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총선과 정치 브로커
2020년 03월 25일(수) 00:00

[임 동 욱 서울취재본부장·선임기자]

수요와 공급의 틈새에서 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브로커(Broker)라고 한다. 그들은 흥정과 중재 등을 통해 상거래 역사와 함께 존재하고 있다. 현재도 상품·어음·외환·보험·선박·세관·증권 등 업종별로 전문 브로커가 있다. 그들의 역할은 경제적 활동을 촉발시키기 때문에 순기능이 크다.

문제는 불법 브로커다. 그들의 영역은 다양하다. 정치·경제·의료·법조·문화 등 이들이 거래하지 않는 분야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법의 테두리 밖에서 은밀한 거래를 성사시키면서 사회적 시스템을 좀먹는다는 점에서 문제가 많다. ‘브로커=협잡꾼’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된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정치 브로커의 폐해는 심각하다. 온갖 불·탈법을 통해 유권자들의 표심을 왜곡시키면서 대의 민주주의 시스템에 구멍을 낸다. 이는 정치권에 대한 불신 등 사회적 신뢰를 저하시키는 등 사회 전반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

정치 브로커의 전형적인 행태는 한 표가 절실한 후보들의 약점을 파고든다는 것이다. 선거를 처음 치르는 초보 정치인일수록 브로커의 유혹에 넘어가기 쉽다. 일반적으로 유권자들과 당원들을 부풀린 명단을 내세우며 유혹의 수단으로 삼는다. 그 다음 단계로는 그동안의 선거 경험을 내세우며 마타도어 조성 등 불·탈법 선거 전략을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종 종착지는 결국 돈이다. 지지자들을 많이 모으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금품 살포나 식사 대접 등 불·탈법이 필요하고 결국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거절하면 상대 후보를 돕겠다는 것이며 실제 이런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 정도의 정치 브로커로는 씨알이 잘 먹히지 않는다. 선거법이 강화된 영향도 있지만 정치 브로커의 행태가 그만큼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광주의 정치 브로커 A씨는 최근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예비후보 캠프만 세 곳이나 전전해, 달라진 세태를 반영하기도 했다. 이제 표를 얻어 주겠다며 돈을 요구하는 수준은 정치 브로커의 세계에서 3류로 취급된다.

진짜 ‘선수’들은 스펙부터 다르고 실체도 비교적 분명하다. 선출직을 지냈거나 학생 운동권 출신은 물론 시민 사회단체 활동을 했던 사람들, 총선과 지방선거 등에서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둔 이들도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영입되는 케이스도 많은데 그들은 섣불리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지역 정치권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은 확실한 당원 명부와 각종 인연을 통해 형성한 인맥을 구체적으로 내민다. 또한 선거 캠프에 합류한 초기에는 자신의 돈을 쓰면서 조직을 추스르고 효율적 선거 전략을 제시하는 등 핵심 참모로서 자리를 구축한다.

이런 측면에서만 보면 나름 전문성을 갖춘 정치 컨설턴트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들도 실상은 선거 과정에서 온갖 협잡을 일삼는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정치 브로커다. 최근 광주·전남에서 발생한 불법 선거운동과 관련된 각종 고소·고발 사건에는 이들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다. 이처럼 캠프에 깊숙이 들어가 활동하고 선거에서 이기면 당선자의 핵심 측근 행세를 하며 공무원 등 주변에 영향력을 행사, 이권이나 인사에 개입하는 것이 정치 브로커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들은 불법 선거운동을 매개로 후보자의 코를 꿰어 놓기도 한다. ‘폭로’라는 보이지 않는 협박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정치 브로커에게 약점을 잡혀 당선 이후 공직선거법 위반 공소시효 6개월이 지날 때까지 마음을 졸이는 정치인들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일부 정치 브로커들은 지방선거 후보 추천 등에도 개입하는 등 영향력을 키우며 지역 정치권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는 지역 정치권의 부패 구조를 점차 고착화시킨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광주에서는 학생 운동권 출신 B씨와 구청 및 광역단체 산하기관을 전전하면서 각종 선거에 개입하고 있는 C씨 등이 대표적이다. 또 후원자라는 가면을 쓰고 식비 등 선거 캠프의 경비를 대고 핵심 측근을 자처하며 이권에 개입하는 유형의 브로커들도 수두룩하다.

4·15 총선이 20여 일 남았지만 일부 후보들의 선거 캠프에는 여전히 정치 브로커들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이들을 철저히 배제하지 않는다면 지역 정치의 미래는 암담하다. 그들의 입김이 커질수록 호남 정치는 퇴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후보자들은 자신을 단호하게 뒤돌아보아야 한다. 정치 브로커들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정정당당한 대결에 나서는 것이 후보자는 물론 호남 정치의 미래를 열어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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