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수 광주동신고 교사] 밥알 하나
2021년 02월 08일(월) 08:00 가가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어머니께서 미적거리신다. 살짝 뒤돌아보니 무언가를 주섬주섬 담고 계신다.
“어머니이!”
아내 목소리 끝이 올라간다. 어머니는 봉지를 주머니에 우적우적 넣고선 태연하게 식당을 나오신다. 강아지 주시겠단다.
밥이다. 밥알 하나라도 버리면 죄로 간다고 하셨다. 그러니 반 공기쯤 되는 양인데 어찌 죄 뿐이겠는가. 지옥보다 더한 곳도 갈 죄이다. 입버릇처럼 하셨으니 행동은 말해 무엇 하랴. 당신은 응당 해야 할, 양심을 지키는 일일 것이고 나아가 굶주린 채 잠 못 이루는 다른 생명을 생각하고 있음일 것이다. 어머니는 주머니 속 봉지를 뺏기지 않으려는 듯 더욱 꽉 잡으신다. 우리는 환한 얼굴만 보고도 어머니 심중을 알고 있다.
해거름까지 이삭을 줍던 때였다. 논바닥을 이리저리 오가며 나락 모가지를 줍고 나면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숟가락을 놓자마자 또 배가 고팠던 때다. 그때 꿈은 오직 하나, 실컷 먹는 일이었다. 창자를 채우기 위해 산 것 같다. 허나 풍요로워진 지금도 삶이란 배를 채우는 일이다. 상대와 싸우고 심지어 죽고 죽이는 전쟁도 실상 먹기 위함이다.
평화냐 전쟁이냐는 갈림길에서 이념이나 철학 따위는 실상 고고한 것이 아니다. 밥알 하나로 달라진다. 아무리 고고한 시인도 먹어야 살고, 사랑하는 이에 대한 증명도 밥상이 먼저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싸우는 이유도 밥알이고 승패를 결정하는 것도 보급품인 밥이다.
지구 곳곳이 죽느니 사느니 아우성이다. 가만히 속을 들여다보면 그 중심에는 밥알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밥알 하나를 생산할 땅을 빼앗고, 또 그 땅을 지키고자 수많은 생명을 바치고, 천문학적인 군사비를 쏟아붓는다.
북한을 탈출하여 타국 땅에서 버려진 음식을 주워 먹는 꽃제비들의 모습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앙상한 뼈를 드러낸 아프리카 어린이의 모습도 애잔하다. 그러니 승려였음에도 유교적 이념을 노래한 충담사의 “꾸물거리며 살손 물생, 이를 먹여 다스려져”(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백성,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 통치가 가능해져)라는 구절은 여전히 유용하고, 먹을 때는 개도 때리지 않는다는 속담 역시 지금도 진리다.
이웃 간에 서먹서먹해도 밥을 담 너머로 빌려주던 때가 있었다. 어머니는 밥이 부족하면 이웃집에서 빌렸고, 이웃이 부탁하면 아랫목 이불 속에 넣어둔 아버지가 먹을 밥이라도 빌려주시곤 했다. 밥통이 없던 시절, 따끈따끈한 밥 한 그릇이 이웃의 갈라진 틈새를 잘도 메웠다.
예전에 나는 밥을 저항의 수단으로 삼은 적이 있었다. 어머니가 내 요구 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곤 했는데, 기어코 내 입에 밥 들어가는 모습을 보아야 잠을 이뤘던 어머니에게 비열하게 생오기를 부렸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단식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한다. 곡기를 끊겠다는 것은 죽겠다는 말이다. 다른 방법도 있을진대 식음을 전폐하겠다니, 유치한 시절이 떠올라 단식의 ‘단’자만 꺼내도 그 녀석을 죽도록 패주고 싶어진다.
밥알은 씨앗이다. 밥알 하나 먹으면 난 내 몸에 씨앗 한 알이 심어진다. 콩밥을 먹으면 콩밭이 되고 밤밥을 먹으면 내 몸에 푸른 밤나무가 자란다. 내 몸은 수많은 씨앗들이 뿌려진 밭이고 논인 셈이다. 밥알은 강아지도 먹고 참새도 먹고 심지어 똥파리도 달려든다. 우리 모두는 밥알 하나를 위해 노동하고 사유하며 인간으로 살아가고, 또한 신에게도 가장 거룩한 것을 바치니, 어쩜 밥그릇은 가장 경건한 염주 그릇인지 모른다.
그런 밥알이건만, 난 여태 밥에 대해 그다지 고마워해 본 적이 없다. 오늘 하루 내 목구멍으로 몇 개의 밥알이 넘어갔는지 헤아려 본 적이 없다. 매일 세 번 거르지 않고 밥을 대하건만 그렇게 애면글면 찾다가도 배가 차면 까마득히 잊고 돌아서 버린다.
그 밥 한 숟가락은 수십 개의 밥알로 이뤄졌고, 또 한 끼의 밥그릇은 또 수십 번의 숟가락질로 채워지건만 여태 밥 한 그릇이 몇 숟가락쯤인지, 한 숟가락 속에 몇 개의 밥알이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살아왔다. 참으로 용감했고 지금도 용감하다.
집이 가까워 오는데 어머니의 손은 여전히 주머니 속 봉지에 있다. 우리는 어머니의 넉넉한 얼굴을 보고 이미 알고 있다. 어쩌면 그 밥은 내일 아침 당신 상에 오를지 모른다.
“어머니이!”
아내 목소리 끝이 올라간다. 어머니는 봉지를 주머니에 우적우적 넣고선 태연하게 식당을 나오신다. 강아지 주시겠단다.
해거름까지 이삭을 줍던 때였다. 논바닥을 이리저리 오가며 나락 모가지를 줍고 나면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숟가락을 놓자마자 또 배가 고팠던 때다. 그때 꿈은 오직 하나, 실컷 먹는 일이었다. 창자를 채우기 위해 산 것 같다. 허나 풍요로워진 지금도 삶이란 배를 채우는 일이다. 상대와 싸우고 심지어 죽고 죽이는 전쟁도 실상 먹기 위함이다.
북한을 탈출하여 타국 땅에서 버려진 음식을 주워 먹는 꽃제비들의 모습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앙상한 뼈를 드러낸 아프리카 어린이의 모습도 애잔하다. 그러니 승려였음에도 유교적 이념을 노래한 충담사의 “꾸물거리며 살손 물생, 이를 먹여 다스려져”(고통스럽게 살아가는 백성,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 통치가 가능해져)라는 구절은 여전히 유용하고, 먹을 때는 개도 때리지 않는다는 속담 역시 지금도 진리다.
이웃 간에 서먹서먹해도 밥을 담 너머로 빌려주던 때가 있었다. 어머니는 밥이 부족하면 이웃집에서 빌렸고, 이웃이 부탁하면 아랫목 이불 속에 넣어둔 아버지가 먹을 밥이라도 빌려주시곤 했다. 밥통이 없던 시절, 따끈따끈한 밥 한 그릇이 이웃의 갈라진 틈새를 잘도 메웠다.
예전에 나는 밥을 저항의 수단으로 삼은 적이 있었다. 어머니가 내 요구 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곤 했는데, 기어코 내 입에 밥 들어가는 모습을 보아야 잠을 이뤘던 어머니에게 비열하게 생오기를 부렸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단식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한다. 곡기를 끊겠다는 것은 죽겠다는 말이다. 다른 방법도 있을진대 식음을 전폐하겠다니, 유치한 시절이 떠올라 단식의 ‘단’자만 꺼내도 그 녀석을 죽도록 패주고 싶어진다.
밥알은 씨앗이다. 밥알 하나 먹으면 난 내 몸에 씨앗 한 알이 심어진다. 콩밥을 먹으면 콩밭이 되고 밤밥을 먹으면 내 몸에 푸른 밤나무가 자란다. 내 몸은 수많은 씨앗들이 뿌려진 밭이고 논인 셈이다. 밥알은 강아지도 먹고 참새도 먹고 심지어 똥파리도 달려든다. 우리 모두는 밥알 하나를 위해 노동하고 사유하며 인간으로 살아가고, 또한 신에게도 가장 거룩한 것을 바치니, 어쩜 밥그릇은 가장 경건한 염주 그릇인지 모른다.
그런 밥알이건만, 난 여태 밥에 대해 그다지 고마워해 본 적이 없다. 오늘 하루 내 목구멍으로 몇 개의 밥알이 넘어갔는지 헤아려 본 적이 없다. 매일 세 번 거르지 않고 밥을 대하건만 그렇게 애면글면 찾다가도 배가 차면 까마득히 잊고 돌아서 버린다.
그 밥 한 숟가락은 수십 개의 밥알로 이뤄졌고, 또 한 끼의 밥그릇은 또 수십 번의 숟가락질로 채워지건만 여태 밥 한 그릇이 몇 숟가락쯤인지, 한 숟가락 속에 몇 개의 밥알이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살아왔다. 참으로 용감했고 지금도 용감하다.
집이 가까워 오는데 어머니의 손은 여전히 주머니 속 봉지에 있다. 우리는 어머니의 넉넉한 얼굴을 보고 이미 알고 있다. 어쩌면 그 밥은 내일 아침 당신 상에 오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