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나무 생각’] 공룡과 더불어 살던 오래된 나무
2020년 10월 28일(수) 05:00 가가
거리 두기와 잠시 멈춤으로 사람살이의 활기가 새들새들해져도 나무의 살림살이에는 아무런 멈춤의 기미가 없다. 도시의 은행나무에 노란 형광빛이 올랐고, 온 산은 붉은빛으로 찬란해졌다. 활엽수 종류의 나무가 벌이는 이 계절에 펼치는 빛의 향연은 하릴없이 멈추었던 사람의 몸과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거기에 소나무 전나무와 같은 침엽수는 초록을 내려놓지 않고 여전히 푸르러서 노랑·빨강·갈색 등의 총천연색이 더 아름다울 수 있도록 바탕을 깔아 준다.
침엽수이지만 이 계절에 단풍나무나 은행나무 못지않게 아름다운 단풍 빛을 올리는 나무가 있다. 소슬바람 차가워지면 낙엽을 떨구는 것도 거개의 활엽수를 닮은 특별한 침엽수, 메타세쿼이아다. 우리나라에서 메타세쿼이아라는 생경한 이름의 나무를 처음 심은 건 1956년이다. 식물 육종가 현신규 박사가 미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엔 빠르게 자라는 이 나무를 방음이나 방열 효과를 위한 건축 내장재로 이용하려 했지만, 가로수로의 가능성을 생각하고 몇몇 지역에서 심기 시작했다. 이게 우리나라 메타세쿼이아 역사의 시작이다.
그로부터 15년쯤 지난 1972년에 전라남도 담양군에서는 메타세쿼이아를 가로수로 심어 키웠다. 담양에서 순창을 잇는 국도 24호선, 담양군청에서 금성면 원율삼거리까지의 길가에 5년 된 메타세쿼이아 1300그루를 심은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에는 이 길을 지나다니는 자동차들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도로는 비좁지만 그리 불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가는 길이 1차로씩인 길 양편으로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우뚝 솟아오른 메타세쿼이아는 극적인 장엄함을 이뤘다.
자동차 도로를 가능하면 넓게 만드는 요즘의 형편에서는 그 어떤 곳에서도 이 좁은 길의 장엄미를 흉내 낼 수 없다. 길이 조금만 더 넓었더라도 메타세쿼이아아의 장엄함은 이만큼 크지 않았을 게다.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는 학동마을부터 순창과의 경계 지점인 달맞이공원까지 총 8.5㎞나 이어진다. 그 가운데 학동마을에서 시작하는 1.8㎞ 구간은 아예 보행자 전용도로로 지정, 차 없는 거리로 조성했다.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의 가치가 처음부터 인정된 건 아니었다. 물론 담양 주민들이야 놀랍도록 빠르게 자라는 메타세쿼이아가 보여 주는 신비로운 자태를 감탄하며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길이 지금처럼 전국적으로 알려진 건 아니었다.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의 아름다움과 가치가 널리 알려진 건 나무들이 베어질 위기에 처하면서였다. 2000년의 일이다. 담양-순창 간 국도 4차로 확장 공사가 계획되면서, 2차로 양편의 나무들은 어쩔 수 없이 베어 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때 담양 주민들이 나무를 지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자발적으로 결성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메타세쿼이아 살리기 운동을 벌였다. 주민들의 움직임에 전국적인 관심이 집중됐고, 그동안 채 알지 못했던 메타세쿼이아의 장엄한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졌다. 긴 난관 끝에 도로 건설 계획은 마침내 수정될 수밖에 없었고, 나무는 지켜졌다. 이후 산림청과 생명의 숲에서는 이 길을 ‘아름다운 거리 숲’으로 지정했다. 또 도로 건설을 주관하는 건설교통부에서는 ‘전국의 아름다운 도로 100선’에 선정했으며, 한국도로교통협회에서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포함시켰다. 전국적으로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의 장관을 직접 본 사람들이라면 그 아름다움을 잊지 못했고, 전국의 지자체들이 앞다퉈 메타세쿼이아를 가로수로 심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는 결과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마침내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은 우리나라 최고의 명품 숲이 되었고, 우리나라의 모든 메타세쿼이아의 상징이 되었다.
분명 담양 메타세쿼이아는 사람이 들여와, 사람이 키우고, 사람이 지켜 낸 결과다. 시작도 마무리도 결국은 사람의 몫이었다. 자연을 위대하게 가꾸는 건 결국 사람이다. 지금 온 산천에 물든 단풍이 하냥 그립기만 해도, 거리를 두고 잠시 멈춘 사람들의 발길이 내일의 위대한 자연을 가꾸는 지혜라고 생각하는 근거다.
<나무 칼럼니스트>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의 가치가 처음부터 인정된 건 아니었다. 물론 담양 주민들이야 놀랍도록 빠르게 자라는 메타세쿼이아가 보여 주는 신비로운 자태를 감탄하며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길이 지금처럼 전국적으로 알려진 건 아니었다.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의 아름다움과 가치가 널리 알려진 건 나무들이 베어질 위기에 처하면서였다. 2000년의 일이다. 담양-순창 간 국도 4차로 확장 공사가 계획되면서, 2차로 양편의 나무들은 어쩔 수 없이 베어 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때 담양 주민들이 나무를 지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자발적으로 결성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메타세쿼이아 살리기 운동을 벌였다. 주민들의 움직임에 전국적인 관심이 집중됐고, 그동안 채 알지 못했던 메타세쿼이아의 장엄한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졌다. 긴 난관 끝에 도로 건설 계획은 마침내 수정될 수밖에 없었고, 나무는 지켜졌다. 이후 산림청과 생명의 숲에서는 이 길을 ‘아름다운 거리 숲’으로 지정했다. 또 도로 건설을 주관하는 건설교통부에서는 ‘전국의 아름다운 도로 100선’에 선정했으며, 한국도로교통협회에서는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포함시켰다. 전국적으로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담양 메타세쿼이아 길의 장관을 직접 본 사람들이라면 그 아름다움을 잊지 못했고, 전국의 지자체들이 앞다퉈 메타세쿼이아를 가로수로 심는 일이 유행처럼 번지는 결과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그리고 마침내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은 우리나라 최고의 명품 숲이 되었고, 우리나라의 모든 메타세쿼이아의 상징이 되었다.
분명 담양 메타세쿼이아는 사람이 들여와, 사람이 키우고, 사람이 지켜 낸 결과다. 시작도 마무리도 결국은 사람의 몫이었다. 자연을 위대하게 가꾸는 건 결국 사람이다. 지금 온 산천에 물든 단풍이 하냥 그립기만 해도, 거리를 두고 잠시 멈춘 사람들의 발길이 내일의 위대한 자연을 가꾸는 지혜라고 생각하는 근거다.
<나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