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희 시인 “풍경 담은 ‘디카詩’ 코로나 블루 위로됐으면”
2021년 06월 22일(화) 01:30
광주일보 신춘문예 출신 ‘디카시집’ 발간
‘당신을 머리맡에 두고 편히…’ 사진·시 100여편 수록
40여년 교직생활 8월 퇴임…창작집·자서전 펴낼 계획

인연의 끈 세월을 먹고 자란다고 했지 물이 낡아질 때쯤 우리는 어디에 닿아 있을까

생활 주변에서 시적 이미지나 영상을 포착해 짧게 표현한 시를 디카시(詩)라고 한다. 실시간으로 소통을 추구하는 디지털 시대의 문학 장르로, 영상과 문자로 이루어진다. 순간을 포착해 영원속에 간직하려는 예술적 열망과 관련이 있다. 더욱이 요즘에는 스마트폰이 보편화돼 누구나 손쉽게 영상을 촬영하고 이미지에 맞춰 짤막한 시를 쓴다.

광주일보 신춘문예 출신 정영희 시인이 디카시집 ‘당신을 머리맡에 두고 편히 잔 적 없었다’(책과 나무)를 펴냈다.

제목부터 눈길을 잡아끈다. 얼핏 연애나 사랑을 모티브로 한 창작집일 것 같은 착각을 준다. 그러나 시인의 말은 보기 좋게 이편의 단견을 깨버린다.

정영희 시인
“시집 제목에서 ‘당신’은 세상과 교감하는 구체적인 사물이나 현상을 말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람과 자연이 어떻게 공생해야 아름다운 삶이 연주되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시집 발간 소식을 전하는 시인의 말은 ‘시적’이었다. 시인은 당연히 그러한 모티브를 취했을 것인데, 기사를 쓰는 이편에서 연애시일 거라 지레짐작을 했던 거였다. 세상의 사물을 ‘당신’으로 상정하고 그것들과의 공생을 노래한 것은 어쩌면 가장 아름답고 찡한 ‘연애시’일지 몰랐다.

“올해로 신춘문예 등단 10주년”이라는 말에서 시집의 발간 배경을 읽을 수 있었다. 한편으로 시인은 “오는 8월로 40여 년의 교직생활을 마무리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창작집은 여러모로 남다른 의미가 깃들어 있었다.

창작집에는 ‘산목련’, ‘모닥불’, ‘흔적’, ‘퐁당’, ‘그루터기’, ‘동백꽃’, ‘여수반도’, ‘벽’ 등 일상에서 만나는 소재를 형상화한 작품이 대부분이다. 다양한 이미지에서는 오래 바라보거나 순간적으로 포착했을 시인의 감성이 묻어난다.

“주사기가 몸을 다스리는 처방이듯, 디카시 한 줄이 코로나를 잠재우는 백신이 되길 기대합니다”라는 말에서 이번 시집을 묶어낸 마음도 어느 정도 가늠된다.

사실, 우리 주변의 사물은 그저 사물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일상 또한 일반적인 시간의 흐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에 숨결을 불어넣고 의미의 싹을 틔우는 것은 이편의 ‘온기’다. 그는 “일상적인 주변 풍경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었더니 풍경이 숨을 쉬었다”며 “작업 과정 중에 ‘당신’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진정한 ‘자아’를 찾는 일도 기쁨이었다”고 말했다.

작품집을 발간하면서 15년여 동안 손발이 돼 주었던 차를 ‘떠나보낸’ 일도 있었다. “지자체로부터 노후 교체 차량 자금을 지원받고 차를 보냈죠. 레커차에 끌려가는 차량이 내 모습인 것 같아 안쓰러웠습니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언젠가 제주 어느 여행지에서 날 닮은 차를 발견하고는 씁쓸한 기억이 떠오르더라구요.”

‘폐차장 가는 길’은 그렇게 그때의 기억을 소환한다. “한눈파는 일은 없었다/ 생고집은 피웠어요// 기름 대신/ 햄버거를 가득 채워 보냈다” 시인은 가끔씩 고장이 나 말썽이었던 차에 대한 애정을 그렇게 에둘러 노래한다. 기름보다는 햄버거를 실어 보냄으로써 15년이라는 시간에 대한 정을 표현한다.

그는 신춘문예 등단 이후 ‘선암사 해우소 옆 홍매화’, ‘아침햇빛편의점’, 산문집 ‘풍경이 숨 쉬는 창’ 등을 펴내는 등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왔다. 다른 이들은 교직과 창작을 병행하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그는 그렇지 않다. 가르치는 일이 주업이어서 무언가 읽고 쓰고 생각하는 시간이 창작에 도움이 된다. 그동안 독서활동을 통해 “많은 시와 시인을 만났고 운명처럼 시를 사랑하게 됐다”는 말에서 그의 시에 대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다만 그는 잘못된 문학교육 풍토 탓에 “시는 특권계층이나 누리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편협한 사고와 수능 위주의 입시교육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시를 즐기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40여 년 교직이라는 한 우물을 파온 것에 대한 자부심이랄까, 회한도 있는 듯했다. 아마도 베이붐 세대라면 누구나 겪었음직한 가난과 방황, 민주화 투쟁 등의 시간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40대에 건강의 중요성을 깨닫고 둘레길에서 만난 야생화에 매료되기도 했지요. 꽃의 의미를 존재론적 삶으로 승화시킨 시인 김춘수나 나태주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행간에서 우러나오는 은유와 깊이를 깨닫고 시를 통해 사회적 약자나 방황하는 청춘들을 위한 위로를 건네고 싶었죠.”

그에게 시는 ‘개다리소반에 바람 한 숟갈 떠 놓고 햇살 한 가닥 걸쳐놓은 담백하고 정잘한 밥상’과도 같다. 앞으로 그는 세 번째 시집을 펴내고 자서전을 엮을 계획이다. 또한 평생교육원 같은 곳에서 ‘디카시 창작’이라는 과목을 개설해 후진을 양성하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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