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부대에서 새로운 대중문화로…‘팬덤’은 진화 중
1970년대 ‘오빠부대’로 시작한 팬덤 문화
영화·음반·예능 등 스타들 상품성·인기 좌우
덕질도 품위있게…기부·봉사 등 활동 다양
작품·행사 등 과도한 간섭 폐단 자주 노출
자발적 조공 문화 악용 이윤 창출 비판도
2019년 11월 05일(화) 04:50

전 세계에서 막강한 팬덤을 거느리고 있는 ‘방탄소년단’

중국·홍콩·대만 등 중화권 팬들을 보유하고 있는 송중기




이민호와 팬클럽 ‘미노즈’




이민호와 팬클럽 ‘미노즈’




1970년대 ‘오빠부대’를 이끌었던 나훈아










남진이 ‘님과 함께’를 열창하면 수많은 20대 여성들이 “꺄아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훈아가 ‘가지 마오’를 부르면 젊은 여성 팬들은 목이 터져라 따라 불렀다. 라이벌인 두 스타의 팬들은 가출까지 감행하며 리사이틀 공연장을 찾는 등 조금이라도 가까이서 남진, 나훈아를 보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언론에서는 팬들이 남진, 나훈아를 보면 기괴한 소리를 지른다고 하여 ‘기성(奇聲) 부대’라 명명했다. 1970년대 유아적 팬덤 양상을 보인 ‘오빠 부대’다.

10대 소녀들이 수업까지 빠지며 방송사 음악 프로그램 녹화장과 콘서트장을 찾아 하얀 풍선과 응원봉을 들고 일사불란하게 H.O.T를 연호했다. 소녀 팬들은 음반뿐만 아니라 H.O.T 사진과 캐릭터가 들어간 브로마이드, 장갑, 노트, 향수 등 굿즈를 닥치는 대로 구입했다. 천리안 등 PC 통신에 H.O.T 멤버를 주인공으로 한 팬픽이 등장했다. 팬덤이 본격 등장한 1990년대 중후반 10만 회원의 ‘클럽 H.O.T’의 활동 양태다.

빌보드 200 차트, 영국 UK 오피셜 앨범 차트 1위 석권, 빌보드 뮤직 어워드 톱 듀오/그룹상 수상, 2019년 5~7월 미국 영국 브라질 프랑스 일본 5개국 스타디움 콘서트 티켓 판매액 1100억 원 돌파… 음반과 공연 티켓 구입부터 가사 번역, 봉사 및 기부 활동, 잘못된 보도와 정보에 대한 대응, 역동적 홍보까지 다양한 활동을 열정적으로 펼치는 국내외 100만 회원을 거느린 팬클럽 ‘아미’의 팬덤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방탄소년단의 성적표다. 2019년의 조직화한 팬덤 모습이다.



◇대중문화 초기부터 열혈팬 존재

팬덤(fandom)은 특정 스타와 문화생산물을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집단적인 세력과 팬이라는 현상, 팬 의식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팬은 특정한 연기자나 가수, 예능인 혹은 특정 텍스트를 선택해 자신의 문화 속에 수용하는 사람이고 팬클럽은 스타나 연예인, 대중문화 텍스트에 관한 존경이나 숭배, 지원을 집단적으로 행하기 위해 결성된 조직을 지칭한다.

팬은 일제강점기의 대중문화 초창기부터 존재했다. 대중매체의 부족과 문화상품 소비에 따른 경제적 부담 때문에 대중문화 초창기의 팬은 경제력 있고 대중문화 접촉 기회가 적지 않은 지식인과 기생 등 성인층이 주류를 이뤘다.

1930년대 인기 가수 김복희는 팬이 제공해준 비행기로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음반 녹음을 했다. 가수 고복수는 손수건에 애(愛)자를 혈서로 써서 보낸 열혈 팬들에게 시달렸고 가수 남인수는 극성 여성 팬에 의해 납치돼 동거할 것을 강요받기도 했다.

1950~1960년대의 대중문화는 영화 제작의 활성화, 라디오 보급의 확대, TV 시대 개막, 대중 주간지 창간 붐으로 큰 도약기를 맞았다. 일부 계층에서만 향유하던 대중문화를 서민까지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팬층 구성이 변모했다.

영화가 대중문화를 주도했던 1960년대는 ‘고무신족’으로 명명된 30~40대 여성들이 스타 팬의 주류를 이뤘다. 30~40대 여성 팬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신성일, 최무룡, 신영균 등 남자 배우들이 스타로 부상해 각광받았다.

TV 수상기 보급 확대로 텔레비전이 대중문화의 메카로 자리 잡기 시작한 1970년대는 스타의 팬층이 확대되는 동시에 팬의 분화가 전개됐다. 팬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다. 영화의 주 관객층인 30~40대 여성들은 TV 드라마의 시청자로 자리를 이동해 스타 탤런트의 팬층으로 편입됐다.

1980년대는 팬클럽이 태동하면서 팬덤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다양한 장르의 노래로 대중음악계를 장악한 조용필의 팬클럽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팬덤 문화가 만들어졌다. 80년대 중후반 개별적이고 산발적이던 팬들의 관심과 활동이 조용필의 팬클럽 결성을 계기로 스타와 팬의 관계가 새롭게 형성됐다.

문화상품의 소비력을 갖춘 10대의 전면 부상, 케이블 TV 등 다양한 매체 등장, 인터넷 보급 확대, 연예인을 양성하고 스타를 관리하는 연예 기획사 설립 붐, 대기업의 대중문화 시장 진출이 이뤄진 1990년대 들어서는 팬클럽은 급증했고 팬덤 문화는 질적 진화를 거듭했다.

90년대 초반 자발적인 팬클럽이 기하급수적으로 급증했고 90년대 중반부터는 연예기획사들이 전면에 나서 팬클럽과 팬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시작했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클럽 ‘요요’ 결성을 시작으로 조직적으로 스타 지원 활동을 펼치는 팬덤이 본격화했다.

1990년대 들어 가수에 국한됐던 팬덤은 탤런트, 영화배우, 개그맨, 모델 등 연예계 모든 분야의 스타로 확대됐다. 이 시기 남자 스타의 팬덤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이는 팬클럽의 회원 대다수가 ‘빠순이’로 지칭된 10대 여자 중고생이 절대다수를 차지한 상황과 깊은 관련이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 팬클럽을 중심으로 소녀 팬들을 비하하는 ‘빠순이’라는 용어를 단호히 거부하고 스스로 활동을 ‘팬덤’으로 지칭하며 발전적 모습을 보였다. 단순히 스타를 좋아하고 옹호하는 것을 넘어서 대중음악 사전 심의제나 음악 프로그램 순위제 폐지 운동 등을 펼치며 팬덤 활동을 질적으로 진화시켰다.

2000년대 들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 인터넷과 SNS는 팬덤 활동과 팬 문화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며 팬과 팬클럽, 팬덤의 규모와 스펙트럼을 대폭 확대했다.

한류가 본격화한 2000년대에는 중국, 일본, 미국 등 세계 각국에 한류스타 팬클럽이 등장했다. 한국국제교류재단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8년 미국, 중국, 일본 등 세계 각국의 한류 스타를 비롯한 한류 팬클럽은 1843개이고 회원 수는 8919만 명에 달했다. 시대에 따라 팬덤의 스타를 수용하는 태도와 방식, 그리고 활동 양태도 변모했다. 스타를 향해 무조건 열광하는 팬 실천을 보였던 팬덤은 스타에 대해 애정과 비판적인 태도를 동시에 취하는 수용 태도로 변했다.

◇새로운 문화권력…고질절 병폐 여전

팬덤은 영화, 음반과 음원,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등 스타의 문화 상품을 왕성하게 소비할 뿐만 아니라 스타의 상품성과 인기를 좌우하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조형하기 위해 선행과 기부, 봉사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활동 폭을 넓혔다. 팬덤은 대중문화의 능동적 수용자로서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해 대중문화와 스타 시스템의 병폐를 개선하는 주체로서 역할도 수행했다.

팬덤은 대중문화의 새로운 지평도 열었다. 팬들이 참여해 만든 팬픽, 팬 아트, 팬 굿즈처럼 스타나 스타 텍스트를 자신들의 문화로 재가공하고 생산하는 창조행위를 함으로써 대중문화를 한 차원 발전시켰다. 팬덤은 이처럼 다원화, 다층화, 다각화해 대중문화를 주도하고 소비하는 새로운 문화 권력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팬덤이 변화하면서 다양한 병폐와 문제도 노출했다. 팬덤이 권력화해 스타 계약부터 작품 출연, 행사 진행에 이르기까지 과도하게 간섭하고 무리한 물리력을 행사하는 폐단이 자주 노출됐다. 팬덤이 스타와 연예 기획사의 단순한 이윤 창출 도구로 전락한 것도 문제다. 상당수 연예 기획사나 스타들은 연예인을 좋아하는 팬덤을 이윤을 창출하는 데 활용한다. 일부 스타는 팬들이 자발적인 모금을 통해 선물하는 조공(朝貢)문화를 악용해 고급 차량 등 고가의 선물을 갈취하는 행태까지 빈발하고 있다. 이 때문에 ‘팬덤은 스타의 호구이며 살아있는 ATM’이라는 비판까지 쏟아진다.

팬덤은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스타와 연예인, 그리고 대중문화의 중요한 존재 기반으로 자리 잡으며 스타 시스템의 주역이 됐고 대중문화를 진일보시키는 주체가 됐다.

/글·사진=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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