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영석 농협 하나로유통 단장] 동네 바보의 고백
2019년 10월 30일(수) 04:50
지난 20여 년간 주말은 테니스 치는 재미로 살았다. 등산이며 자전거 같은 운동도 좋지만 1~2년 하고 나면 테니스가 지닌 매력만큼 끌리지 않았다. 뉴스를 보고 신문을 뒤적여도 테니스 관련 기사가 있으면 즐겁고 행복했다. 낯선 도시나 아파트에 가도 초록색 천막만 보면 그 안에 테니스장이 있으려니 하는 생각에 반가웠다. 황토바닥 잘 다져 새하얀 라인을 그려 놓은 코트는 어느 그림이나 사진보다 아름답고 사람을 설레게 했다. 눈이 오면 손수레에 눈을 실어 나르고, 비가 오면 모래와 소금을 뿌리는 수고쯤이야 대수롭지 않았다.

늘지 않는 실력에 애타고, 늦깎이들에게 번번이 지고나면 속상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사진을 찍어 보면 어정쩡한 자세에 내세울 만한 폼은 아니었지만, 서브를 넣고 네트로 달려 발리를 하고, 스매시를 날리면 페더러라도 된 듯 우쭐했다.

어려워서 더욱 자극이 되는 운동이 테니스다. 쉴 새 없이 준비하고 움직이는 중에 상대방과 두뇌 싸움도 벌여야 하고, 어느 방향 어떤 구질로 날아올지 모르는 공을 넘기려면 긴장을 늦출 수 없다. 5년 넘게 레슨을 하고 10년이 지나도 먼저 배운 사람들을 따라잡기 어려운데다, 정신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코 고수 반열에 오를 수 없다. 아마추어라 하더라도 주말마다 대회가 열려 랭킹이 있으니, 공깨나 치는 사람이면 이름만 대도 고수 대접을 받고, 하수들은 밥이며 술대접을 해가며 한 수 배우려 열을 올린다.

어느 종목이나 오래 즐기다 보면 나름 전략이 생겨난다. 상대방의 장단점을 파악해 빠르게 대처하는 유연함이야말로 게임에서 이길 수 있는 첫 번째 비결이다. 상대방이 공격적이고 저돌적인 스타일이라면 정면 승부보다는 무리하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에 집중해야 한다. 거듭된 랠리를 주고받다 보면 분명 찬스가 나게 마련이고, 그럴 때야말로 과감하고 공격적인 플레이가 필요하다. 상대가 두세 수 아래라고 반드시 이기는 것도 아니다. 선수출신이 동호인을 이기는 게 일반적이지만 십 수 년 공력이 무색하게 무너지는 반대의 경우도 많이 보았다. 순간적으로 방심해 집중력을 잃으면 아차 하는 순간 게임은 넘어가버린다.

다행히 큰 부상 없이 20여 년을 버텨 왔는데, 나이 오십이 넘어 힘 떨어질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무리해선지, 반갑지 않은 테니스 엘보우에 걸렸다. 오른쪽 팔꿈치 바깥쪽이 찌릿찌릿할 때도 통증이 크지 않아 대수롭지 않게 넘긴 지 두어 달. 관리를 하지 않고 계속 무리하다 보니 통증이 심해져만 갔다. 주말 아침이면 해뜨기도 전에 코트에 나서는 게 기쁨이었건만 구경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심판을 자청하는 것도 한두 달이지, 운동을 못하니 테니스장과 멀어졌다. 날이면 날마다 코트에서 걸려오던 전화도 뜸해지고, 주말이면 리모컨만 만지작대다 해가 저물었다.

어느 집단에서나 승부의 세계에서는 고수가 우위에 있는 법. 그러나 상황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뀌었다. 어쩌다 불려 나간 선술집에서 지난날 하수들은 경의의 눈초리를 거두고, 복수를 다짐하며 독기 서린 잔을 따랐다. 서브하나 제대로 넣을 수 없는 퇴물에게 지는 일이 없을 거라는 말에 호기롭게 웃어넘겼지만 되돌아보니 그것 또한 내가 뿌린 씨앗이었다. 동네 골목에서나 통할 알량한 실력으로 초보들은 잘 상대해주지 않았고, 게임에 진 상대방에게 당연한 고수처럼 굴었으니 서너 번씩 당해본 사람이면 좋은 감정이었을 리 없었던 것이다.

그 몇 달의 지루하고 긴 시간을 지나서야 라켓 들고 뛸 수 있는 건강과 시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엘보우는 바로 욕심내지 말고 쉬어가라는 경고였고 자신을 뒤돌아보라는 메시지였던 것이다.

지난 20여 년간 나는 스스로를 꽤 괜찮은 스포츠맨으로 알았다. 우습게도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고 자만이었다. 한두 달이 걸릴지 내년 봄이 될지 모르겠지만 다시 코트에 나서면 잊지 않으리라. 테니스는 매너의 스포츠이자 혼자만의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 겉으로만 지키는 예의와 매너만으로는 진정한 스포츠맨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제라도 알게 된 것에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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