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은 편집부국장 겸 문화부장] 70년 세월 품은 ‘우리 모두의 집’
2021년 04월 28일(수) 05:00
지난주 규모는 작지만 흥미로운 전시회에 다녀왔다. 광주 궁동 예술의거리 미로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별별별서’전(5월 28일까지)이다. ‘별별별서’란 이름에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다양한 가치와 이야기를 담고 싶다’는 생각과, 노동 및 쉼이 어우러졌던 옛사람들의 생활 현장인 ‘별서’(別墅)의 의미가 담겼다.

이번 전시는 오는 9월, 동명동 근대 가옥을 리모델링한 문화예술 공간에 설치될 작품을 미리 만나 보는 자리였다. 가옥에서의 문화 향유를 떠올리며 관람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다락에서 음악을 듣고, 정원에 앉아 작가가 빚은 찻잔에 차를 담아 마시며, 의미 있는 강의를 듣고, 곳곳에 자리한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행복한 ‘어느 한때’를 상상하며.



‘뻔하지 않은 무언가’ 만들어야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는 228개 지자체에서 ‘공공미술 프로젝트-우리 동네 미술’을 추진했다. 사업 기간이 짧은 데다 예산도 넉넉하지 않아 많은 지자체들은 벽화를 그리거나 조형물을 설치하는 기존의 패턴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도심 골목길부터 섬마을 담벼락까지 ‘맥락이 닿지 않는’ 그림과 설치물들이 걸려 있어 때론 ‘벽화 공해’로까지 느껴진 터라 조금은 다른 결과물을 기대했던 광주에서도 과거를 답습한 일부 작품들이 눈에 띄어 아쉬웠다.

‘별별별서’ 프로젝트에 관심이 갔던 건 ‘발상의 전환’에 눈길이 끌렸기 때문이다. 광주시 동구는 여타 지자체와 달리 ‘집’을 사업의 대상으로 선정했다. 철거 위기에 놓였지만 시민들의 힘으로 살려 낸 박옥수 근대가옥은 1954년에 지어진 집으로 독특한 건축 양식과 함께 많은 스토리들이 쌓여 있는 공간이다. 광주의 핫플레이스 동명동을 찾을 때마다 문화공간이 거의 없는 점이 늘 아쉬웠었다. 그랬기에 무려 38명의 예술인들이 의기투합해 만들어 내는 ‘공간’이 어떠할지 무척 기대가 크다.

올해 처음 열린 ‘양림동골목비엔날레’(5월9일까지)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행사다. 양림동에는 작가들이 많이 살고 아기자기한 문화공간도 많아서 ‘우리동네 비엔날레’같은 것을 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터라 행사 소식을 들었을 때 반가웠다. 무엇보다 골목 비엔날레는 지자체 예산 지원 없이 치러진다는 데 의미가 있다.

마을과 함께 성장하기 위해 양림동의 기획자와 작가들은 고민을 이어 갔고, 주민들을 참여시켰다.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골목길 등 문화자산을 활용하고, 식당·카페·빈집 등을 전시 공간으로 엮어 볼거리를 제공했다. 마침 광주비엔날레가 양림동에서도 열려 시너지 효과도 톡톡히 보고 있다. 관람객들은 전시를 본 후 자연스레 동네를 산책하며 양림동 속으로 훌쩍 들어온다. 첫 행사여서 미숙한 점도 있지만 일반 관광객들은 물론이고 진도군 등에서 벤치마킹하기 위해 다녀가기도 했다. 여기에 양림동 이외 지역에 살고 있는 작가들의 문의도 이어져 내년부터는 작가를 공모할 예정이다.

양림동에서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전시가 열리고 있다. 광주비엔날레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바로 옆 레지던시에서 만날 수 있는 ‘당신의 주제 ㅅㅈㅅㅈ’전이다. 자끄 아딸리가 팬데믹을 겪은 인류의 새로운 문화예술의 주제로 꼽은 ‘시간, 죽음, 슬픔, 장례식’을 주제로 한 이번 기획전에는 김승택 등 8명의 작가가 참여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 역시 작가와 레지던시 운영자가 자비를 들여 기획했다고 한다.

코로나로 비엔날레 관람 인원이 제한돼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레지던시 공간으로 발길을 옮겨 또 다른 작품들을 감상한다. 당초 30일까지였던 전시는 비엔날레 폐막일인 5월9일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올해 행사에서 가능성을 본 주최 측은 꽃이 아름다운 매년 4월 아트폴리곤과 레지던시 등 4개 전시 공간을 모두 열어 재미있는 전시를 꾸려 볼 생각이란다.



발상의 전환과 골목비엔날레



발상의 전환과 톡톡 튀는 아이디어는 어느 분야에서나 다 필요하겠지만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아닌가 싶다. 특히 예술가들의 기발한 상상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멋진 경험을 선사한다. 아이디어는 또 다른 아이디어를 낳고, 모험처럼 보였던 머릿속 구상을 일단 구현해 보면 또 다른 길이 보이기도 한다.

이번 공공미술 프로젝트와 관련해 “뻔한 벽화 작업이라면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한 작가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주어진 예산에 맞춰 관례에 따라 고만고만한 행사를 치를 수도 있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조금은 뻔하지 않은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는 작은 노력들이 모일 때 광주의 문화 생태계는 훨씬 풍성해질 것이다.

동명동 근대가옥은 오는 9월 문을 연다. ‘우리 모두의 집’이 된 그곳에서 가을 어느날, 근사한 일들이 더욱 많이 벌어지기를! 양림동 골목비엔날레와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전시도 해마다 더 멋진 모습으로 열릴 수 있기를! 우리의 발길을 붙잡을 발칙한 상상력의 문화 행사들이 더 많이 펼쳐지기를!

김미은기자/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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