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 광주시립발레단과 동고동락…31일 정년퇴임 이재승 운영실장
2020년 12월 29일(화) 06:30 가가
연출 맡은 ‘명성황후’ 中 공연 기억 남아
토목 전공후 조선대 무용과 재입학
박금자·박경숙 등 6명 감독과 작업
상임단원으로 무용수·무대감독 맡아
“발레단 전 세계로 뻗어 나가 길”
토목 전공후 조선대 무용과 재입학
박금자·박경숙 등 6명 감독과 작업
상임단원으로 무용수·무대감독 맡아
“발레단 전 세계로 뻗어 나가 길”
광주시립발레단은 지난 1976년 창단해 지금까지 고전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 등을 비롯해 창작발레 ‘장희빈’, ‘서동요’, ‘명성황후 ’등 다양한 공연으로 광주 시민과 만나왔다.
발레단의 이 모든 역사를 함께해 온 사람이 있다. 바로 오는 31일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 이재승(61) 운영실장이 그 주인공이다. 최근 발레단 사무실에서 마지막 업무에 몰두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이 실장은 “퇴임이 몇일 안남았는데 밀린 일을 하느라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이곳에서 39년을 보내다보니 정리할 짐도 많다. 아직 인수인계도 제대로 못했는데 큰일이다”고 말하며 웃었다.
그는 발레단 박금자 초대 감독부터 박경숙·이영애·김유미·신순주·최태지 등 6명의 감독들과 함께 일해왔다.
1979년 발레단과 인연을 맺은 그는 대학에서 토목을 전공했다. 조선대 무용과 다니는 선배와 어울려다니다가 초대 단장인 박금자 예술감독 눈에 띄었고 그때부터 정식단원은 아니었지만 발레단 무대에 오르곤 했다. 1981년 조선대 무용과에 재입학하면서 발레단 연구단원으로 활동, 본격적으로 무용의 길을 걷게 됐다.
이 실장은 “청년시절 키도 크고 체격적인 조건이 좋았던 덕분에 박금자 선생님께서 발레를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셨던 것 같다”며 “그때는 제일 말단이 연구단원이었다. 연구단원부터 시작했는데 운영실장까지 될줄 몰랐다”고 말했다.
“지금은 돌아가신 제 형님께서 연극을 하셨어요. 그래서 무대 쪽 일에 관심이 많았죠. 박금자 선생님께서는 무용수가 필요해 저를 데려다 쓰셨는데, 정작 저는 무대 위보다는 무대 뒷일에 더 신경썼던 것 같아요. 그래서 1986년 비상임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무대감독 역할을 같이 했죠. 이후 1992년부터는 상임단원으로 무대에 올랐어요. 그후 29년 8개월을 상임단원으로 관객과 만났습니다.”
39년간 발레단과 함께 해왔지만 몇번의 유혹도 있었다. 장르별로 감독이 필요했던 국립극장에서 스카웃 제의를 해온 것이다. 서울에 대한 별다른 동경이 없던 그는 제의를 고사했다. 결혼 이후 한번의 제의가 더 있었지만 그때는 고향에 자리잡은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발레단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2003년 운영실장 일을 맡게 됐다. 그는 창작발레 작품을 만들어 해외에서 공연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창작발레 ‘명성황후’를 제작해 중국에 진출하는 등 중국과의 교류사업에 힘썼고 특히 2009년에는 북경, 항주, 광저우, 길림성, 장충 등 중국 5개 도시를 순회하는 공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중국에서 히트친 ‘명성황후’는 제가 직접 연출했어요. ‘심청’ 대본도 제가 직접 썼죠. ‘심청’은 미국 공연에서 교민들의 심금을 울렸던 작품으로 기억합니다. 전통발레보다는 한국식 창작발레로 해외에서 사랑받았던 것 같아요. 해외공연을 위한 작품 준비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공연을 마치고 나면 굉장한 보람을 느꼈어요.”
지난 19일 마지막 공연인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마친 그는 퇴임식만 남겨둔 상태다.
“여기까지 오면서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어떻게 보면 바보처럼 한 직장에서 오랜시간을 보냈는데 지금 와서보니 아무 탈 없이 이자리까지 온 것이 정말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실무자로서 발레단 일을 맡아 했다면, 앞으로는 영원한 발레단의 가족으로서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우리 발레단이 국내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색깔을 가진 작품으로 세계를 향해 뻗어 나가길 바랍니다.”
/전은재 기자 ej6621@kwangju.co.kr
발레단의 이 모든 역사를 함께해 온 사람이 있다. 바로 오는 31일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는 이재승(61) 운영실장이 그 주인공이다. 최근 발레단 사무실에서 마지막 업무에 몰두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그는 발레단 박금자 초대 감독부터 박경숙·이영애·김유미·신순주·최태지 등 6명의 감독들과 함께 일해왔다.
“지금은 돌아가신 제 형님께서 연극을 하셨어요. 그래서 무대 쪽 일에 관심이 많았죠. 박금자 선생님께서는 무용수가 필요해 저를 데려다 쓰셨는데, 정작 저는 무대 위보다는 무대 뒷일에 더 신경썼던 것 같아요. 그래서 1986년 비상임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무대감독 역할을 같이 했죠. 이후 1992년부터는 상임단원으로 무대에 올랐어요. 그후 29년 8개월을 상임단원으로 관객과 만났습니다.”
39년간 발레단과 함께 해왔지만 몇번의 유혹도 있었다. 장르별로 감독이 필요했던 국립극장에서 스카웃 제의를 해온 것이다. 서울에 대한 별다른 동경이 없던 그는 제의를 고사했다. 결혼 이후 한번의 제의가 더 있었지만 그때는 고향에 자리잡은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발레단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2003년 운영실장 일을 맡게 됐다. 그는 창작발레 작품을 만들어 해외에서 공연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창작발레 ‘명성황후’를 제작해 중국에 진출하는 등 중국과의 교류사업에 힘썼고 특히 2009년에는 북경, 항주, 광저우, 길림성, 장충 등 중국 5개 도시를 순회하는 공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중국에서 히트친 ‘명성황후’는 제가 직접 연출했어요. ‘심청’ 대본도 제가 직접 썼죠. ‘심청’은 미국 공연에서 교민들의 심금을 울렸던 작품으로 기억합니다. 전통발레보다는 한국식 창작발레로 해외에서 사랑받았던 것 같아요. 해외공연을 위한 작품 준비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공연을 마치고 나면 굉장한 보람을 느꼈어요.”
지난 19일 마지막 공연인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마친 그는 퇴임식만 남겨둔 상태다.
“여기까지 오면서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어떻게 보면 바보처럼 한 직장에서 오랜시간을 보냈는데 지금 와서보니 아무 탈 없이 이자리까지 온 것이 정말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실무자로서 발레단 일을 맡아 했다면, 앞으로는 영원한 발레단의 가족으로서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우리 발레단이 국내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우리만의 색깔을 가진 작품으로 세계를 향해 뻗어 나가길 바랍니다.”
/전은재 기자 ej6621@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