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깨우자’
2021년 01월 21일(목) 23:00 가가
코로나 시대를 맞아 우리 모두는 그 어느 때보다 어렵고 힘든 혹한의 겨울을 맞고 있다. 이 죽음처럼 긴 겨울이 지나면 분명 코끝 간질거리는 꽃가루와 아지랑이 가물거림 넘어 봄은 노란 개나리 산들거리며 다가올 것이다. 그리하여 얼었던 땅을 녹여 몸 움츠려 겨울을 난 잡풀들을 초록빛으로 물들일 것이다. 이렇게 분명 봄은 오는데 지금처럼 세찬 겨울바람 앞에서는 간혹 현실의 고단함으로 절망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고통의 끝이 없다는 생각이 엄습하고 모든 일이 뒤범벅되어 불확실하고 불가능할 때, 모두가 깊이 잠든 칠흑같이 적막한 새벽과 직면해 보라. 어둡고 두렵고 적막한 새벽을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응시해 보라. 이내 절망의 유혹이 물러가고 고요한 새벽은 우리를 영롱한 이슬 반짝이는 아침으로 초대할 것이다.
아직 어두운 새벽에 글을 쓸 때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산길을 가는 것처럼 묘한 설렘과 두근거림을 동반한다. 아침노을이 붉게 물들고 태양이 솟아오르면 이내 이런 감정도 함께 사라진다. 새벽이 아침에게 시간을 넘겨줄 때 찾아오는 이 감정이 하루를 맞이하는 우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세월이 흘러가니 깨닫게 된다. 꿈에서 현실이 태어나듯이 새벽은 변화가 일어나는 경계의 시간이며, 어둠과 빛 사이에서 다가올 하루를 맞이하기 위한 의식 같은 시간이다. 매일 에너지를 바닥내어 죽은 것처럼 지친 삶이 전혀 다른 생명의 삶으로 전환하는 순간이 새벽이다. 새벽의 정신, 각오, 희망은 마음에 영향을 주어 그 기분 그 느낌으로 하루를 살게 된다. 새벽 결심은 그 결심을 이룰 수 있는 충분한 하루의 시간이 주어지므로 건강하고 아름다운 미래가 탄생하는 축복받은 시간이다.
인간의 삶은 거미줄처럼 복잡한 관계로 얽혀져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불안정한 삶에 매어 균형을 잃고 한쪽으로 치우쳐 끌려가다 보면 안간힘을 써도 노예적 삶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새벽은 이런 삶에 고용되어 있지 않은 자유 그 자체이다. 균형을 잡으려고 몸부림을 칠 필요가 없는 자유의 공간, 그 무엇에게도 속박되지 않는 멋지고 매력적인 새벽 시간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 새벽은 삶의 무게에 지친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삶을 회복시키는 마중물과 같은 것이다. 묶인 곳 없이 봄날의 미풍처럼 이리저리 흩날려도 부담되지 않고, 뜬구름을 잡아 마음을 조금 들뜨게 하고 새로운 인생의 기쁨으로 다시 시작하게 하는 그런 삶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다.
새벽의 고요와 적막은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의 멍에를 풀고 잠시나마 자연의 소리와 내면의 소리를 듣는 절호의 시간이다. 현실의 소리에 마취되어 상상의 날개가 꺾어진 슬픈 자아를 발견한다면 이젠 툴툴 털고 일어나야 한다. 우리는 상상을 통해 현실의 영역을 확장한다. 새벽녘의 상상력은 더 멀리, 더 높이, 더 젊게, 더 많이 웃고 소통할 수 있고, 소유하되 집착이 없는 자유로운 행보가 가능하며 인간의 탐욕을 비우고 막을 수 있는 힘을 비축하게 한다.
성경 시편에 새벽을 깨우는 다윗 왕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편57:7,8) 다윗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울 왕을 피해 아둘람 동굴에 도망하여 숨어서 쓴 시이다. 죽음의 끝자락인 동굴 속 처절한 상황에서 잠에서 깨어 새벽을 마주한다. 그 동굴에서 일평생 새벽을 깨울 것을 하나님 앞에 약속하는 새벽 언약이다. 다윗은 기적처럼 회생하였고 이스라엘을 세상에 알리는 다윗 왕국을 만든다.
과거 수많은 실패의 짐을 지고 현재의 모순과 갈등하며 불행한 미래로 다시 가려는 습관을 멈추고 새벽을 깨워 보시라. 우리의 미래를 수정할 수 있고 불행한 미래를 막을 수 있는 새벽 시간을 버릴 이유는 하나도 없다. 훌륭한 미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새벽의 고요와 적막은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의 멍에를 풀고 잠시나마 자연의 소리와 내면의 소리를 듣는 절호의 시간이다. 현실의 소리에 마취되어 상상의 날개가 꺾어진 슬픈 자아를 발견한다면 이젠 툴툴 털고 일어나야 한다. 우리는 상상을 통해 현실의 영역을 확장한다. 새벽녘의 상상력은 더 멀리, 더 높이, 더 젊게, 더 많이 웃고 소통할 수 있고, 소유하되 집착이 없는 자유로운 행보가 가능하며 인간의 탐욕을 비우고 막을 수 있는 힘을 비축하게 한다.
성경 시편에 새벽을 깨우는 다윗 왕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편57:7,8) 다윗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울 왕을 피해 아둘람 동굴에 도망하여 숨어서 쓴 시이다. 죽음의 끝자락인 동굴 속 처절한 상황에서 잠에서 깨어 새벽을 마주한다. 그 동굴에서 일평생 새벽을 깨울 것을 하나님 앞에 약속하는 새벽 언약이다. 다윗은 기적처럼 회생하였고 이스라엘을 세상에 알리는 다윗 왕국을 만든다.
과거 수많은 실패의 짐을 지고 현재의 모순과 갈등하며 불행한 미래로 다시 가려는 습관을 멈추고 새벽을 깨워 보시라. 우리의 미래를 수정할 수 있고 불행한 미래를 막을 수 있는 새벽 시간을 버릴 이유는 하나도 없다. 훌륭한 미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