 파키스탄 대사관에 구조 항공기를 요청해 조만간 수색에 나설 예정이고, 중국 대사관에서도 구조 활동에 필요한 가용 자원을 동원하고 있다고 한다.
“단 1%의 가능성만 있어도 포기는 없다”고 늘 말하던 김 대장. 불굴의 도전 정신으로 장애를 딛고 일어선 그의 이야기는 교과서에 실어 미래 세대의 귀감으로 삼아도 좋을 만큼 우리 사회가 이어가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김 대장은 이러한 경험을 나누기 위해 장애인이나 소외 계층 청소년들과 산행을 함께하며 ‘희망 전도사’ 역할을 자임해 왔다. 이번 등정 직후에도 그는 “코로나19로 고통받는 국민에게 작은 희망이 되길 바란다”는 소망을 전해 왔다. 이젠 우리가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할 차례다. 그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와 우리들에게 환한 미소를 보여 줄 수 있도록.
[논설실장·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