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팔과이(功八過二) - 고 박원순 시장의 문제적 죽음 앞에서
2020년 07월 15일(수) 00:00

최영태 전남대 사학과 명예교수

공산국가 중국의 건설자인 마오쩌둥(毛宅東)이 1976년 사망한 직후 중국에서 그에 대한 격하 운동이 일어났다. 이에 당시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덩샤오핑(鄧小平)은 ‘공칠과삼’(功七過三)이라는 용어를 빌려, ‘마오쩌둥에게는 공도 있고 과도 있지만, 공이 더 크다’고 말하고, 그의 공을 계승하면서 문제점을 보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말과 함께 논란은 쉽게 정리되었다.

죽은 자에 대한 평가는 어느 한 부분이나 어느 특정 시점이 아니라 그의 삶 전체에 대한 것일 때 더 정확해진다. 나도 문제적 죽음과 함께 우리의 곁을 떠난 박원순 전 시장을 죽음의 시점이 아닌 그의 삶 전체를 놓고 이해하고 싶다. 여기서 나는 박 시장의 삶을 이해하는데 ‘공칠과삼’ 대신에 ‘공팔과이’(功八過二)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박 시장의 삶은 현대 중국 건설이라는 큰 업적에도 불구하고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등에서 수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마오쩌둥의 삶과는 다르다고 보기 때문이다.

먼저 박 시장의 자살과 성추행건은 둘 다 그의 삶의 족적에 비추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부하 직원에 대한 성추행 문제가 사실이라면 진솔하게 사과하고, 그 책임 역시 다른 방식으로 짊어지는 게 옳았다. 그것이 평생을 이웃과 더불어 살아온 박원순적 해법이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그를 통해 이 세상에 완전무결한 사람은 없다는 점을 새삼 확인했다. 어쩌면 박 시장에게는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과오도 있을지 모른다. 그를 평하면서 ‘과이’(過二)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유이다.

그러나 박 시장의 마지막 삶에 큰 과오가 있었다고 해서 그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부정할 수는 없다. 시민운동가로서 박원순의 주요 경력에는 인권 변론 외에, 역사문제연구소와 참여연대, 아름다운 가게, 희망제작소 등의 설립과 운영이 있다. 이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투철한 역사 의식, 풍부한 아이디어와 창의성, 탁월한 실천력, 헌신적 봉사는 단순한 칭찬을 넘어서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는 정치권에 입문한 후에도 시민운동가 시절 지닌 순수성과 역사적 책무 의식을 지키려 노력했다. 많은 사람이 외형적인 실적을 주문했지만, 그는 오히려 자기 방식으로 대한민국까지 그랜드 디자인하겠다고 응답했다. 그것이 박원순이었다.

박원순 시장의 죽음과 애도 방식에 대한 논의가 분분했다. 조문 여부, 장례를 서울특별시 기관장으로 치르는 문제, 성추행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문제 등 다양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박 시장의 장례 방식을 비판하는 쪽에 보수와 진보가 혼재돼 있어 논란의 성격이 더 복잡해졌다.

보수 진영에서 장례 방식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그들은 김대중, 노무현, 노회찬의 죽음 앞에서도 항상 그러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일부 진보 진영의 문제 제기에는 많은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그 주장의 내용에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다. 시점의 문제성 때문이었다. 죽은 자와 산 자의 처지는 그 차이가 하늘과 땅 사이만큼 크다. 적어도 박 시장의 공을 일정 부분 인정한다면, 그의 잘못에 대한 공론화는 상을 치른 후에 해도 늦지 않았을 것 같다.

미국 텍사스크리스천대 강남순 교수는 이번 소동에 대한 소회에서 도덕적 순수주의가 하나의 경직된 이데올로기가 되면 그것은 또 다른 폭력성을 내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나 역시 이번 조문 논쟁에서 지나치게 정치화 혹은 이념화된 일부 현상을 발견했다.

성격은 다르지만, 고소자에 대한 과도한 비난과 신상 털기식 분노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 식의 분노 표시는 피해자에 대한 도리가 아니며, 의도와 상관없이 박 시장의 죽음에 대해서 논란만 키울 것이다.

박원순 시장의 오랜 친구이자 동지였던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말대로, 박 시장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위치에서 각자에 어울리는 애도의 시간을 갖도록 하자. 피해자에 대한 위로, 박 시장의 공과(功過)에 대한 객관적 평가,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도 병행하면서 말이다.

고 박원순 시장의 삶을 ‘공팔과이’(功八過二)로 이해하고 싶은 나의 이별사는 다음과 같다. “사랑합니다. 오랫동안 기억하겠습니다. 편안히 영면하소서!”

실시간 핫뉴스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